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이승훈(29 · 대한항공)이 막판 폭발적인 스퍼트로 정상에 올랐다. 마지막 곡선 주로에서 아웃코스를 과감하게 공략했고, 강력한 질주로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다.
이를 본 김보름은 "나는 어제 5000m를 뛰어서 피곤한데 승훈이 오빠는 나와는 차원이 다른 사람"이라고 혀를 내둘렀다. 이어 "오빠는 체력 하나는 정말 타고 난 것 같다"면서 "여기에 훈련을 가장 열심히 하니 저렇게 경기를 할 수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보름이 놀랄 만도 하다. 이승훈은 지난 20일 5000m에 출전해 아시아신기록으로 금메달을 따냈고, 22일에는 1만m와 팀 추월(3200m)까지 2개의 종목에 출전해 모두 금빛 질주를 펼쳤다. 가장 긴 1만m를 뛰고도 하루 만에 매스스타트(6400m)에 출전해 4관왕의 대업을 이룬 것이다. 나흘 동안 2만5000m 가까이 달린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승훈은 불과 13일 전에 오른 무릎 정강이를 8바늘이나 꿰매는 부상을 당했다. 10일 강원도 강릉에서 열린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종목별 세계선수권대회 팀 추월 경기 도중 넘어져 자신의 스케이트날에 베인 것.
아직 실밥을 풀지 않은 몸에도 이승훈은 아시안게임에 출전해 무려 4개의 금메달을 따낸 것이다. 이는 한국의 역대 동계아시안게임 사상 한 대회 최다 금메달이다. 2011년 알마티-아스타나 대회까지 2회 연속 3관왕도 이승훈뿐이다.
이어 김민석은 "같은 선수가 보기에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면서 "최상의 컨디션으로 한다 해도 4관왕을 할 선수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부상으로 4관왕에 올랐으니) 그만큼 대단한 것 같다"고 칭찬했다.
세월을 거스른 체력은 이승훈 본인도 놀라는 대목이다. 이승훈은 "우리 나이로 30살인데 피곤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사실 전에는 1만m를 뛰고 나면 기록을 세우려고 최선을 다해 몸살이 나곤 했다"면서 "그런데 이번 대회는 이상하게 그러지 않는데 나도 놀랄 정도"라고 웃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솔직히 이번 대회 큰 기대도 하지 않았다. 이승훈은 "다쳤을 때는 시즌을 포기하고 있었는데 3일 뒤 통증은 사라지고 당기는 정도라 출전을 결정했다"면서 "사실 5000m와 1만m는 포기하고 있었는데 금메달을 따낼지는 몰랐다"고 미소를 지었다.
체력 관리의 비결은 끊임없는 훈련이다. 이승훈은 "특별한 비결은 없다"면서도 "전명규 교수님에게 운동을 배웠는데 나이를 따지지 않으시는 분이라 계속해서 단련시켜 주셨던 게 지금까지 온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강한 훈련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체력도 받쳐주지 않고 1등이 될 수 없고 평범한 선수가 될 뿐"이라면서 "한계가 왔을 때 참고 일관되게 초심으로 꾸준히 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고 후배들에 대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한국 스피드스케이팅의 역사를 써내려가고 있는 이승훈은 이제 내년 평창올림픽을 바라보고 있다. 이승훈은 "내년에도 매스스타트에서 꼭 메달을 따고 싶다"면서 "특히 아시아에서는 전무후무한 선수로 남고 싶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