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을 맞아 찜질방에서 잠을 청한 한 남성은 사물함에 넣어둔 지갑에서 현금 25만원이 사라진 사실을 알고 아연실색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폐쇄회로(CC)TV를 확인해 범행 장면을 포착했다. 그런데 아무리 뒤져봐도 찜질방을 나간 범인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이후 잠잠하던 찜질방은 이달 4일 또 한 번 소란을 맞았다. 한옥마을을 찾은 한 관광객은 사물함 열쇠를 머리맡에 두고 깜박 잠들었다. ‘찜질방 도둑’이 절호의 기회를 놓칠 리 없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종업원이 범행 현장을 포착했다. 범인은 깡마른 체구에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이 모(50) 씨였다.
이 씨는 도망칠 수도 없었다. 훔친 돈을 쥐고 찜질방 밖을 벗어나봐야 현실은 반복될 판이었다.
당초 이 씨는 혐의 일체를 부인했지만 경찰의 회유 끝에 범행을 자백했다.
이 씨는 병 때문에 잇몸이 녹아 음식물을 씹기 힘들어했다. 근육이 줄어들어 걷기도 힘든 상황. 동료 네 명이 함께 단칸방에서 살았지만 이 씨는 주로 찜질방에서 숙식을 해결해 왔다. 벌이가 없던 이 씨에게 병원치료는 언감생심이었다.
동종전과가 있어 구속 사유가 되지만 경찰은 일단 이 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그리고 유치장 대신 노숙자 쉼터로 이 씨를 이끌었다.
조사나 처벌보다는 병원 치료가 시급하다는 판단에서였고, 기초생활수급자 생계비와 병원 치료를 받도록 하려는 배려였다. 전후사정을 들은 피해자들도 선처를 바랐다.
덕분에 이 씨는 차츰 일상을 되찾고 있다. 자활 의지도 생겼다. 죗값을 달게 치른 뒤엔 왕년에 잡았던 택시 운전대를 다시 잡아볼 생각이다.
김현 전주덕진경찰서 강력 5팀 형사는 "어차피 다 사람 사는 세상 아니겠느냐"며 "법과 원칙에 따라 처벌하되 할 수 있는 선에선 도와줄 생각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