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가다 따뜻한 시선을 보내는 시민에서부터 매일 같이 소녀상을 찾아 보듬는 시민까지. 소녀상을 지키려는 부산 시민의 관심과 애정이 소녀상의 버팀목이 되고 있다.
제98주년 3.1절을 이틀 앞둔 지난 27일 부산 동구 평화의 소녀상. 일본 영사관 앞에서 경계 근무 중인 경찰과 소녀상을 지키는 대학생이 마주하며 여전한 긴장감이 흘렀다.
예고하지 않은 비가 내리자, 옆에서 지켜보던 머리가 희끗희끗한 할머니가 하얀 비옷을 꺼내 들었다.
할머니는 이 비옷을 본인이 아닌, 소녀상의 어깨에 둘렀다.
행여 소녀상이 비에 젖을까, 할머니의 손길은 소녀상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분주히 움직였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아픔을 간직한 동상이 비를 맞는 모습이 보기 싫어 비옷을 챙겨 다닙니다. 지난번 비가 내릴 때 씌워드렸던 비옷을 깨끗이 씻어왔지요"
평화의 소녀상을 위해 비옷을 챙겨 온 이순옥(78) 할머니.
인근에 사는 이 할머니는 지난해 평화의 소녀상이 설치된 다음 날부터 하루도 빼놓지 않고 이곳을 찾고 있다.
벌써 두 달 동안 많게는 하루에 세 번씩 이곳에 나와 소녀상의 어깨를 닦고 발을 어루만지고 있다.
"평화의 소녀상이 설치된 뒤 위안부 피해자들이 겪은 고초를 자세히 듣게 됐습니다. 비록 다른 경험이지만, 바람 잘 날 없었던 제 지난 인생이 떠올라 소녀상을 볼 때마다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습니다. 지나가다가 몇번이고 소녀상을 붙잡고 울었습니다"
이 할머니는 소녀상이 설치된 다음 날 자신의 주머니에 있던 과일 세 개를 꺼내 소녀상 발밑에 두었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우리 땅에 있을 때가 거의 100년 전인데, 그땐 싱싱한 과일이 얼마나 귀했겠어요. 마음이 아파서 귤 몇 개를 놓아뒀는데, 그때부터 지나가는 사람마다 소녀상 앞에 선물을 두고 가더군요"
제대로 된 사과조차 하지 않는 일본과, 이를 지켜만 보는 우리 정부를 볼 때마다 할머니는 안타까움과 미안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 할머니는 일본의 진심 어린 사과가 있을 때까지 소녀상을 지키겠다고 다짐했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게 이제 와서 돈 몇푼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피해 할머니들의 한을 푸는 방법은 일본의 진심 어린 사과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때까지 소녀상을 지켜야지요" 이 할머니는 소녀상을 덮은 비옷을 다시 한번 가다듬은 뒤에야 걸음을 옮겼다.
평화의 소녀상을 지키는 분은 이 할머니뿐만이 아니다.
부산 남구에 사는 김상금(68)씨 역시 평화의 소녀상이 설치된 뒤 지금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소녀상을 방문하고 있다.
운전이 직업인 김씨는 이날 오전처럼 일이 없는 시간마다 소녀상에 나와 주변을 정리했다.
또 소녀상을 찾은 시민들에게 위안부 역사와 소녀상의 의미를 설명하는 역할까지 자처했다.
"피해 할머니들과 동시대를 살았던 부모님께 처참했던 당시 이야기를 들어왔습니다. 일본의 만행은 10억 엔이 아니라 더 많은 돈을 준다고 해도 잊을 수 없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일본이 진정 우리나라와 화해하길 바란다면, 피해 할머니들 앞에서 진심으로 사과해야 합니다" 김씨의 목소리에서 힘이 느껴진다.
부산지역 시민사회단체는 이처럼 자발적으로 소녀상을 찾아와 정성을 쏟는 시민들이 있는 이상 평화의 소녀상은 결코 훼손할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부산겨레하나 관계자는 "정부는 평화의 소녀상을 이전하라고 계속 압박하고 있지만, 수많은 시민이 자발적으로 소녀상을 찾아와 돌보고 있다. 이것에 바로 평화의 소녀상을 세운 시민들의 진심"이라며 "평화의 소녀상에 관심을 가지고 정성을 쏟는 시민들이 있는 한 소녀상을 이전하거나 철거하는 일은 일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