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후계 구도에서 밀려났다고 하지만 한 때 북한 후계 1순위로 거론됐던 김정남은 이복동생 김정은 유일 영도체계의 눈엣가시와 같은 존재로 여겼다는게 정보당국의 판단이다.
미국의소리(VOA) 방송은 북한 고위 탈북자를 인용해 김 위원장이 집권한 2011년 김정남 주변 인사들 숙청이 집중적으로 이뤄졌다고 보도했다.
2012년 김정남에 대한 본격적인 암살 시도가 한번 있은 후 같은해 4월 김정남은 김정은에게 "저와 가족을 살려달라"는 내용의 서신을 발송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김정은 위원장은 김정남 측근들을 차례로 제거하며 김정남의 손발을 묶어나갔다.
2013년 12월 9일, 장용철 전 주말레이시아 북한대사와 전영진 주쿠바 북한대사가 평양으로 소환돼 처형된다.
장용철은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의 조카였고, 전영진은 장성택의 매형이었다.
2013년 12월 12일, 김정은은 고모부 장성택을 쿠데타 시도 등의 혐의로 전격 처형해 세계를 놀라게 한다.
장용철 대사가 김정남과 접촉해 돈을 주는 등 장성택과 그의 측근들이 김정남을 도운 것이 화근이 됐다는 얘기도 나온다.
장성택 등 측근들이 대거 숙청되면서 김정남의 북한 내 연결고리는 거의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2013년 12월 14일, 북한 노동신문은 "그가 누구이건 수령을 모르고 감히 도전해 나선다면, 설사 피를 나눈 혈육이라고 해도 서슴없이 '징벌의 총구'를 들이대겠다"고 위협했다.
최근 국정원은 당시 북한이 노동신문을 통해 '징벌의 총구'로 경고한 혈육은 김정남이었다고 국회에 보고한 바 있다.
이게 사실이라면 이번 김정은의 피살은 김정은 집권 초기에 내려진 '스탠딩 오더'(standing order·취소할 때까지 계속 유효한 주문사항)가 실행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만 김정남의 실제 의도와는 상관 없이 주변 상황이나 언론 보도 내용이 그의 시한부 삶을 단축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일본 산케이 신문은 지난해부터 김정은 위원장의 친척을 옹립해 해외 망명 정권을 세우려는 움직임이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해외 탈북자들이 애초 김정은 위원장의 숙부인 김평일 주체코대사를 망명 정부 후보로 옹립하려 했지만 생명에 위협을 느낀 김평일이 일시 귀국해 김정은에 충성하는 모습을 보이자 김정남을 그다음 후보로 세우려 했다는 내용이다.
최근 국내의 한 언론은 2012년 김정남 망명 시도를 구체적으로 보도했다.
언론의 보도 내용이 사실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를 보고 격분한 김정은이 망명 정권 수립이나 망명 시도 등을 사전에 차단시키기 위해 먼저 손을 썼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홍콩 영자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16일 "김정남은 자신의 인생이 위험하다는 것과 이복동생(김정은)이 쫓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며 "그는 자신이 '빌린 시간(borrowed time)'을 사는 것으로 느꼈다"고 보도했다.
김정남은 김정은 집권 후 자신의 삶을 '덤으로 주어진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