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혜상 소설집 '그가 내린 곳'

윤해서 소설집 '코러스크로노스' 등 신간 소설 2권

박혜상의 두번째 소설집 '그가 내린 곳'이 출간되었다. 이질적이고 고립된 이들이 상호 조화를 이루며 구축해내는 박혜상 특유의 부조리한 균형은 이번 소설집에 수록된 여덟 편의 소설들에서 빛을 발한다. 박혜상은 '그가 내린 곳'에 철저한 현실을 담아내면서도 삶의 체제를 고발하는 데 머무르지 않으며, 보다 근원적인 지점을 탐색하려 애쓴다. 그의 소설 속 고독한 타인들은 작가의 탐색을 보좌하며 자신을 몰아낸 세상의 바깥으로 끊임없이 방황한다. 도피가 아니며 세상에 대한 순응은 더더욱 아닌 이방랑은 ‘보이지 않는 손’이 지배하는 사회에 맞서는 움직임으로 읽힌다. 미지의 세계의 가능성을 ‘쓰기’로서 긍정하면서, 사회에서 내쳐진 ‘무쓸모 인생’들은 ‘당신’과의 만남에, 기묘한 연대에 이르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고 있다.

아무리 애써도 도달하지 못했거나 차라리 자의로 벗어났거나. '그가 내린 곳'에 등장하는 이들은 하나같이 세상의 기준에서 멀리 떨어진 ‘미완성 인생’들이다. 철거 입주민, 성소수자, 도피 유학자, 해고 노동자와 그의 가족, 무명 소설가와 시인…… 그들은 두서넛씩 짝 지어 대개 하나의 공간을 공유하면서 “지나치게 밀착된 시간”(「손가락을 세워라」)을 살아가지만 서로 간의 소통은 쉽지 않다. 그래서인지 그들은 늘 어딘가로 떠나려 한다. 그들이 향하는(혹은 도달한) 그곳은 낯선 어딘가가 아니라 이미 와보았던 곳, ‘다시’ 찾은 곳이다. 고향이기도 하고 누군가의 집이기도 하지만, 모두 “어딘가에 도착해 있다는 실감”은 나지 않는다. 거기서도 그들은 “허공에 떠 있는 것” 같다.

뒤를 돌아보면 언제나 바다가, 있다. 그렇다고 마을 앞에 놓인 바다를 출구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또 나를 좌절하게 만드는 거대한 무엇도 아니었다. 그저, 있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말 그대로 배후처럼, 밟을 수 없는 그림자처럼, 발목이 묻혀 있는 그림자처럼, 바다가 있다. _「봄눈」, p. 225


'그가 내린 곳'에는 작품을 완성하는 데 실패하고 글쓰기에 어려움을 겪는 작가들이 빈번히 등장한다. 이 소설집에서 쓴다는 것은, ‘고독도 전시’한다는 말에 숨어 있는 의미처럼 나를 보아달라는 뜻인 동시에 그를 넘어 본능적으로 존재를 증명하려는 외침이기도 하다. 무언가를 씀으로써 자신을 드러내는 그들이 쓰지 못한 채 어딘가/누군가를 향해 떠나는 이유는 영영 단절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와 ‘당신’을 가르는 한계의 지점으로 나아가 만나기 위해서일 것이다. 이 소설집의 해설을 맡은 문학평론가 김태선은 글쓰기, 곧 서로를 부르며 끌어당기는 일을 멈추지 않고 지속하는 것은 “생각을 유예하고 실행을 지연시키는 일이 현실 사회가 인물들에게 부과한 질서에 틈을 냄으로써 나타나는, ‘다른 곳’ ‘다른 것’, 그리고 ‘다른 이’를 향한 움직임”이라 읽기도 했다. 이처럼 박혜상의 소설이 지극히 어두운 현실을 전하면서도 빛을 잃지 않는 까닭은, 앞에 놓인 미지의 세계의 가능성을 ‘쓰기’로서 긍정하기 때문일 것이다.

박혜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76쪽 | 12,000원

소설가 윤해서의 첫번째 소설집 '코러스크로노스'가 출간되었다. 단편 「테 포케레케레」에 나오는 시간합창이라는 뜻의 ‘코러스크로노스’는 재건축이 결정되기도 전에 무너져버릴 듯한 허름한 건물 어딘가에 있는 공간이다. 실제 화장장이 있기도 한 이곳은 무엇이든 다 태워버릴 것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테 포케레케레」 외 다섯 편의 작품에도 다양한 공간들이 등장하는 덕분에 윤해서가 쓰는 이야기의 상당수는 여행 서사로 읽힌다. 여기의 모든 존재자들은 언제나 여행 중으로 서로에게 일시적으로 도착하고, 떠나보낸다. 그러나 작별은 모두 작은 죽음과 같아서, 미처 눈을 마주치지 못한 채 인사 없이 떠나보내는 일이 많고, 이런 비애의 감정이 작품 전반에 깔려 있어 순간순간 울컥하게 만든다.

윤해서 소설에 등장하는 광활하고 까마득한 세계, 관측 불가능한 우주 너머를 상정할 때의 감정, 이것을 윤경희 평론가는 “윤해서 소설의 시공간은 숭고의 지배 아래 있다”고 표현한다. 윤해서가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시공간은 낡은 범주와 낡은 언어를 돌파해 새로운 양상의 허구를 조형해낸다. 사려니 숲으로, 남반구의 소금사막으로 알제리의 수도로 보라보라 섬으로, 서빙고역 4번 출구로…… 이렇게 무한히 오고 가며 서로 다른 속도와 시차로 현기증과 망연자실과 관능의 쾌감을 일으키는 일이 윤해서적 유머와 황홀한 애수의 기질로 무한히 펼쳐져 있다. 새로운 시간, 새로운 공간을 꿈꾸는 이 문장들은 무엇도 가능하게 할 이야기로 가는 희망의 빛을 내비춘다. 마치 오지 않을 고도를 기다리는 일처럼 막막한 일이지만, 죽음을 딛고 사랑으로, 무위를 떨치고 행위로 가는 생중사(生中死)의 여정이 이 소설 속에 거침없고 무한하게 펼쳐져 있다.

윤해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486쪽 | 14,000원

추천기사

실시간 랭킹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