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외교 사령탑이 부재한 가운데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와 북핵 문제 등을 놓고 갈수록 입지가 좁아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함께 나온다.
틸러슨 장관은 지난 17일 취임 후 첫 한국 방문에서 중국의 사드 보복에 대해 강경 입장을 보였고 북핵 문제에는 초강경 기조를 밝히며 우리 외교 당국자들의 기대에 부응했다.
하지만 앞서 방문한 일본이나 이후 방문국인 중국과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만찬 외교'가 실종됐다.
틸러슨 장관은 일본에서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외무상과, 중국에선 왕이(王毅) 외교부장과의 회담에 이어 양제츠(楊潔) 외교담당 국무위원과는 만찬을 함께 하며 심도있는 대화를 나눴다.
공식 회담 이후의 만찬 회동은 내밀한 협의가 가능하다는 장점 때문에 공식 양자회담 이후 오찬이나 만찬으로 이어지는 게 외교적 관례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정작 틸러슨 장관이 자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이 나를 만찬에 초대하지 않았다"고 해명하면서 진실게임 양상으로까지 비화되는 모양새다.
틸러슨 장관은 "이런 사실이 언론에 나가자 모양새가 좋지 않다고 판단한 한국 정부가 내가 피곤해서 만찬을 하지 않았다고 해명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일각에선 곧 차기 정부가 출범하는 한국의 정치상황을 고려해 미국 측이 일부러 현 외교안보 라인과 거리를 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김동엽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만찬을 한다는 것은 가슴 속 이야기를 하는 것이고 미래를 약속하는 것인데 지금 우리 정부의 누구와 이를 행하겠나"라며 "우리 정부는 이야기 상대가 아니라는 것이고 사드 등 향후 일정은 미국 마음대로 하겠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틸러슨 장관의 방한 때 양국 외교장관 회담에 앞서 공동 기자회견부터 한 것을 놓고도 뒷말이 많다.
우리 외교부는 그나마 기자회견 자체에 부정적이던 미국 측을 설득한 결과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틸러슨 장관의 일본 방문 때는 회담 이후 회견이란 '당연한' 관례를 따랐고 중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일련의 상황은 결국 한국의 축소된 외교적 입지를 반영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으로선 특히, 북한과 대화의 고리조차 잃어버리고 딱히 효과적인 대북제재 수단도 없는 한국이 처음부터 주요 협상 대상이 아니었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미국과 일본의 대북 강경책에 편승해 스스로의 목소리나 입지를 만들지 못한 채 주도권을 잃어버렸다는 비판도 나온다.
구 야권 인사는 "대북 강경 일변도 정책을 펴오면서 북한에 대한 대화 지렛대를 모두 잃어버린 상태"라며 "우리 스스로 동북아 외교안보 이슈에서 입지를 좁힌 결과가 드러나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