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문구는 '우린 잃을 것이 없다'였다. 이밖에 '한번 붙어보자!!' '사고 한번 쳐보자!!' '죽기살기 REOUND' 등 다소 살벌한 표현도 있었다. 객관적인 전력상 열세인 만큼 정신력과 패기로 맞서보자는 의지였다.
임근배 삼성생명 감독은 "(오동석) 단장님이 선수들에게 그래도 힘을 불어넣어주자는 취지에서 문구를 붙여보자고 하시더라"면서 "그래서 몇 가지 문구를 골라 붙여봤다"고 말했다. 이어 "실력에서는 어차피 정규리그에서 7연패를 한 만큼 뒤지는 게 사실"이라면서 "그래도 '챔프전은 정신력이 좌우하니 한번 해보자'고 선수들에게 당부했다"고 강조했다.
삼성생명은 올 시즌 우리은행에 7번 만나 모두 졌다. 특히 28, 29점차 대패도 있었다. 가장 근소한 점수 차가 8점이었다. 우리은행은 명실공히 최강팀이다. 통합 4연패, 정규리그 5연패를 달성한 우리은행은 올 시즌 역대 프로 스포츠 최고 승률(33승2패, 9할4푼3리)을 썼다.
이에 우리은행은 다소 긴장하기는 했지만 여유있게 챔프전에 나섰다. 위성우 감독은 "부담 없으시죠?"라는 말에 "어유, 긴장이 된다"고 손사래를 쳤다. 그러면서도 위 감독은 청주 국민은행과 플레이오프(PO)에서 평균 23점 맹활약을 펼친 상대 김한별에 대한 수비를 묻자 "특별히 전담 마크를 하거나 하진 않을 것"이라면서 "누구든 막으면 된다"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정규리그 MVP 박헤진도 일단 "김한별 언니가 워낙 잘 하고 삼성생명의 기세가 무섭다"고 경계하면서도 "준비한 대로 하려고 노력할 것"이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양지희는 "김한별이 잘 하는 것은 맞지만 혼자만 넣는다고 이기는 게 아니다"면서 "우리 플레이만 한다면 될 것"이라며 베테랑답게 여유를 보였다.
삼성생명은 2쿼터에도 벌떼처럼 달려들었다. 우리은행 최장신 센터 존쿠엘 존스(197cm)가 수비 리바운드를 잡자 일제히 에워싸 공을 빼앗아 득점하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은행은 철옹성이었다. 삼성생명의 패기에 주춤했지만 본격적으로 몸이 풀리고 실전 감각이 돌아오면서 리드를 벌렸다. 2쿼터 중반 박혜진이 21-19로 역전하는 3점포에 이어 7점을 집중시켰고, 김단비도 5점, 임영희도 4점을 보태며 전반을 39-34로 앞선 채 마쳤다. 삼성생명도 김한별이 2쿼터 7점을 넣었지만 역부족이었다.
후반 우리은행은 본격적으로 점수를 벌리기 시작했다. 3쿼터 시작과 함께 존스, 임영희, 박혜진이 연속 득점하면서 10점 안팎의 리드를 잡았다. 전반에만 14점을 넣은 토마스도 존스, 양지희 등이 버틴 골밑을 쉽게 뚫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토마스는 3쿼터 종료 직전 양지희에게 쓸데없는 파울까지 하면서 파울 트러블에 걸렸다. 양지희는 자유투 2개를 차곡차곡 넣어 61-51, 10점 차 리드를 가져왔다.우리은행은 4쿼터 김한별의 3점슛, 배혜윤의 미들슛 등을 맞고 종료 4분10초 전 65-62까지 쫓겼다.
그러나 임영희가 곧바로 통렬한 3점포를 꽂아 한숨을 돌렸다. 임영희는 상대 센터 배혜윤을 막아내면서도 종료 1분 8초 전 존스에 고공 패스를 연결해 70-62로 달아나는 쐐기 득점까지 도왔다.
결국 우리은행은 72-64로 5전3승제 시리즈의 서전을 승리로 장식, 통합 5연패를 향한 시동을 걸었다. 임영희와 박혜진(7리바운드 9도움)이 34점을 합작했고, 존스는 리바운드를 무려 21개(10점)나 걷어냈다.
삼성생명은 죽기살기로 싸웠지만 우리은행이 너무 강했다. 김한별이 양 팀 최다 22점을 넣고, 토마스가 21점 16리바운드 7도움을 올렸지만 역부족이었다. 다만 올 시즌 막판까지 가장 대등하게 우리은행과 맞서면서 가능성은 확인했다. 두 팀은 17일 하루를 쉰 뒤 18일 오후 5시 같은 장소에서 2차전을 펼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