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취임과 동시에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세월호 참사, 통합진보당 해산 청구, 메르스 사태 등 역사에 한 획을 긋는 굵직한 사건을 마주한 박 대통령은 중요 순간마다 '아몰랑'과 '유체이탈 화법'으로 국민들의 빈축을 샀다.
일명 '콘크리트' 지지층이라 불리는 고정 보수층이 박 대통령의 실정을 감쌌지만, 결국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민낯이 속속 밝혀지면서 영구 퇴장이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CBS노컷뉴스는 박 대통령 취임일인 2013년 2월 25일부터 역사에 기록될 2017년 3월10일까지 헌정사에서 5번째로 임기를 채우지 못한 박 대통령의 걸어온 길을 정리했다.
박 대통령은 2월25일 국회에서 취임식을 마친 뒤 서울 광화문광장으로 이동해 '희망이 열리는 나무' 행사에 참석했다. 박 대통령은 국민들의 소망이 적힌 복주머니 속 메시지를 읽는 퍼포먼스를 벌였는데 이 때 등장한 게 오방낭이다. 청, 황, 적, 백, 흑의 오색비단을 사용하고 복을 비는 부적을 담기 위해 음양오행의 원리에 따라 만든 오방낭이 18대 대통령 취임식에 등장한 것.
당시에는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JTBC가 지난해 10월 입수한 '비선실세' 최순실씨 소유 태블릿PC에 오방낭 파일이 담긴 것으로 확인되면서 무속인 최태민의 딸 순실씨의 샤머니즘이 청와대까지 접수한 것 아니냐는 비아냥이 나왔다.
같은 해 5월 취임 후 첫 해외방문지인 미국에서 '대통령의 입' 윤창중 당시 청와대 대변인이 20대 인턴 여직원을 성추행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박 대통령은 "앞으로 이런 일이 생기면 관련 수석들도 모두 책임져야 할 것"이라는 유체이탈 화법을 처음으로 선보였다.
7월2일 국정원 대선 개입 국회 국정조사가 시작됐다. 10월 국정감사에서는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김광진 의원의 질의로 국군 사이버사령부의 대선 개입도 드러났다. 국방부는 4명의 소수 군인이 벌인 개인적 일탈이라고 해명했지만 거짓으로 밝혀졌고, 사이버사령부가 압수수색 당하는 굴욕도 겪었다.
박 대통령은 "국정원의 어떤 도움도 받은 게 없다"(6월24일)고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제가 그깟 댓글 몇개로 대통령이 됐다고 생각하시나요?"라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하지만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대선개입을 지시한 혐의(공직선거법 위반 등)로 기소돼 1심에서 집행유예, 2심에서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고, 대법원에서 파기환송돼 현재도 재판이 진행중이다.
신년연설 "통일은 대박이다"는 금강산 관광 중단 이후 경색된 남북관계에 훈풍이 불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을 높였다. 하지만 이 역시 정호성 전 청와대 비서관이 최순실씨와 연설문을 고치는 과정에 추가된 문구인 것으로 드러났다.
'4월16일 사망 295명, 실종 9명'
제주로 수학여행을 떠난 안산단원고 학생들을 비롯해 교사, 일반인 승객 등 30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박 대통령은 참사 3일만인 19일 진도 팽목항을 방문했지만 실종자 가족들의 격렬한 항의를 받고 쫓기듯 상경했다.
참사 당일 뒤늦게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나온 박 대통령은 "학생들이 구명조끼를 입었다는데 그렇게 발견하기 힘듭니까?"라는 이해하기 힘든 질문으로 '세월호 7시간' 의혹에 불을 당겼다.
5월19일 박 대통령은 대국민담화를 발표하며 눈물을 흘렸다. 또 즉각 구조에 실패한 해양경찰에 책임을 물어 '해경 해체'를 전격 발표했다.
하지만 박영수 특검의 수사 결과, 박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직후에도 청와대 관저에서 김영재 성형외과 원장을 '보안손님'으로 불러들여 보톡스 시술을 받았다. 김 원장으로부터 받은 시술은 밝혀진 것만 5월까지 5차례다. 5월은 잠수사들이 목숨을 걸고 세월호 실종자 수색작업에 나설 때(6일 잠수사 이광욱씨 사망)였으며, 전국에서 추모집회 촛불이 슬프게 타오를 때였다.
그해 12월 최씨의 남편이자 한때 비서실장이었던 '정윤회 비선실세' 의혹이 터졌다. 박 대통령은 "지라시에나 나오는 얘기들에 나라 전체가 흔들린다는 것은 정말 대한민국이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불쾌감을 노골적으로 표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이미 2013년 4월 최씨의 딸 정유라가 상주 승마대회에서 준우승에 머물자 승마협회 조사는 물론 잘못된 보고서를 올린 문체부 노태강 국장과 진재수 과장 해임을 지시하는 등 비선실세 최씨의 요구를 충실히 따르고 있었다. '지라시'라고 언급했지만 3개월 전인 9월 대구 창조경세혁신센터 개소식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만난 박 대통령은 "승마협회 회장사를 삼성그룹이 맡아주고, 정유라 등 유망주들에게 좋은 말도 사주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1월12일 신년 기자회견장에서 박 대통령은 "대면보고가 그렇게 중요하다면 그걸 늘려가겠지만, 그게 필요하다고 생각하세요?"라고 물으며 웃음을 터뜨렸다. 배석한 국무위원들은 멋적게 따라 웃었지만 어색한 기운은 감추지 못했다. '해외순방이 아니면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관저에 머물며 서면보고만 받는다'는 세간의 비아냥도 이때부터 본격 시작됐다.
"청년들이 다 중동으로 가 대한민국이 텅텅 빌 정도로 일해보자"(3월19일 무역투자진흥회), "간절하게 원하면 전 우주가 도와준다"(5월5일 어린이날 청와대 행사), "역사 교과서 전체를 다 보면 그런 기운이 온다"(10월22일), "역사를 모르면 혼이 없고, 잘못 배우면 혼이 비정상이 된다"(11월10일 국무회의) 등 '오방낭' 같은 발언도 쏟아졌다.
중동발 메르스(중증호흡기증후군) 재난이 전국을 강타했지만 정부는 초기 방역과 격리에 실패했고 격리 대상자 682명, 감염 186명, 사망 38명이라는 처참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박 대통령은 그해 6월 메르스 환자들이 격리 치료중인 국립의료원을 방문해 "여기 계시다가 건강하게 다시 나간다는 것은 다른 환자분들도 우리가 정성을 다하면 된다는 얘기죠?"라는 또다른 '재난 발언'을 내놨다.
박 대통령은 임기 4년차에 접어들면서 차기 대선을 위한 사전 포석으로 안보카드를 만지작거렸다.
2월22일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이철우 의원의 테러방지법 발의로 상반기 국회는 초토화됐다. 국가비상사태에 준한다며 정의화 국회의장이 직권상정 카드를 꺼내들었고 이를 막으려는 민주당의 필리버스터는 192시간을 넘어섰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는 결정되거나 논의된 바도 없다던 국방부 발표는 단 며칠만에 뒤집어졌고 한미 양국은 사드배치를 공식 발표했다. 경북 성주 배치가 결정되자 성주 주민들의 거센 반발이 일었고, 경북 김천 등 다른 후보지를 변경을 놓고도 반대에 부딪치는 등 좌충우돌했다.
국회 국정감사를 한달 앞둔 9월 대기업들의 '팔을 비틀어' 설립한 K스포츠·미르 재단 설립에 최순실씨가 개입했다는 정황이 포착되며 박 대통령은 궁지에 몰렸다. 국감에서 두 재단의 설립에 청와대와 문화체육관광부, 전경련 등이 총동원된 사실이 밝혀지면서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을 사인(私人)을 위해 남용했다는 비판이 거세게 일었다.
결코 드러날 것 같이 않았던 비선실세와의 밀월은 "최씨가 대통령 연설문을 직접 고쳤다"는 고영태씨의 폭로와 이를 뒷받침하는 태블릿PC의 등장으로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이후 정유라 특혜 부정입학과 삼성의 거액 지원, 청와대 비선진료 의혹, 삼성 경영권 승계 지원, CJ 이미경 부회장 퇴진 강요 등이 사실로 밝혀지면서 12월 9일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의결됐다.
헌법재판소는 치열한 변론을 거쳐 91일만인 10일 '탄핵 인용'을 선고하면서 박 대통령은 부여받았던 임기보다 351일 일찍 권좌에서 내려오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