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많이 흘렀다는 걸 새삼 느꼈어요. 저를 잘 모르는 어린 친구들이 많더라고요. ‘독특한 목소리가 볼빨간사춘기 같다’는 댓글을 본 뒤에는 웃음도 났죠. 프랑스 여자 가수 같다는 반응도 기억에 남아요. 길에서 우연히 노래를 들었는데, 알고 보니 엄마가 좋아하는 가수였다는 분도 있었고요.”
21세기가 오기 전인 1997년 밴드 더더의 메인보컬로 가요계에 첫발을 디딘 박혜경은 어느덧 데뷔 20년차 가수. ‘고백’, ‘안녕’, ‘레인’, ‘너에게 주고 싶은 세 가지’, ‘주문을 걸어’, ‘레몬트리’ 등 모두 나열하기 힘들 정도로 수많은 히트곡을 보유한 그는 자신을 잘 모르는 요즘 세대를 보며 격세지감을 느끼는 중이다. 음원 차트 순위에 신곡을 진입시키지 못한 것도 낯선 경험이다.
“솔직히 얘기하면, 처음엔 순위에 제 노래가 없는 걸 보고 깜짝 놀랐어요. 이전까지 차트 진입에 실패한 적이 한 번도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그만큼 활동을 오래 쉬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진정됐어요. 역주행을 기대하냐고요? 순위 보단 다시 노래하고 활동할 수 있다는 것 자체에 포커스를 맞추려고 해요.”
데뷔 20주년 기념 프로젝트 ‘4가지 맛’도 그런 마음에서 출발했다. 신예 듀오 롱디(한민세, 민샥)와 함께 한 ‘너드 걸’은 프로젝트의 시작을 알리는 곡으로 ‘달콤한 맛’을 주제로 했다. 박혜경은 향후 공개할 나머지 3가지 맛에 대해 묻자 “이번처럼 신선한 느낌을 추구할 수도, 다시 더더 때의 감성을 추구할 수도 있다”며 기대를 당부했다.
“다시 ‘가수 박혜경’으로 돌아온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해요. 노래할 때 제 본능이 깨어나는 것 같은 느낌이 들거든요. 예전엔 우스갯소리로 ‘그분이 오신다’고 표현했는데. (웃음). 성대가 다시 완벽하게 돌아오진 않겠지만, 더 망가지지 않고 건강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관리를 철저하게 하고 있어요. 아마추어와 달리 프로 가수는 언제든지 ‘레디’ 하면 ‘고!’ 할 수 있어야 하잖아요.”
“다시 가수 활동을 시작하겠다는 마음을 먹고 난 뒤 재밌는 예능을 볼 때마다 수첩에 메모를 해뒀어요. ‘마리텔’ ‘퍼펙트 싱어’ ‘최고의 사랑’ 등 출연해보고 싶은 프로그램이 정말 많네요. 다시 공연도 열고 싶어요. 한때 이은미 씨 다음으로 많은 공연을 연 가수가 저일 때가 있었는데, 성대를 더 단련해서 팬들 앞에서 멋지게 노래해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