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아이는 세상 어디에도 없어"

[노컷 리뷰] 있는 힘껏 사랑하며 살자는 사람들의 이야기 '아빠는 나의 여신'

이 기사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편집자주]

영화 '아빠는 나의 여신'의 한 장면 (사진=드림팩트 엔터테인먼트 제공)
곧 태국으로 가 '몸까지 여자가 되는' 것을 앞둔 트랜스젠더 댄서 엔젤(야스다 켄)은 오랫동안 알고 지낸 스태프 마나미(스도 리사)와 축하 파티를 벌이다 술김에 자게 되고, 이 과정에서 뜻밖의 새 생명이 태어난다. 마나미가 운영하는 동네의 작은 술집 이름이기도 한 사요코(후지모토 이즈미)가 그 주인공이다.

극중 인물들은 소위 '잘나가는' 부류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있는 위치다. 졸지에 싱글맘이 되어 아이를 키워야 하는 마나미는 웃음과 친절함을 팔며 돈을 벌고, 사요코는 친구들로부터 '술집 딸'이라는 놀림을 받는다. 사요코 탄생 후 엔젤의 일상은 자세히 다뤄지지 않지만, 고된 일 때문에 지쳐있거나 사랑에 상처받은 모습이 등장해 녹록지 않다는 것만은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설상가상으로 술집 사요코는 술값이 싸거나 정 때문에 오는 소수의 단골손님밖에 남지 않아 서서히 쇠락해가고 있고, 마나미는 빚쟁이에게 시달린다. 도쿄로 떠났던 사요코는 만나는 남자들에게 연신 퇴짜를 맞으며 '연애 실패' 경험만 쌓은 채 돌아온다.

빚 때문에 가게를 처분하려는 마나미는, 술집 사요코가 옆동네의 트랜스젠더 바 '샤프'의 분점이 된다는 소리를 듣고 사요코와 종업원 료코와 함께 '샤프'에 간다. 화려한 퍼포먼스와 특유의 살가움이 있어 손님이 늘 만원인 '샤프'에서 세 사람은 모처럼 실컷 웃고 돌아온다. 사요코와 료코는 급기야 트랜스젠더 바를 운영하자는 데 뜻을 모은다.

갖고 태어난 성과 자신이 원하는 성이 달라 트랜스젠더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아픔을 알고 있는 마나미는 극구 반대한다. 사람들의 냉소와 곱지 못한 시선을 견뎌온 시간들이 쌓였기 때문에 진솔한 손님 응대도 가능한 것이지, 단순히 트랜스젠더를 '흉내'내려고 하면 안 된다는 주장이었다.


영화 '아빠는 나의 여신'의 한 장면 (사진=드림팩트 엔터테인먼트 제공)
아주 오랜만에 무언가 해 보고 싶다는 의욕에 휩싸인 사요코는 어릴 적 사진에서 보았던 엄마의 친구 엔젤에게 도움을 요청하러 길을 나선다. 엄마가 인정해주지 않아도 '진짜' 트랜스젠더인 엔젤에게 인정을 받으면, 트랜스젠더 바를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마나미가 틈날 때마다 전화로 사요코 소식을 전해도 무심하기만 했던 엔젤은, 고향에서 올라온 귤 박스를 보고 나서 사요코와 료코의 '야심찬 계획'에 힘을 보태기로 결정한다. 혹독한 트레이닝을 통해 안무를 짜고 애티튜드를 가르친 끝에, 사요코 가족과 료코가 만드는 트랜스젠더 바를 열게 된다.

결과는 대성공. 한적했던 술집 사요코는 손님들로 북적이는 새로운 트랜스젠더 바가 되고, 사요코와 료코도 한껏 능숙하게 트랜스젠더인 '척'을 하며 돈을 번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들키지 않는 속임수란 없는 것. 매정하게 굴었던 빚쟁이는 화려한 트랜스젠더 바보다 좀 촌스럽더라도 다른 데에서는 '받아주지 않는' 손님들을 기꺼이 품었던 과거 '사요코'가 더 좋았다며 아쉬움을 전한다.

더 이상 정체를 숨긴 채 일을 해 나가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판단한 마나미는 결국 트랜스젠더 바를 그만두고 다시 술집 사요코의 문을 열어, 정겨운 동네 사람들을 맞는다.

트랜스젠더인 아빠, 술집 마담인 엄마, 늘 사랑에 실패하고 마는 딸 사요코. 소위 '별볼일 없는' 사람들로 나오는 이 독특한 '가족'을, 건조하지도 지나치게 물기어리지도 않은 특유의 담백함으로 담아낸 것이 이 영화의 미덕이다.

평범하지 않은 각자의 위치 때문에 편견어린 시선을 받는 '현실'을 숨기지 않으면서도, '아무렴 뭐 어때' 하고 이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따뜻한 이웃들을 동시에 보여준다. 누군가로부터는 손가락질받지만, 이들도 사회의 한 일원이고 나아가 다른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일깨워준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영화 '아빠는 나의 여신'의 한 장면 (사진=드림팩트 엔터테인먼트 제공)
흔치 않고, 다소 정신없어 보이기까지 하는 이 '가족'을 통해 영화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 답은 영화 초반에 등장한다. 태국으로 가서 여자로 다시 태어날 수는 있어도, 귤농사를 물려받아야 할 '장남'이기에 부모님에게 '여자'로 인정받을 수 없어 괴로워하는 엔젤에게 마나미는 묵직한 한 마디를 남긴다.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아이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어"라고.

주어진 성별과 원하는 성별이 일치하지 않는 혼란을 평생 겪고 좋아하는 남성들에게 수없이 상처받았다고 할 지라도 '태어남'으로서 갖게 되는 존재 자체를 부정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이 메시지는 엔젤뿐 아니라 사요코, 사요코의 딸 아스카에게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여자에게는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남자에게 차이고 돌아온 사요코에게 엔젤은 자신의 숱한 연애 실패기를 고백하며 말한다. "새로운 사랑은 또 있어. 우리 약속하자. 다음 사랑이 시작되면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하자고. 되돌려 받지 않아도 괜찮아. 있는 힘껏 사랑하는 거야."

갖은 풍파 속에서도 '있는 힘껏' 사랑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이들의 이야기를 유쾌하고 발랄하게 그리면서도 어느샌가 마음 찡하게 만드는 영화 '아빠는 나의 여신'은 오는 23일 개봉한다.

실시간 랭킹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