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싣는 순서]
① 남성작가들에 의해 만들어진, 방탕하고 문란한 '신여성'
② '독립적 존재' 대우 못 받은, 식민지 조선의 '배운 여자들'
③ 70년 전, 설치고 떠들고 생각하고 행동했던 여성들
④ 소녀상, 누드, '눈길'과 '귀향'… 위안부가 표현되는 방식
⑤ '교란된' 젠더, 이성애 거부하는 남성과 '남장' 여성의 등장
⑥ '작가' 김승옥은 왜 작품에서 거듭 자기 죄를 고백했을까
⑦ 평단이 혹평한 여성소설 '생의 한가운데', 대중은 열광했다
⑧ "국가가 인준한 1등 시민"인 '군인'과 그 나머지
<계속>
'돌아온 군인들-전쟁 이후의 남성성과 한국문학'을 발제한 조서연 연구자(서울대)는 1950년대부터 현재까지 '군대'와 '군인'을 소재로 한 작품에서 '군인'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었는지를 살폈다.
독특한 점은 쉽게 발견됐다. 전쟁을 겪어 "몸과 마음을 엄청나게 다친" 군인들은, 문학작품 안에서는 '인간의 본질은 무엇인가', '삶과 생명이란 무엇인가' 등을 고민하는 존재가 아니었다. 많은 작품들은 전쟁에서 돌아온 남성들이 정상적인 성적 능력을 갖추었는지 여부에 대해서 대단히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다.
조 연구자는 "혹독한 일(참전)을 당하고 오면 마음이든 몸이든 정상적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으면서 인간의 존엄성까지 해치는 일을 겪게 된다. 하지만 이런 것들을 제처두고, 문학작품들은 (군인들의) 성적 능력이 정상적으로 발휘되는가만을 바라본다. 한마디로 발기하느냐 마느냐를 가지고서만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흔들리는 '가부장제' 복원 위해 '여성' 탓하기
전후 문학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전쟁 이후 사회가 혼란해진 원인을 여성에게만 책임지우려고 하는 움직임이 활발했다는 것이다. 전쟁 직후 나온 작품들은 몹시 자주 '여성'을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부정적으로 그려지는 것이 보통이었다.
조 연구자는 "전쟁 이후 나온 희곡을 모아서 보는데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하더라. 모든 작품이 '여자가 어쩌고 여자는 어떻고' 하면서 '문제적'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며 "지금도 김치녀, 맘충이란 말이 있는 것처럼 (당시에도 여성들은) 자유부인이나 아프레걸, 신여성 등으로 불렸다"고 말했다.
조 연구자는 △젊은 남성들의 징집으로 인한 일시적 공백 △미국 문화의 유입과 보수적 성윤리의 개방화 △전후 실존주의의 영향을 받은 세대 의식의 강화 등으로 인해 젠더 권력과 세대 권력을 바탕으로 한 '가부장제'가 약해지고 있었다는 것을 짚은 후, '문제적 여성'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가부장제 재정비를 시도했다고 밝혔다.
그는 "요즘 뭐만 하면 (여성들에게) '메갈'이라고 하듯이 문제적인 것들을 다 여성에게 돌렸다고 보면 된다. 성적인 방종, 사치와 향략을 즐기는 여성들이 문제라는 식"이라며 "아프레걸(전쟁 이후 프랑스 실존주의를 지향하던 청년들을 '아프레계'라고 했는데, 그 정신은 빼오지 못하고 겉멋만 들었다는 비하의 의미로 '아프레걸'이란 말을 썼다), 양공주, 자유부인 등의 탄생은 이들에게 사회문제를 다 몰아넣음으로써 가부장제 재정비를 시작한다는 의미"라고 전했다.
조 연구자는 "한국사회는 '여성들의 성적 문란이 엄청나구나' 하는 대단한 충격에 휩싸였다. 혼인빙자간음죄도 무죄가 나왔다. 그때 법원은 '법은 정숙한 여인의 건전하고 순결한 정조만을 보호한다'는 잊지 못할 판결을 남긴다"고 말했다.
◇ '문제 있는 여자'는 결혼시키면 그만?
이때 등장한 것이 '문제 있는 여성 결혼시키기' 서사였다. 김영수의 희곡 '여사장'에는 전쟁 이후 취업난을 겪는 남성들이 나온다. 적성에 맞지도 않고 관심도 없지만 여성잡지사에 취직하고자 면접보는 장면에서 남자 주인공과 그 나머지인 '여성들'은 몹시 다른 종류의 사람들인 것처럼 표현된다.
면접관인 여성들은 주인공의 잘생긴 외모를 상당히 의식하는 등 가볍고 경박한 모습으로 그려진다면, 주인공은 당대의 '문제적 여성'을 드러내놓고 비난하는 '소신 있는 남성'으로 존재한다. 결혼 여부를 묻는 질문에 "(요즘은) 뱃속에 허풍만 빙빙 돈 여자들뿐인걸요. 저는 죽으면 죽었지 그런 여자한텐 절대 장가 못 들어요"라고 한 대답은 여성들을 바라보는 작가의 생각이 선명하게 드러난 부분이다.
한국전쟁 이후 급격히 늘어난 '전쟁미망인'도 당시 사회에서는 이른바 '해결해야 될 숙제'로 취급됐다. 조 연구자는 "(전쟁미망인을) 소위 '결손가정' 상태로 본 것이다. 그래서 실제로 전쟁미망인 짝지어주기 운동, 상이군인 짝지어주기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고 부연했다.
이어, "(전쟁미망인 다룬 작품에서는) 남성들과 잘 됐는지 또렷이 나타나지는 않는다. 왠지 잘될 것 같은 느낌으로만 끝난다. 아마 여성이 자신의 성적 향방을 스스로 결정하는 모습을 노출하기에 그 시기가 덜 무르익었던 게 아닐까. 사실 '이혼한 여성'이 아무렇지 않게 (작품 속에서) 다뤄진 것도 얼마 되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 '태양의 후예', 시계를 거꾸로 돌리다
이후 베트남전쟁을 다룬 작품의 묘사도 크게 발전된 모습은 아니었다. 베트남전쟁은 특히나 '젠더화'된 전쟁이었기에 더더욱 그랬다. 서방의 제국이었던 미국이 아시아로 간다는 것은 곧 '아시아'에 대한 여성화로 이어졌고, 한국군은 미국의 '용병'이자 베트남 여성을 성애화하는 남성 주체라는 이중적 위치에 놓였다는 게 조 연구자의 설명이다.
조 연구자는 "도대체 무엇을 지키기 위해서 여기(전쟁)에 왔는가, 왜 나는 사람을 죽여야 하고 이유도 없이 죽음의 공포에 떨어야 하는가 등을 고민하고 무기가 날아다니는 등 실감나는 전쟁 묘사를 보면서 가슴이 아프다가도, 그걸(역사적 비극으로 인한 후유증을) 풀기 위해 여성이나 포로로 잡힌 베트남 여성을 어떻게 대하는가를 보면 생각이 또 달라지더라"라고 전했다.
2000년대 초 이라크 파병 이후 한국 군인의 남성성이 재현되는 과정에서는 일보의 '진전'이 있기도 했다. 황석영의 '탑'이라는 소설을 모티프로 한 영화 '알포인트'는 전쟁 이후의 '반성'을 담았다는 점이 특징이다.
그러나 정작 2016년에 나온 드라마 '태양의 후예'는 다소 후퇴한 모습을 보였다. 중국-베트남-필리핀 등 아시아 여러 국가의 '극우화'가 진행되는 과정 속에서 나온 탓이었을까. '한류 밀리터리 로맨스'라는 세련된 겉모습을 하고 있었으나, 방송 당시에도 가부장적 구도나 군국주의 미화 등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았다.
조 연구자는 "'태양의 후예'는 철저하게 '젠더 분리'가 일어나는 작품이다. 거기서 군복 입은 여성은 딱 한 명이고 그마저도 먼치킨(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극단적으로 강한') 캐릭터인데, 정작 전투하는 사람도 아니다. 극중 윤명주는 군의관이다. 즉, (전쟁에) 나가서 싸우는 사람들은 남성이고, 이들을 뒤에서 돌보는 역할을 강모연과 윤명주가 담당하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