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김순실 (88세, 일성여고 신입생)
여러분 고등학교 몇 살에 입학하셨어요? 보통은 17살 늦어도 10대에 들어가죠. 그런데 자그마치 88세. 여든여덟의 할머님이 올해 고등학교에 입학을 하셨습니다. 제가 만학도 어르신들 여러 번 인터뷰 해 봤지만 정말 88세는 처음이에요. 오늘 화제 인터뷰 일성여중고등학교 1학년 김순실 학생, 김순실 어르신 직접 만나보죠. 할머님, 안녕하세요.
◆ 김순실> 네, 안녕하세요.
◇ 김현정> 아니, 진짜로 여든여덟 맞으세요?
◆ 김순실> 맞죠.
◇ 김현정> (웃음) 아니, 지금 목소리도 굉장히 청량하세요. 몇 년생이십니까, 그럼?
◆ 김순실> 1930년생입니다.
◇ 김현정> 1930년생. 이야, 지난 2일에 입학식 하셨죠, 할머님. 그 학교에 최고령 신입생이신데 다른 사람들 보니까 40대, 50대도 다 딸 같고 동생 같고 그러셨겠어요?
◆ 김순실> 네, 딸 같고요. 동생 같고요. 걔네들 젊음을 따라가지 못하지만 그래도 잘 따라가고 있습니다.
◆ 김순실> 네.
◇ 김현정> 괜찮으세요, 매일 그렇게 다니기가?
◆ 김순실> 학교 다니니까요. '내가 갈 데가 있다. 매일 내가 갈 데가 있다.' 그래서 즐거워요.
◇ 김현정> 즐거우세요?
◆ 김순실> 네.
◇ 김현정> 아니, 그래도 할머님. 지금 목소리 들으니까 정정하시긴 합니다만 그래도 편하게 노후 즐기면서 취미활동 하면서 친구분들하고 이야기 나누시면서 이렇게 쉬셔도 될 나이에 어떻게 학교를 입학하시겠다 결심까지 하셨어요?
◆ 김순실> 저는 세대를 잘 택하지 못했잖아요. 그래서 좀 살면서 어려운 일이 많았어요.
◇ 김현정> 무슨 어려운 일이 많으셨어요?
◆ 김순실> 나라가 안전치 못하고요. 6.25사변 나고 결혼하고…. 군인하고 결혼했는데 제가 국가 미망인이에요. 국가유공자 미망인….
◇ 김현정> 그러면 군인하고 결혼했는데 남편이 돌아가셨어요, 전쟁 통에?
◆ 김순실> 네.
◇ 김현정> 아이들은, 자녀는 두셨습니까?
◆ 김순실> 그렇죠. 아이들이 아들만 셋이 있어요.
◇ 김현정> 아들만 셋? 남편 그렇게 잃고 어떻게 뭘로 생활을 버티셨어요?
◆ 김순실> 그때는 또 손으로 뜨는 뜨개가 유행했었어요. 그래서 하루에 스웨터 하나씩 뜨는 그걸로 살았죠.
◇ 김현정> 아니, 이거 떠보신 분들은 아세요. 손뜨개 가지고 하루에 스웨터 하나가 나올 수 없는 건데요.
◆ 김순실> 네, 잠을 안 자면서 그렇게 떴어요.
◇ 김현정> 참…. 손이 부르트도록. 밤을 꼬박 새가면서?
◆ 김순실> 꼬박 새가면서 그렇게 했습니다.
◇ 김현정> 한이 많으세요, 우리 할머님 여러 가지로.
◆ 김순실> 네. 많았어요. 또 저는 그래서 역사를 모르고 사는 게, 한국 사람으로서 역사 모르는 게 참 부끄러운 일이다, 내가 이렇게 생각하고 역사를 좀 알아야 되겠다, 하는 한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 김현정> 그러면 고등학교를 입학하겠다고 결심하신 것도 역사 공부를 좀 더 하고 싶으셨어요?
◆ 김순실> 그런 것보다도 또 학교 들어가니까 영어도 또 하고 싶고요.
◇ 김현정> 영어도 하고 싶고?
◆ 김순실> 네. 뭐 많아요.
◇ 김현정> 잠깐 할머님, 할머님. 그러면 지금 중학교에서 영어 배우셨겠네요?
◆ 김순실> 그럼요. 배웠죠.
◇ 김현정> 이야, 그러면 영어로 한번 자기소개 해 보시죠.
◆ 김순실> 갑자기 하려니까. (웃음)
◇ 김현정> 아, 갑자기 하려니. 원래 쉬운 건 아니에요. Hello부터.
◆ 김순실> 마이 네임 이즈(My name is) 김순실입니다. (웃음)
◇ 김현정> 이야, 잘하셨어요. ‘마이 네임 이스 김순실입니다.’ 하면 다 통해요.
◆ 김순실> (웃음) 학교를 다니면서 영어를 배우니까 외국 사람만 보면 그전에는 거리감을 두고 이랬거든요. 그런데 요새 학교 다니고부터는, 전철에서 외국 사람을 만나잖아요? 그러면 자리가 비어 있는데도 서 있어요, 키가 큰 외국 사람이요. 그 사람 보고 'Please sit down. Please sit down' 이러면 'Thank you. Thank you" 이러고 앉아요, 그분이.
◇ 김현정> 아, Please, sit down?
◆ 김순실> 네. 또 그분이 내리잖아요. 전철에서 내릴 때 그러면 ‘Have a nice day’ 해요.
◇ 김현정> 그걸 어려워 안하시고 막 하세요, 외국인한테? 우리 할머니 대단하시네요, 진짜.
◆ 김순실> 미국 사람한테 말하기가 힘들거든요. 그렇게 말하기가 돼요. 말하기가 돼요.
◇ 김현정> 세상에, 세상에. 스스로도 신기하고 재미있으신 거예요?
◆ 김순실> 네, 재미있어요. 아주 재미있어요. (웃음) 외국 사람 만나면 배운 걸 좀 말하고 싶어요, 자꾸만. 배운 걸 자꾸만 되풀이하는 거예요.
◆ 김순실> 네, 즐거워요.
◇ 김현정> 그러면 영어를 그렇게 좋아하시는데 시험 보면 점수는 얼마나 나와요?
◆ 김순실> 점수요? 시험 보면요. 점수는…. 별로에요.
◇ 김현정> (웃음) 별로세요?
◆ 김순실> 젊은 사람들은 대학까지 가려고 막 열심히 합디다, 아주. 젊은 사람 따라가지 못해요.
◇ 김현정> 몇 점 나오는데 별로라고 그러시는 거에요?
◆ 김순실> 별로예요. 그래도 열심히 합니다.
◇ 김현정> 아유, 그럼요. 그게 중요하죠. 점수가 뭐 중요합니까? 이렇게 신나서 하시는데 그게 중요하죠. 멋쟁이세요, 우리 할머니.
◆ 김순실> 학교 시험에서는 급수 따고 있습니다. 아주 바보는 아니에요. (웃음)
◇ 김현정> 잘하셨어요. 너무 멋쟁이세요, 우리 할머니. 그러면 공부 말고, 공부 말고 고등학교 가서 친구들이랑 꼭 해 보고 싶은 거 또 다른 거?
◆ 김순실> 없어요. 공부 외에는 없습니다.
◇ 김현정> 오로지 공부? 그럼 고등학교 마치면 대학도 진학할 생각이세요?
◆ 김순실> 지금, 지금 상태로는 가고 싶어요.
◇ 김현정> 가고 싶으세요? 전공은 뭐 하고 싶으세요, 대학 가면?
◆ 김순실> 고루고루 다 배우고 싶어요. 사회 같은 것도 그렇고 여러 가지.
◇ 김현정> 영문과 생각하시는 건 아니고요?
◆ 김순실> 영문과는…. (웃음) 이 나이에 뭐 더 많이 어떻게 배우겠어요? 그렇죠?
◇ 김현정> 왜요. 우리 할머님 정도면 신나서 잘하실 것 같은데. 알겠습니다. 할머니하고 말씀 나누다 보니까 소녀 같으세요. 열일곱 소녀 같으세요. 공부 열심히 하시고요. 무엇보다 건강하시고요.
◆ 김순실> 아이고, 너무 감사해요.
◇ 김현정> 고맙습니다, 할머니. 학교 열심히 다니세요.
◆ 김순실> 네, 부족한 저에게 좋은 말씀 해 주시고 희망의 말씀 주셔서 감사합니다.
◇ 김현정> 고맙습니다, 할머님.
◆ 김순실> 네.
◇ 김현정> 네, 참 정정한 분이세요. 밝은 에너지가 느껴집니다. 여든여덟살에 고등학교 입학하셨습니다. 김순실 어르신이었습니다.
[김현정의 뉴스쇼 프로그램 홈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