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의지'로 곤욕치른 안희정…추상적 화법도 문제

포용 좋지만 달관한 듯한 말투에 거부감 많아…심상정 "애어른 같다" 비판도

안희정 충남도지사. (사진=윤창원 기자/자료사진)
안희정 충남지사는 '선한 의지' 발언 이후 사흘동안 야권 내부로부터 그야말로 '십자포화'를 맞는 곤욕을 치렀다.

당 내 경쟁을 벌이면서도 '노무현'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서로에 대한 비판을 자제하던 문재인 전 대표와 안 지사는 선의 발언을 시작으로 날카로운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안 지사는 21일 갈등을 봉합하고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사과에 나섰다. 이날 한 행사에 참석한 후 기자들에게 "제 예가 적절치 못한 점으로 마음을 다치고 아파하시는 분들이 많다"며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안 지사는 사과 자리에서도 '소신'을 굽히지는 않았다. 그는 "어떤 분의 말이라도 액면가대로 선의로 받아들여야만 대화도 할 수 있고, 문제 해결도 할 수 있다는 취지의 말이었다"며 논란의 발단이 됐던 '선의'에 대한 신념을 재차 강조했다.

안 지사의 '선의' 발언에 담긴 속뜻은 상대를 비판하고 배척하기 보다는 그 사람의 상황과 주장을 이해하는데서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화가 시작돼야 갈등의 실마리도 풀 수 있다는 뜻으로 보인다.

안 지사는 앞서 '대연정' 발언 당시에도 논란을 산 바 있다. 새누리당(자유한국당의 전신)까지 포함해 연정할 수 있냐는 질문에 "새누리당도 파트너로 인정할 수 있다"고 말해 야권의 호된 비판을 감수해야 했다.


정치권에서는 안 지사의 이런 발언들을 '중도·보수' 표심을 위한 전략적 발언이었다고 평가했고, 실제 지지율 상승으로 이어졌다고 분석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선의' 발언은 전략이라고 하기에는 "(보수로)나가도 너무 나갔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 지사는 선의에 대한 자신의 생각은 버리지 않았다.

안 지사는 논란 이후 캠프를 찾은 자리에서 "계산한 말도 아니고 실수도 아니다. 이것은 옳다 그르다를 떠나서 제 마음"이라며 솔직한 심정을 털어놨다.

그러면서 "대한민국의 현재 여·야, 진보· 보수의 진영을 가지고는 절대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못 만들어준다. 대한민국에서 민주화 운동을 하고 정당인으로서 30여년 동안 살아오면서 느꼈던 것이고, 내가 모셨던 그분이 떨어져 죽고 나서 들었던 나의 심정"이라고 말했다.

안 지사의 과거 발언들에도 일관되게 관통하는 개념은 진영논리에서 벗어난 '타협'과'통합'이다.

상대방과 대화하고 타협하겠다는 것을 '대연정 파트너로 삼겠다'라고 말하고, 반대편을 대화 상대로 인정한다는 말을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선의를 믿는다'고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한 일간지와 가진 대담에서 도올 선생은 안 지사에 대해 "어떠한 경우에도 대적자를 악으로 휘몰지 않는다. 그는 운동권에서 성장하였지만 운동권이 가지고 있는 선·악의 이분논리를 초극하고 있다"고 평했다.

하지만 평소 신념에서 비롯된 이번 발언이 박근혜· 최순실 국정 농단에 분노한 민심을 대변 해주기를 요구하는 대중들로부터는 반감을 살 수밖에 없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안 지사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1차 구속 영장이 기각됐을때는 '존중하는 입장을 갖는다'고 말했다가 정의당 심상정 대표로부터 "굉장히 실망했다. 꼭 애어른 같았다"는 비판을 받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또 쉬운 대중의 언어가 아닌 관념적이고 현학적인 표현이 오해를 불러일으켰다는 분석도 잇달았다. 해명의 자리가 될 수 있었던 한 뉴스 프로그램에서 안 지사는 "20세기 지성과 철학", "통섭의 관점" 등 추상적인 언어들을 사용하며 본인의 신념을 밝혔고 여론을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도올은 대담 과정에서 안 지사를 향해 "너무 추상적이다. 정치는 어디까지나 대중을 동원하는 행위인데, 그렇게 추상적 가치로 대중을 설득시키고 움직일 수 있겠나"라고 묻기도 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충남도지사로서 선거를 치른 경험이 있다고는 하지만, 현실 정치에 직접 부딪힌 적이 없다. 말이 가지고 오는 파장에 대한 경험이 미숙한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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