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거가 2014년 백혈병 진단을 받자 NBA 사무국과 구단들은 그의 건강 회복을 바라는 다양한 이벤트를 시도했다. 세이거의 아들이 아버지 대신 TNT 중계방송의 사이드라인 리포터로 나서 샌안토니오 스퍼스의 그렉 포포비치 감독을 인터뷰한 장면이 특히 유명하다.
포포비치 감독은 평소 까칠한 스타일이다. 방송 기자의 질문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농구를 잘 모르고 묻는다 생각하면 단답형으로 짧게 대답해 상대를 당황케 한다. 그런 그에게 '방송 초짜'인 세이거의 아들이 마이크를 들이민 것이다.
그러나 포포비치 감독은 그와 어깨동무를 하며 "질문을 정말 잘했다"는 말로 격려했고 "그래도 나는 너보다 네 아버지와 인터뷰를 하고 싶다. 아버지가 건강하게 돌아오면 더 친절하게 답변하겠다"고 말해 감동을 선사했다.
지난 2월19일(한국시간) 미국 뉴올리언스 스무디킹 센터에서 열린 2017 NBA 올스타전 전야제 행사에서는 마지막 슬램덩크 콘테스트 이벤트를 남기고 TNT 방송 아나운서 어니 존스의 사회로 특별 이벤트가 진행됐다.
먼저 장내 스크린에 세이거를 추모하는 영상이 재생됐다. NBA 레전드인 빌 러셀, 뉴올리언스의 간판스타 앤소니 데이비스 등 현장을 찾은 전현직 농구 선수들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어 어니 존스는 세이거가 운영하는 '세이거 스트롱(Sager strong)' 장학재단을 통한 기부를 위해 특별한 이벤트를 제안했다. 3점슛 콘테스트에서 1~3위를 차지한 에릭 고든, 카이리 어빙, 켐바 워커로 하여금 1분동안 번갈아가며 3점슛을 던지게 해 1골당 1만달러(약 1150만원)를 적립해 기부하자는 것이다.
그러자 1층 중계석에서 마이크를 잡고 있었던 TNT 해설위원 레지 밀러가 벌떡 일어섰다. 레지 밀러가 외투를 벗고 코트로 걸어나오자 관중석에서 큰 함성이 터져나왔다. 레지 밀러는 마이클 조던이 활약하던 시절 리그 최정상급 3점슈터로 이름을 날렸던 인물이다. 한번 폭발하면 걷잡을 수 없을만큼 슛이 들어가는 모습에 '밀러타임'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현역 정상급 3점슈터인 제임스 하든도 올스타전 행사를 즐기러 왔다가 특별한 3점슛 이벤트에 참석했다. 더마 드로잔과 WNBA의 스타 캔디스 파커 그리고 다수의 유명 연예인들도 코트로 쏟아져나왔다.
처음에는 한명씩 번갈아가며 슛을 던지다가 갑자기 하든이 가운데 3점슛 라인에 자리를 잡더니 마구잡이로 슛을 던지기 시작했다. 1골이라도 더 넣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1분동안 총 13개의 슛을 성공시켰다.
이벤트는 계속 됐다. 어니 존스는 이때까지 적립된 13만달러를 한번에 50만달러(약 5억7500만원)로 격상시키는 이벤트를 제안했다. 3점슛에 관한 모든 기록을 다시 쓰고 있는 스테판 커리를 코트로 불렀다. 그가 하프라인에서 3점슛을 넣으면 적립금이 50만달러로 늘리겠다는 것이다.
부담이 컸을까. 평소 하프라인에서 3점슛을 잘 넣었던 커리는 10개 가까이 시도를 했으나 결국 성공시키지 못했다. 커리의 하프라인 슛이 빗나갈 때마다 관중석에서 아쉬움 섞인 탄식이 쏟아져나왔다. 코트 중앙선에서 슛을 넣지 못한다고 아쉬워하는 사람은 없다. 3점슛의 상식을 파괴하고 있는 커리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그러자 TNT 패널로 활동 중인 샤킬 오닐이 등장했다. 오닐은 세이거의 손자를 번쩍 들어 림 앞으로 데려갔고 어린 아이가 손쉽게 골밑슛을 성공시키며 특별한 이벤트의 대미를 장식했다. 이 골로 적립금은 50만달러로 늘어났다.
TNT 방송 측은 아마도 처음부터 기부 적립금 50만달러를 정해놓고 이처럼 단계적으로 흥미를 유발시킬 수 있도록 이벤트를 기획했을 것이다. 밀러와 커리, 오닐의 등장 역시 다 기획된 이벤트였을 것이다. 그렇지만 오랜 기간 NBA 슈퍼스타의 가장 가까운 친구였던 세이거의 이름을 드높이기 위해 적극적으로 달려든 선수들의 모습에 코트는 훈훈함으로 가득 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