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싣는 순서 |
① "민주주의를 봤다" 촛불 앞에 선 사람들 ② "작은 목소리도 소중히" 온몸으로 전한 촛불 함성 (계속) |
대열 한편에는 언제나 '소리 없는 외침'이 있었다는 것을 고은희(29·여) 씨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이런 사실이 고 씨를 촛불집회 무대 위에 오르게 한 이유이기도 하다.
전북 전주시수화통역센터에서 수어통역사로 일하고 있는 고 씨는 전주 팔달로 사거리 촛불 집회의 유명인사가 됐다.
연사들의 발언부터 비장한 구호와 엄중한 노래, 흥겨운 공연까지 한 두 시간에 달하는 집회의 모든 과정을 고 씨는 온몸을 동원해 수어로 통역했다. 꽹과리와 기타 연주에 심취한 채 수어로 전하는 고 씨의 모습에 비장애인들의 감탄사가 이어지기도 했다.
사실 고 씨는 전주수화통역센터가 엄선해 촛불집회 현장에 내보낸 '에이스'다. 노래 등 문화공연이 주를 이루는 촛불 무대를 농인에게 제대로 전달하려면 평소 흥이 많은 고 씨만 한 적임자가 없었다.
고 씨는 "농인 분들에게 최대한 정확하게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집회 분위기를 온몸으로 느끼려 했다"며 "그러다보니 아직도 여운이 남았다"고 웃으며 말했다.
힘들어도 촛불집회를 등질 수 없었던 것은 농인들의 관심 때문이었다.
고 씨는 "안무를 곁들인 공연 공간 확보 때문에 무대 밑으로 내려와 수어 통역을 한 적이 있다"며 "그랬더니 왜 무대 밑으로 내려왔느냐는 농인 분들의 항의를 듣고 책임감을 더 느꼈다"고 말했다.
탄핵을 향한 하나된 목소리가 군중을 아우른 촛불집회. 그 속에서 다양한 목소리가, 소외받는 이들의 움직임도 많았음을 고 씨는 잘 알고 있다.
"민주주의의 이념 중 하나가 평등이잖아요. 길을 지나가다가도 물건을 사다가도 농인을 만날 수 있거든요. 나랑 다른 사람이라고 무시하지 않고 농인도 우리와 같이 살아가는 존재라는 사실을 꼭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고 씨는 민주주의를 향해 벌어졌던 한 판 촛불집회가 농인과 청인(들을 수 있는 사람)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사회로 가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