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씨에 대한 불법 지원이 언론에 노출된 지난해 9월, 삼성이 '허위계약서'까지 꾸미면서 최씨와의 '위험한 동행'을 무릅쓴 이유를 밝혀내면서 특검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영장 발부의 '스모킹건(결정적 증거)'을 손에 쥐게 됐다.
삼성이 정씨에게 지원한 수십억원의 말(馬)들을 '박근혜-최순실-이재용'으로 이어지는 '3각 뇌물 고리'의 결정적 매개체로 특검은 결론지었다.
특검팀 한 관계자는 "(삼성 뇌물죄 의혹을 전담했던) 양재식 특검보가 말 전문가가 됐다"고 말했을 정도다.
5일 법조계와 체육계 등에 따르면 지난 2015년 3월 삼성은 한화로부터 대한승마협회 회장사를 넘겨받았다. 특검은 '검은 거래'의 시작이 된 회장사 변경이 박 대통령의 '40년 지기'이자 '비선실세'였던 최씨의 작품으로 결론내렸다.
이건희 회장이 갑작스럽게 중태에 빠지면서 경영권 승계가 시급해진 이 부회장의 상황을 최씨가 이용하려 했다는 게 특검의 분석이다.
특검은 최씨가 박 대통령을 움직여 이 부회장의 경영승계를 돕도록 하고, 이를 빌미 삼아 삼성으로부터 사익을 취하려 한 것으로 봤다.
이미 비선실세의 '마리오네트'(실로 매달아 조작하는 인형)가 돼버린 대통령과 부의 세습에 눈이 먼 재계 1위 그룹 총수의 만남은 '뒷 거래'의 온상이 됐다.
박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검은 거래'는 2014년 9월15일 대구 창조경제혁신센터 개소식에서 시작됐다. 최씨의 부탁을 받은 박 대통령은 "삼성이 승마협회 회장사를 맡아달라"고 요청했다. 당시 승마협회 회장사였던 한화의 정씨 지원을 최씨가 못마땅하게 여겼던 것이다.
이 부회장은 그 자리에서 승낙했다. 하지만 정씨의 임신과 그해 말 터진 정윤회 문건 유출 사건으로 삼성이 몸을 사리는 동안 정씨에 대한 지원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그러던 중 2015년 7월 17일, 이 부회장이 그룹내 지배구조를 강화할 수 있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 성사됐다. 삼성물산의 대주주였던 국민연금관리공단이 1,300억여원의 손실을 감수하는 결단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합병성사 일주일 뒤인 25일 박 대통령과 이 부회장은 다시 마주했다. 이 자리에서 박 대통령은 이 부회장에게 "승마지원이 잘 안 되고 있는 것 같다"고 호통을 쳤다. 이 부회장은 이틀 뒤 그룹 임원회의를 열고 정씨 지원을 지시한 사실을 특검은 확인했다.
특검이 이 부회장의 첫 번째 구속영장을 신청했을 때 확인됐던 건 여기까지였다. 때문에 이후 삼성이 최씨 일가와 미르·K스포츠 재단에 낸 출연금 모두가 박 대통령과 최씨의 강요에 의한 어쩔 수 없는 지원이었다는 삼성의 '피해자 프레임'을 깰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승리의 여신은 결국 특검팀의 손을 들어줬다. 그리고 결정적인 단서가 된 게 바로 삼성이 정씨에게 지원한 '말'이었다.
대통령의 질책을 받은 이 부회장은 당시 승마협회장이던 박상진 전 삼성전자 대외협력담당 사장은 곧바로 최씨가 있던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급파, 본격적인 승마 지원 계획을 짜도록 했다.
이때부터 삼성의 정씨 지원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2차 독대 한 달 뒤인 8월 최씨의 독일 법인 코어스포츠(비덱스포츠의 전신)는 삼성전자와 213억원 규모의 컨설팅 용역계약을 체결, '뇌물 거래'의 큰 틀거리를 만든다.
이 과정에서는 존재하지도 않은 '삼성 승마단'이 등장하고, 삼성은 해외 훈련 관련 용역대금을 처리하는 것처럼 서류를 꾸몄다.
또 삼성전자가 말을 사 정씨의 훈련에 빌려준 것처럼 서류를 작성했지만 사실상 '사준 것'으로 특검은 결론냈다.
최씨는 그해 10월 7억원대 마장마술용 말 '살시도'를 사들였는데, 말 여권상 소유주가 '삼성전자'로 표시된 것을 알고 격노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재용이 VIP를 만났을 때 말을 사준다고 했지, 언제 빌려준다고 했나. 왜 말 여권에 소유주를 삼성이라고 적었냐"며 박원오 전 대한승마협회 전무에게 화를 냈다는 것이다.
최씨는 "삼성도 내가 합치도록 도와줬는데, 은혜도 모르는 놈들이다"라며 박상진 전 사장을 재차 독일로 '소환'했다.
이후 여권상 말 주인으로는 매도인 등의 이름이 사용됐다.
지난해 1월에도 최씨는 박 대통령을 통해 올림픽 출전용 말 구매를 요청해 도합 20억원을 훌쩍 넘는 '비타나V'와 '라우싱1233'이라는 말도 삼성에서 받았다.
삼성은 8월 말쯤 삼성은 8월 말쯤 말 세 마리를 덴마크 중개업자에게 판다는 내용의 허위 매매계약서를 작성했다. 최씨가 아닌 삼성전자가 말을 소유하다 매각한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였다.
9월엔 '비타나V' 등 구체적인 이름까지 보도에 등장하자 최씨가 삼성과 상관없는 말을 소유한 것처럼 보이기 위해 최씨는 비덱스포츠 자금으로 차액만 내고 '비타나V'와 '살시도'를 '블라디미르'와 '스타샤'라는 말로 바꿨다.
특검은 뇌물 거래를 삼성-코어스포츠의 용역계약으로 가장한 부분, 지난해 8월 이후 '말 세탁' 부분에 대해 최씨와 이 부회장 등에게 범죄수익 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를 적용해 재판에 넘겼다.
이처럼 위험을 무릅쓴 삼성의 거래가 국정농단이 알려진 이후 새로운 지원책을 강구하고 실제 실천에 옮긴 점으로 미뤄 강요에 의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특검은 판단했다.
결론적으론 첫 번째 구속영장 불발이 특검으로선 '약'이 된 셈이다. 특검은 보강수사를 통해 정씨에 대한 삼성의 끊임없는 지원이 현 정권으로부터 이 부회장 경영권 승계에 지속적인 도움을 받기 위한 '뇌물'임을 입증했다.
특검 관계자도 "1차 영장 때 발부됐으면 이 부회장 경영권 승계 부분을 제대로 밝히지 못했을 것이라 생각한다"며 "삼성물산 합병에 너무 주목했던 것도 있었고 승계 시나리오 전반을 보강수사로 확인했다"고 말할 정도다.
이에 대해 삼성 측은 말 지원 의혹과 관련 처음부터 '말은 회사의 자산으로 보유하다가 팔았으며, 언론 보도 이후 최씨 측을 우회 지원한 바도 없다'고 해명했다. 또 "블라디미르 구입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았다"고 부인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