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전 대통령은 12일 저녁 7시 17분쯤 청와대 경내를 나와 20분만인 7시37분쯤 서울 삼성동 사저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박 전 대통령은 헌정 사상 초유의 '파면 대통령'이 됐음에도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보행 속도로 느리게 진행하는 차 안에서, 태극기를 들고 사저 앞에 대기하던 지지자들을 향해 환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드는 모습은 대통령 직을 수행할 때와 별반 달라 보이지 않았다. 트레이드 마크이자 세월호 7시간에서 논란이 됐던 올림머리도 여전했다.
그는 차에서 내려서도 사저 앞에서 대기 중이던 윤상현 자유한국당 의원 등 강성 친박 의원들과 일일이 눈을 맞추며 인사를 나눴다. 청와대 대변인의 입을 통해서조차 공식 퇴임 메시지를 전하지 않은 박 전 대통령이었지만, 이들에게는 10분 가까이를 할애했다.
특히 이들은 언론에 대해 강한 적대감을 보이면서 촬영 카메라를 태극기로 가리는가 하면, 곁에 있는 취재 기자에게 주먹을 휘두르기 일쑤였다. 박 전 대통령이 사저로 들어간 뒤 밤 10시가 넘어서도 인근에 남아있던 50여 명의 지지자들은 "종북 언론이 떠나야 우리도 간다"고 경찰과 취재진을 윽박지르기도 했다.
한편 청와대 대변인을 지낸 민경욱 자유한국당 의원은 박 전 대통령이 사저로 들어간 뒤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고 믿고 있다"는 메시지를 대신 전했다.
헌재의 파면 선고에 대한 승복 여부는 물론, 세월호 유가족에 대한 사과나 친박 단체의 폭력 집회에 자제를 요구하는 발언 등 그간 기대됐던 발언은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전혀 나오지 않았다.
대통령 당선 뒤 "5년 후에 아주 밝은 얼굴로 다시 뵙게 되기를 고대한다"며 환대 속에 사저를 떠난 박 전 대통령이 다시 돌아오며 지킨 것은 '밝은 얼굴'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