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야구 국가대표팀이 나름 '유종의 미'를 거뒀다. 이스라엘과 네덜란드에 연패를 당해 일찌감치 본선 2라운드 진출이 결정됐지만 대만을 상대로 처음이자 마지막 승리를 챙기며 국내에서 처음 열린 2017 WBC 대회를 마무리했다.
한국은 9일 오후 서울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린 대회 마지막날 A조 최종전에서 연장 접전 끝에 대만을 11-8로 눌렀다. 지난 2경기동안 19이닝 1득점에 그쳤던 타선은 활발하게 폭발했다. 대만의 화력도 만만치 않았고 마운드는 여전히 불안했지만 중심타선이 살아난 한국 타선이 결국 위기를 극복해냈다. 특히 김태균의 10회 대타 투런포가 결정적이었다.
뒤늦게 방망이에 시동이 걸렸다. 결과적으로 대회 개막전이었던 이스라엘전 패배가, 특히 득점권에서 끝내 터지지 않은 한방이 아쉬웠다.
김인식 감독은 이스라엘전이 끝나고 "오승환이 위기 때 막아줬으면 했는데 잘해줬다. 그 이후에 득점을 뽑았어야 했는데 뽑지 못했다"며 아쉬워했다.
당시 대표팀은 1-1 동점이던 8회초 1사 만루 위기를 실점없이 넘겼다. 임창민이 이닝 두번째 아웃카운트를 잡았고 오승환이 등판해 시원한 탈삼진으로 이닝을 끝냈다.
곧바로 위기 뒤 찬스가 왔다. 김태균이 볼넷으로 걸어나갔고 1사 후 손아섭이 중전안타를 때려 대주자 오재원이 3루까지 질주했다. 김인식 감독은 이 상황을 두고 '마지막 찬스'였다고 돌아봤다. 최형우 대타 카드를 꺼내들 수도 있었지만 당일 민병헌의 타격감이 좋다고 판단해 그대로 밀어부쳤다. 그러나 민병헌과 양의지가 범타로 물러났다.
이전에도 득점 기회는 많았다. 하지만 대표팀은 5회말 서건창의 적시타로 1점을 뽑는데 그쳤다. 전반적으로 타격 감각이 많이 떨어져있는 느낌이었다. 또 시속 150km를 넘나드는 강속구를 던지는 이스라엘의 핵심 투수들의 릴레이 호투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이스라엘만 잡았다면 모든 상황이 달라졌을 것이다. 적시타 한방만 더 나왔어도 부담이 덜한 가운데 네덜란드를 만날 수 있었을 것이다. 이제는 다 의미없는 가정이다. 김인식 감독은 WBC에서 잊지 못할 아쉬움이 하나 더 늘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경기 일정은 개최국 한국에게 유리해보였다. 개막전을 이유로 네덜란드, 대만보다 하루 먼저 경기를 했다. 이틀 연속 경기를 펼친 뒤 하루 쉬고 마지막날 경기를 하는 일정이었다. 투구수 제한 규정을 적용하더라도 첫 2경기 연속 등판한 투수의 마지막날 경기 등판이 가능했다.
결과적으로 일정은 한국에게 독이 됐다. 한국이 그랬던 것처럼 이스라엘은 개막전에서 총력전을 펼쳤다. 이스라엘이 첫날 한국전에 출전시킨 투수들과 둘째날 대만전에 내보낸 투수들의 실력 차이가 제법 있었다.
한국에게 네덜란드는 2차전 상대였지만 네덜란드에게 한국은 첫 경기 상대였다. 네덜란드는 총력을 쏟아부었다. 한국과 만난 다음날 대만전에 등판한 투수들의 기량은 상대적으로 떨어졌다. 원바운드 볼을 수도 없이 던졌다.
단기전의 첫 판은 늘 변수가 많다. 이스라엘은 생각보다 준비를 많이 했다. '스프레이 히터' 서건창을 상대로 왜 우측 시프트를 시도했는지 모르겠지만(결국 중간에 시프트를 포기했다) 어쨌든 이스라엘 벤치는 적극적으로 뭔가를 시도했다. 투수 16명을 데려온 전략적인 선택도 결과적으로 성공을 거뒀다.
반면, 한국은 개최국의 부담감을 너무 크게 느꼈던 것으로 보인다. 첫 경기에서 투수들의 제구 난조가 심각했고 타자들의 방망이는 시원하게 돌아가지 못했다. 한국은 2009년 WBC 도쿄라운드에서 대회 초반 일본에 콜드게임패를 당한 바 있다. 이를 계기로 각성했고 결국 도쿄를 떠나기 전 일본에 무실점 설욕을 해냈다. 그러나 이번에는 아픔을 만회할 기회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