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은 지난해 10월25일 대국민 사과를 하고, 11월4일 2차 담화에서 '나도 수사받겠다'고 선언했다. 2차 담화에서 박 대통령은 "필요하다면 저 역시 검찰의 조사에 성실하게 임할 각오이며 특별검사에 의한 수사까지도 수용하겠다"고 국민 앞에 약속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당장 검찰의 일정표부터 무시했다. 변호인의 입을 빌어 "의혹 사안이 모두 정리된 뒤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면서 3차례나 이어진 검찰의 조사일정 제안을 잇따라 거부했다. 또 최순실 등의 구속시한을 감안해 이뤄진 11월20일의 검찰 수사결과 발표는 '원천 거부'의 빌미로 활용했다.
'최순실과의 공범'으로 규정된 검찰 수사발표 뒤 박 대통령은 "수사가 공정하고 정치적 중립을 지켰다고 생각하지 않는다"(청와대 대변인 브리핑), "검찰의 직접 조사에 일체 응하지 않겠다"(유영하 변호사 보도자료)고 선을 그었다.
이후 특검이 출범해 청와대로 수사망을 펼치기까지 2개월 가량 박 대통령은 아무런 수사도 받지 않았다. 이 기간 박 대통령은 "특검의 연락이 오면 성실히 (조사에) 임할 생각"(1월1일 기자간담회), "특검 조사에 임하려고 하며, 일정 등은 조율하고 있다"(1월25일 정규재TV 인터뷰)고 수사 협조를 거듭 약속했다.
당초 검찰수사 거부 명분이 '불공정한' 검찰 대신 특검 수사에 응하겠다는 것이었던 만큼, 특검 조사만큼은 이뤄질 것이란 게 청와대 안팎의 중론이었다. 청와대 인사들도 하나같이 "대통령이 특검 조사를 받겠다고 한 이상 성사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박 대통령 조사를 위한 교섭은 유명무실했다. 당초 청와대 경내에서, 피의자 대신 참고인 신분으로, 녹음·녹화 없이 등 박 대통령 편의를 최대한 보장하려 했던 특검은 일정 취소 뒤 '원칙론'을 내세웠다. 특검은 돌발상황에 대비해 녹음·녹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이었는데, 박 대통령 측에 이는 거부의 추가 빌미로 작용한 셈이 됐다.
지난해 10월27일 검찰 특별수사본부 출범 이래 정확히 4개월간, 박 대통령은 최순실 사태와 관련해 단 한차례의 조사도 받지 않고 넘겼다. 검찰에는 공정성, 특검에는 신뢰성을 공격하면서 수사망을 빠져나갔다. 이 과정에서 대국민 약속은 거듭 무시됐다.
부장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대통령이 떳떳하다면 왜 당당히 조사에 임하지 않는 것인지, 왜 국민과의 약속을 손쉽게 뒤집는지 모르겠다. 애초에 검찰 조사에 나가서 잘잘못을 가렸다면 지금과 같은 국민분열상을 막았을 수도 있다"며 "이런 분이 4년동안 국가의 최고지도자였다는 현실이 참으로 슬프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을 탄핵한 국회 측은 박 대통령에게 수사를 받겠다는 의지 자체가 없었을 것이라는 주장도 내놓고 있다. 한 관계자는 "박 대통령은 검찰·특검은 물론 헌재에도 직접 나서지 않았다. '수사받겠다'던 의지를 의심할 만하다"며 "누군가에게 추궁을 당한 적 없는 삶을 산 박 대통령이 조사를 수용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