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라이트' 누구나 평등한 푸른 달빛의 마법

[노컷 리뷰] 소수자가 이 세상에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하여

영화 '문라이트' 스틸컷. (사진=CGV아트하우스 제공)
여기 세 가지 이름을 가진 흑인 소년이 있다. 삶의 어떤 순간에서 그는 '리틀'이자 '샤이론'이었고 이제 '블랙'으로 불린다.


영화 '문라이트'는 '달빛 아래에 흑인 소년들은 파랗게 보인다'라는 연극을 각색해 영화로 만든 작품이다. 어린 아이와 소년 그리고 청년의 얼굴을 이어붙인 몽환적인 포스터는 이 영화의 메시지를 명확히 드러낸다.

마약 소굴에서 흑인으로 태어난 한 아이가 청년이 되기까지, 영화는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주인공의 인생을 담담하게 따라간다. 그가 불린 이름에 따라 영화는 세 시점으로 나뉜다. 연극의 막이 올라가고 내려가듯이 유년기와 소년기 그리고 청년기는 시작됐다가 마무리된다.

1막은 샤이론의 어린 시절이다. 편모 가정에서 자란 '리틀'은 어머니에게 사랑받지 못하고 있다고 느끼는 어린 아이다. 그는 아이들에게 쫓기던 도중 마약 판매상 후안을 만나게 되고, 그의 돌봄 속에서 자신을 성장시켜 나간다. 유일하게 자신과 친구가 된 케빈과의 만남도 이 때 이뤄진다.

2막은 청소년이 된 샤이론의 이야기다. 여전히 아이들에게 멸시당하는 그는 점점 마약 중독 증세가 심해지는 어머니에게 학대 받는다. 이제 후안은 세상을 떠났고, 후안의 여자친구인 테레사는 그에게 어머니 역할을 대신한다. 그는 케빈에게 가진 감정이 사랑임을 깨닫지만, 또래들 사이 폭력 사태에 휘말려 경찰에 구속된다.

마지막 3막에는 청년이 된 샤이론이 등장한다. 마른 체구에 누구에게나 무시 당하던 '리틀'은 이제 어디에도 없다. 후안과 똑같이 마약 판매상의 길을 걷는 그는 단단한 외양 안에 상처를 묵힌 채 살아간다. 마약 중독자인 어머니는 요양 시설에서 그에게 참회의 눈물을 흘린다. 그는 몇년 만에 케빈과 연락이 닿고, 그를 만나기 위해 식당으로 향한다.

가난한 흑인에 성소수자 그리고 마약판매상. 주인공 샤이론은 태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미국 주류 사회에 한 번도 속해 본 적이 없는 인물이다. 트럼프 시대를 맞은 제89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이 소수자 차별 문제를 정면에서 다룬 이 영화를 최우수 작품상으로 선택한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런 인물이 주인공인 영화들이 대개 극적인 드라마 속에 감동을 녹여내는데 반해 '문라이트'는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고요한 침묵과 생략 안을 들여다보면 날 것 그대로인 배우들의 얼굴과 동작이 빈틈없이 채워져 있다. 빛을 이용해 인간의 내면과 성장을 표현하는 연출, 여기에 어우러진 클래식이 영화를 특별하게 만든다.

약자로서의 온갖 조건을 갖고 있지만 샤이론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어떤 행동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저 자신이 주어진 조건 아래에서, 끊임없이 상처 받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갈 뿐이다. 그를 향한 폭력과 학대는 무뚝뚝한 샤이론의 표정에 섞여 속절없이 흘러가 버린다.

'샤이론'이라는 한 흑인 남성의 삶과 내면에 집중하기 때문에 마약, 동성애, 폭력 등의 소재는 전혀 자극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케빈과 함께하는 순간 역시 달빛 속 흑인들이 서로를 위로하는 애달픈 몸짓에 가깝다. 다만 그가 겪어야 했던 상처는 겹겹이 쌓인 지층이 되어 순식간에 마음을 무겁게 짓누른다.

3막은 샤이론이 화석처럼 굳어버린 상처를 치유하는 시간이다. '블랙'은 요양소에서 어머니를 만나 "너는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되지만 나는 너를 사랑한다"는 말에 참아왔던 눈물을 흘린다. 그 곳에 '블랙'은 없고 이제야 어머니를 용서하게 된 어린 '리틀'만이 남아 있다.

언제나 홀로 세상을 살아 온 그는 케빈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위로하고, 위로받는 현재를 살게 된다. 좁은 공간에서 서로를 의지한 두 사람에게 쏟아져 들어오는 달빛은 마이애미 바닷가에서 푸른 달빛을 받으며 서 있는 어린 '리틀'을 떠오르게 한다.

가장 어두운 순간 속에서도 인간은 아름답게 빛난다. 어쩌면 '문라이트'는 모든 소수자들에게 삶을 '살아내는' 끈질긴 의지를 당부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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