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지주 로비는 이재용, 공정위는 김종중

명마 블라디미르, 공정위 주식, 안종범 수첩, 민심

영장실질심사를 마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16일 오후 서울중앙지법에서 구치소로 이동하는 차량에 탑승하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
국내 재계순위 1위, 한국이 자랑하는 글로벌기업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총수로는 처음으로 79년만에 구속된 건 매우 안타깝지만 상징적 사건이다.

이 부회장에 대한 영장은 특검과 삼성 변호인측의 7시간 혈투끝에 발부됐다. 7시간의 승부였지만, 사실 특검은 이 부회장과 승부하는데 장장 78일을 쏟아 부었다. 준비기간 20일을 포함해 수사기간 70일 가운데 58일이 투여됐다.

특검은 삼성의 최고 권력자를 구속함으로써 박 대통령의 뇌물죄 입증에 큰 발을 내딛었고, 이 여세에 따라 헌법재판소의 박 대통령 탄핵심판도 큰 가닥을 잡게 됐다.

433억 원이라는 거액을 줬음에도 불구하고 1차 영장기각까지는 튼튼한 성벽을 짓고 완벽하게 방어했던 삼성그룹이었다.

그런데 불과 3주만에 무너져버린 이유는 무엇일까? 4가지 이유를 분석해 본다.

◇ 명마 (名馬) 블라디미르 '말세탁'

삼성과 이재용 부회장은 1차 영장 기각 이전만 해도 특검의 칼날을 무디게 만들었다. 1등공신은 '삼성은 피해자'라는 논리였다. 박 대통령의 강요에 못이겨 어쩔 수 없이 전경련을 통해 204억 원을 낼 수 밖에 없었고 최순실 일가 지원금 229억 원도 뺏긴 것이나 진배없다는 것이었다.

특히 특검은 청와대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도와준 대가로 433억 원을 준 것이라고 공격했지만, 삼성 측은 양사간 합병이 먼저 이뤄졌고 나중에 대통령과 이 부회장간 독대가 이뤄졌다며 이미 합병이 이뤄졌는데 독대에서 청탁할 이유가 없다고 방어했다.

특검은 '삼성이 피해자'라는 논리를 깨지 않고는 앞으로 나갈 수 없었다.

특검은 박대통령-이재용 부회장간 2차독대(2015년 7월 25일)후에도 이 부회장의 승계작업 마무리를 위해 정부의 협조가 절실했던 사실에 주목했다.

그 와중에 등장한 것이 스웨덴산 명마 블라디미르였다. 특검은 삼성측이 이 말을 국정농단 사건이 터진 작년 10월 초에 지원한 사실에 주목했다. 물론 삼성측은 정유라씨에게 이 말을 사준 적이 없다고 철저히 부인했다.

그러나 특검은 박상진 사장(대한승마협회회장)이 관여한 '계약서'를 찾아냈고, 이 계약서에 따르면 기존에 갖고 있던 '말'을 처분해 교체하는 방식으로 블라디미르를 지원한 사실을 포착했다.

특검 관계자는 "독일 마필은 대통령 요구때문에 준 게 아니다. 이 부회장 승계작업을 위해 삼성측이 먼저 대통령 요구에 부응해 허위계약서를 작성했다. 이른바 '말세탁'을 해가며 지원한 것"이라고 말했다.

영장실질심사에서 특검은 '블라디미르'를 마지 못해 사준게 아니라, 오히려 삼성이 적극적으로 나서 구입해 줬기때문에 "삼성이 피해자다라는 논리가 허구"라고 재판부를 설득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7일 새벽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씨에게 거액의 뇌물을 건넨 혐의로 구속됐다. (사진=환진환 기자)
◇ 삼성SDI의 삼성물산 주식 처분을 위한 공정위 로비

1차전에서 블라디미르로 '삼성 피해자' 논리를 깬 특검은 "합병 후 독대가 이뤄졌기 때문에 청와대에 청탁할 이유가 없었다"는 주장을 무너뜨리는데 주력했다.

특검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2015년 7월 중순)이 이뤄진 직후에 벌어진 삼성SDI의 순환 출자 문제 해소에 주목했다. 그해 10월에서 12월 사이 이뤄진 승계 후속 작업의 일환이었다.

공정위는 "삼성 SDI가 삼성물산 주식 1000만주를 처분해야 한다"고 직접 위원장이 결재했지만, 두 달사이 처분해당 주식량은 '1000만주→900만주→500만주'로 돌연 감축해 버렸다.

특검은 영장심사에서 "삼성그룹이 아니면 이미 결재 난 사안이 도저히 뒤집어질 수 없는 사안이었다"고 몰아붙였다.

특검은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김종중 사장이 김학현 전 공정위 부위원장을 상대로 한 로비 증거들도 제시됐다.

김 사장은 그룹내 명실상부한 '이재용 맨'으로 실질적인 그룹 2인자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 특검의 판단이었다.

삼성과 김 사장은 "정당한 민원 제기였다"고 주장했지만, 그가 김 전 부위원장과 여러차례 문자를 주고 받고 사무실 밖에서도 회동한 사실이 공정위 관계자 조사를 통해 드러났고 삼성측 주장은 힘을 잃었다.

영장심사에서 특검은 거듭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이 공정위와 안종범 전 경제수석을 상대로 동시 다발적으로 로비를 벌여 주식처분량을 감소시켰다 것이 핵심"이라고 공격했다.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 (사진=이한형 기자)
◇ 안종범 수첩의 위력

앞의 두 사안은 영장심사에서 삼성의 '기'를 누르는 측면이 강했다면 가장 강력한 증거능력을 가진 것은 이른바 '안종범 수첩'이었다.

안종범 수첩에는 '박대통령과 이 부회장 3차 독대(2016년 2월)'에서 이 부회장이 금융지주회사를 부탁했다는 내용이 기재됐다. 결국 '보류'로 최종 결론이 났지만 빼도박지 못하는 증거가 됐다.

그러나 영장심사에서서 삼성측 변호인과 특검은 안종범 수첩의 증거능력을 놓고 가장 뜨겁게 다퉜다. 잠시 화장실에 왔다가 들어가는 윤석열 수사팀장의 얼굴이 벌개질 정도였다.

삼성측은 "수첩을 추가로 (특검이) 확보하는 과정에서 절차적으로 위법성이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반해 특검은 "안종범 변호인이 임의성을 다투는 의견서를 낸 것은 맞지만 수첩을 보관한고 있는 안 전수석 보좌관이 변호인 입회아래 제출한 것이라며 문제가 없다"고 맞섰다. 영장 발부 과정에서 '효력'을 발휘했지만 본 재판에서도 수첩의 증거능력은 가장 뜨거운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 '朴정권-삼성 정경유착'에 떠나버린 민심

법조계에서 반드시 일치하는 견해는 아니지만, 영장 재청구가 성공하는 경우가 드물다는 분석이 있다. 따라서 이 부회장 구속에 성공한 것은 특검 수사력의 결과로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순실 국정농단에 70여년 해묵은 '정경유착'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없었다면 이번 수사가 성공할 수 있었을지는 의문이다.

이재용 부회장이 구속되자 관련 기사에는 "정의의 승리다, 이제 1등기업 총수도 처벌받는다"라는 댓글들이 무수히 달리고 있다.

삼성은 초반부터 '정경유착의 뿌리 깊은 고리'를 국민들에게 소상하게 사과하지 않고 '피해자'라는 논리만을 앞세워 그룹 총수의 구속을 비켜가려 했다. 이런 이유때문에 1차 영장이 기각됐을때 다소 주관적 비판도 있었지만 법원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가 쏟아졌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검찰이 재영장을 청구했다면 과연 가능했을까라는 의심을 여전히 갖는다.

법보다 무서운 것이 국민의 신뢰다. 안타깝지만 삼성은 최순실 국정농단사건에서 너무 많은 것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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