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오후 청계광장에서는 오는 8일 '세계여성의 날'을 앞두고 범페미네트워크가 주관하는 페미니즘 문화제 '페미답게 쭉쭉간다'가 열렸다.
청계광장은 그간 박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는 친박단체 집회장으로 주로 활용되면서 혐오로 점철된 막말과 욕설이 난무했던 곳이다.
하지만 이날만큼은, 세상의 절반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부당한 대우를 받는 여성은 물론 성소수자,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들의 정당한 외침이 울려 퍼졌다. 보다 평등한 한국 사회 건설을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목소리였다.
본 행사에 앞서 곳곳에서는 다양한 문화 행사가 열렸다. 광장 한켠에 놓인 테이블에는 '나는 ( ) 대통령을 원한다'고 적힌 종이가 놓여 있었다. 참가자들이 빈칸을 채운 '나는 길고양이를 사랑하는 대통령을 원한다' '나는 젠더 무식쟁이가 아닌 대통령을 원한다'는 글귀가 눈에 띄었다. '페미가 당당해야 대통령이 퇴진한다' '페미가 당당해야 나라가 산다' '나는 페미니스트 대통령을 원한다'는 구호도 눈길을 끌었다.
또 다른 테이블에서는 장애인단체가 "매년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은 '장애 철폐의 날'로 바꿔 불러야 한다"고 역설했다.
오후 3시 30분부터 '페미답게 쭉쭉간다' 본행사가 시작됐다. 이곳 광장에 마련된 무대에 오른 두 여성 사회자는 다음과 같이 세계여성의 날을 설명했다.
"1908년 미국의 한 여성 노동자가 열악한 작업장에서 난 화재로 숨졌습니다. 이를 기리기 위해 여러 여성 노동자들이 궐기했고, 후에 국제적인 행사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는 해방 전까지 나혜석(1896~1948), 허정숙(1902~1991) 같은 페미니스트들이 행사를 진행해 왔는데, 군부독재 시절에는 금지됐다가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 쭉 진행되고 있습니다."
특히 사회자들은 "지금이나 100년 전이나 여성 노동자들에 대한 대우가 달라지지 않는다(광장 곳곳에서 '맞아요'라는 호응이 터져 나왔다)"며 "그래서 우리는 '왜 1년에 한 번 국제 여성의 날이 있는가' '왜 아직도 여성 노동자들은 저임금의 불안정한 상황에서 일해야만 하는가' '여자라서 죽었다는 말이 왜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가' 하는 물음을 던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후 무대에서는 힙합 공연 등 다채로운 공연이 이어졌고, 문화제는 시종일관 유쾌하고 활기찬 분위기 안에서 진행됐다.
이날 현장에서 만난 페미니즘 단체 '강남역10번출구' 활동가 엄세진 씨는 "박근혜 퇴진 집회와는 별개로 이뤄지는 행사로, 3월 8일 세계여성의 날을 기념해 젊은 온라인 페미니스트들을 모아 우리만의 축제를 만들자는 뜻에서 열었다"며 "장소로 청계광장을 선택한 것은 이곳이 서울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주변부가 아니라 중심에서 여성의 목소리를 들려 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