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범들은 일찌감치 평양으로 도피하거나 말레이 주재 북한 대사관에 잠적한 반면, 범행을 직접 수행했던 하수인격인 동남아 출신 여성 용의자 2명만 살인 혐의로 기소돼 사형이 확정될 처지에 놓였기 때문이다.
말레이시아 검찰은 2일 김정남 암살사건에 연루된 북한 국적자 리정철(47)이 경찰의 재유치기간이 만료되는 3일 구금에서 풀려나 석방된다고 밝혔다. 리정철은 말레이시아 경찰이 유일하게 신병을 확보한 북한 국적 용의자다.
이번 조치는 탄 스리 모하메드 아판디 알리 검찰총장의 최종 승인을 거쳐 나왔다. 아판디 검찰총장은 "그를 기소하기엔 증거가 불충분하다"며 "리정철이 말레이에 체류할만한 합법적인 서류가 없어 추방될 것"이라고 현지 매체인 뉴스트레이트 타임즈가 보도했다.
그러나 말레이시아 경찰의 이번 수사는 암살 주도자들의 치밀한 모의와 북한 당국의 비협조로 한계를 드러내 범행의 실체와 배후를 밝히는 작업이 자칫 미궁에 빠질 우려가 제기된다.
범행 직후인 지난달 13일 리지현(33), 홍성학(34), 오종길(55), 리재남(57) 등 4명의 북한 용의자들은 황급히 출국한 뒤 제3국을 경유해 평양으로 탈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북한대사관의 2등 서기관인 현광성(44)과 고려항공직원 김욱일(37)도 사건을 주도하거나 상부에 보고하고 탈출을 적극 도운 혐의를 받고 있으나 이들은 쿠알라룸푸르 소재 자국 대사관에 잠입해 말레이 경찰의 소환요구에 응하지 않고 있다.
반면 북측 용의자들에 포섭돼 독극물인 VX 신경작용제를 김정남의 얼굴에 바른 것으로 알려진 베트남 국적의 도안 티 흐엉(29)과 인도네시아 국적의 시티 아이샤(25) 등 2명의 여성 용의자들은 살인 혐의로 전날 기소됐다. 말레이시아 형법상 고의에 의한 살인이 확정될 경우 사형이 확실시 된다.
북한 당국은 전직 유엔 차석대사를 말레이시아에 보내 외교전에 몰두하는 등 국면전환을 모색하고 있는 상황이다.
북한측의 비협조로 주범격인 남성 용의자들의 신병 확보가 끝내 무산된다면 북한 배후설을 입증하지 못한 채 하수인만 극형에 처하게 되는 비정상적인 상황이 현실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을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