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속구 대결은 14, 15일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펼쳐졌다. 올 시즌 시범경기 개막전인 14일 KIA 한승혁이 불꽃을 당겼고, 15일 두산 이동원이 맞불을 놨다.
한승혁은 14일 두산과 홈 경기에 7-4로 앞선 9회 등판했다. 아웃카운트 2개를 잡는 동안 150km를 상회하는 직구를 뿌리던 한승혁은 서예일에게 던진 5구째는 157km가 중계 화면에 찍혔다.
이는 지난 2003년과 2004년 엄정욱이 SK에서 뛰던 시절 던진 한국 선수 최고 구속 158km에 겨우 1km 차다. 물론 한승혁의 공은 KIA 구단의 자체 측정에서는 156km가 나왔다.
그렇다고 해도 시범경기인 점을 감안하면 대단한 구속이다. 날씨가 아직 쌀쌀한 데다 시범경기라 무리하지 않는 상황에서 150km 후반을 기록한 것이다. 날이 따뜻해져 몸이 풀리면 그 이상의 구속도 기대할 만하다.
올 시즌을 앞두고 한승혁은 안정된 투구폼으로 구속은 물론 제구까지 좋아졌다는 평가다. 고교 시절부터 150km 이상의 빠른 공을 던져 2011년 1라운드 지명(8순위)을 받은 한승혁은 고질적인 제구 불안으로 지난해까지 통산 5시즌 6승14패 1세이브 16홀드 평균자책점(ERA) 5.99에 그쳤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제구가 잡히기 시작하면서 3승 9홀드로 가장 좋은 성적을 냈다.
하지만 역시 제구가 문제였다. 이날 12개의 공 중 10개가 볼이었고, 폭투도 2개나 됐다. 이동원은 볼넷 2개를 내준 뒤에도 볼 2개를 더 던지고 강판했다. 시범경기지만 이날이 1군 데뷔 무대였다.
이동원은 2012년 육성선수로 두산에 입단했다. 그러나 제구가 잡히지 않으면서 여전히 육성 선수 신분이다. 김태형 감독이 강한 어깨를 눈여겨보고 올해 처음으로 1군 스프링캠프를 소화했지만 다듬어야 할 부분이 많다는 게 두산 측 설명이다.
그렇다고 해도 160km 가까운 구속은 눈에 띌 수밖에 없다. 파이어볼러는 야구 팬들이라면 누구나 가슴 설레는 로망인 까닭이다. 일본이 자랑하는 에이스 오타니 쇼헤이(니혼햄)는 지난해 165km로 자국 최고 구속 신기록을 세웠다. KBO 리그에서도 엄정욱 이후 토종 파이어볼러가 모처럼 탄생할지에 대한 관심이 크다.
최근 KBO 리그의 강속구 투수들은 대부분 외국 선수였다. 엄정욱이 있었지만 이후 LG에서 뛰던 레다메스 리즈가 2011년 160km, 2012년 162km를 던진 바 있다. 최근에도 에스밀 로저스(전 한화)가 150km 중후반의 공을 뿌렸고, 지난해 역시 한화에서 뛴 파비오 카스티요도 150km 후반대를 찍었다.
그러나 한승혁은 올 시즌 KIA의 불펜 핵심으로 활약할 예정이다. 정규리그를 치르면서 몸이 풀린다면 엄정욱의 기록을 넘어설 가능성이 적잖다. 꿈의 160km 돌파 여부도 기대된다. 한승혁의 선배 한기주가 2007년과 2008년 159km를 찍은 적이 있지만 전광판과 각 구단 스피드건에 차이가 5km 차이가 나 인정받지는 못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제구와 안정감이다. 엄정욱도 매년 기대를 모았지만 부상에 시달리며 제대로 시즌을 치른 적이 별로 없었다. 2004년 7승5패1세이브 1홀드 ERA 3.76, 2012년 4승5패 3세이브 12홀드 ERA 3.20의 기록이 가장 좋았다. 2000년 데뷔해 2015년 은퇴까지 통산 20승18패 11세이브 14홀드 ERA 4.11에 머물렀다.
공이 빠르면 유리하지만 성적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오타니가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은 광속구를 던지면서도 제구가 받쳐주기 때문이다. 오타니는 지난해 21경기에 등판해 삼진 174개를 잡아내는 동안 사사구는 53개뿐이었다. 또 최근 3시즌 동안 평균 150이닝 이상을 소화해주는 꾸준함도 보였다.
한승혁과 이동원 역시 안정된 경기력이 우선이다. 그럼에도 광속구는 팬들을 열광시킨다. 과연 올 시즌 엄정욱을 뛰어넘는 토종 파이어볼러가 나올 수 있을까. 2017시즌을 달굴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