6년째 KG로지스 대전 서구 지점에서 택배를 배송했던 김모(38)씨.
김씨의 업무는 새벽 5시 30분부터 밤 9~10시까지 이어진다.
해 뜨기 전부터 대리점에 나와 하차 작업을 한 뒤 오전 10시부터 배송을 시작한다. 명절 때면 자정을 넘기는 것도 예삿일이다.
배달 건수에 따라 수수료를 받기 때문에 한밤중에도 배달할 수밖에 없다. 택배기사에 따라 개인차가 있지만 보통 하루 150~200건을 배달한다.
한밤중까지 배달해야 하루 일당이 겨우 나온다. 점심, 저녁 시간은 따로 없어서 짬 나는 대로 먹고 배송에 매달려야 한다.
주린 배를 부여잡고 온종일 택배를 배송하다 보면 땀이 뻘뻘 난다고 했다.
그래도 택배를 반가워하는 고객과 처자식을 먹여 살릴 수 있어 행복했다고 김씨는 전했다.
이런 김 씨에게 날벼락이 친 것은 지난달 28일 이었다.
KG로지스와 KGB가 합병되며 일방적으로 계약 해지를 당하는 대리점이 속출했다는 것이다.
김씨는 "본사가 대리점과 계약을 해지할 것이란 이야기를 이날 들었다"고 토로했다.
본사는 한쪽에 흡수통합 진행은 아니라고 했지만, 양측 회사에서 같은 구역을 집배송하는 기사 중 한쪽은 그만두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고 김씨는 전했다.
'설마'는 '현실'이 됐다. 지난 2일부터 본사는 KG로지스 대전 서구, 중구 지점에 가야 할 노선 차량을 KGB 지점으로 보냈다.
대전 서구, 중구 지역의 물량이 김씨가 일하는 대리점으로 오지 않으니, 택배기사들이 배송할 물건도 없었다.
대리점에 소속된 택배 기사들은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게 됐다.
김씨는 "3.1절을 제외하면 하루 전날 일방적으로 해고 통보를 받은 것"이라며 "다른 일자리는 생각도 안 해봤는데 어느 순간 실직 가장이 돼버렸다"며 울분을 토했다.
김씨에겐 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4살배기 아들과 아내가 있다. 김씨는 지금까지 아내에게 '실직'했다는 말을 차마 하지 못했다고 했다.
10년째 대전 둔산동의 배송을 맡는 박모(47)씨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
끼니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밤 10시쯤 집에 들어가서 저녁을 먹곤 했다는 박씨.
박씨는 "솔직히 나이 들면 어디서 써주지도 않고 기술 없이 월 200만 원 받기도 어렵다"며 "일거리가 있어서 감사했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이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앞길이 캄캄하다"며 고개를 저었다.
박씨 역시 아내와 두 자녀에게 현재 상황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는 할 수 없었다고 했다.
박씨는 중학생 딸이 "아빠 오늘은 왜 일찍 왔어?"라는 질문에 차마 대답할 수 없었다.
이곳에서 일하는 40명의 택배 기사 중 운 좋게 다른 택배 회사로 바로 이직한 사람도 있다.
하지만 대다수 택배기사는 '오늘은 본사에서 물량을 보내주지 않을까'란 기대로 대리점으로 모여들었다.
간절한 희망을 품고 대리점에 모인 이들 앞에 놓인 것은 멈춰버린 컨베이어 벨트와 텅 빈 트럭, 널브러진 다른 회사의 운송장뿐이었다.
이에 대해 KG로지스 측은 "본사와 택배기사님들은 직접 계약이 아니라 실직이란 말은 맞지 않는다"며 "또 원하는 분들은 계약이 유지되는 곳에서 일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