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로 확인될 경우 피해 규모는 훨씬 커질 수 있으며 전면적인 재조사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 우렁찬 소리로 태어난 아이, 생후 50일 만에…
금쪽같은 둘째 딸 의영이가 별안간 숨을 거둔 건 지난 1995년 11월. 우렁찬 소리를 내며 태어난 지 딱 50일 만이다.
감기 증상처럼 보였으나 병원 진료를 받아도 웬일인지 낫질 않았다.
그러다 누런 콧물이 나오고 입술까지 파래지자 어머니 허정자(50) 씨는 아동전문병원을 찾았다.
그리고는 어쩐 일인지 하루 뒤 숨졌다. 사망진단서에 따르면 사인은 모세기관지염과 흡입성 폐렴, 그리고 이에 따른 바이러스성 심근염이었다.
허 씨는 이때부터 20년 이상 아이의 유골이 뿌려진 경기도 보광사 뒤편 언덕에 색색의 꽃을 들고 찾아가고 있다. 열 달 배불러 나은 딸이 잊힐 수 없었다.
◇ "반지하 방 건조해 매일 틀었는데 화근이 될 줄은"
20년이 흘렀고 지난해 허 씨는 뉴스를 보다가 가습기 살균제가 10년간 1000명이 넘는 사람을 죽였다는 소식에 무릎을 탁 쳤다. 50일 동안 문제의 살균제에 오롯이 노출돼 있던 의영이의 죽음과도 관련이 있다고 직감한 것.
반지하에 살면서 방이 건조하다 보니 매일 같이 가습기를 틀었던 게 화근이 될 줄은 당시로써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이후 이들은 용기를 내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을 찾아 가습기 피해조사를 신청하려 했으나 병원 진료기록이 없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해당 병원에서는 22년 전 기록이라 폐기한 상태라고 밝혔다.
남편 이장수(62) 씨는 6일 오후 서울 종로구 환경보건시민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의영이에게는 미안하단 생각밖에 안 든다. 우리가 계속 죽으라고 가습기 튼 것밖에 안 되지 않느냐"고 안타까워했다.
◇ "피해자 더 찾기 위해 대규모 조사 필요"
환경단체 환경보건시민센터는 최근까지 정부에 접수된 피해신고를 분석한 결과, 가습기 살균제 피해로 1995년 사망한 것으로 접수된 사례는 모두 2건이었다고 밝혔다.
여기에는 의영이 뿐 아니라 같은 해 8월 숨진 한 성인 남성(당시 54세)도 포함됐다.
이들은 모두 1994년 출시된 SK케미칼(당시 유공) 가습기메이트 사용자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그동안 학계에서는 2005년 이후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가 발생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던 만큼 전면적인 재조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환경보건시민센터 최예용 소장은 "과거 가습기 살균제를 썼던 피해자 가운데는 본인이 어떤 제품을 썼는지 몰라 신고하지 않고 있는 사람도 많다"며 "피해자를 더 찾기 위한 대규모 역학조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한편,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망자 전체 1112명 가운데 연령별로는 생후 1년이 안 된 만0세의 영아 사망이 78명으로 가장 많은 것으로 분석 결과 드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