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경선, 기자가 직접 신청해봤더니

기자는 곧 딜레마에 빠졌다

더불어민주당 선거인단 모집 홈페이지 화면 캡처

기자는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지난 15일부터 시작된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선거인단 모집 얘기다.

당초 취재 계획은 민주당을 비롯한 모든 정당의 대선 경선에 직접 참여해본 후 체험담을 작성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곧 딜레마에 빠졌고, 더 이상 취재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비록 미완성으로 끝났지만, 그 과정을 공개하는 것도 나름 의미가 있겠다 싶었다(무슨 탄생 비화 같네).

15일 오전 10시, 선거인단 모집 홈페이지가 열렸다. 신청 방법은 인터넷과 전화, 서류 등 세 가지였는데 시각적인 효과를 고려해 ‘인터넷 신청’을 클릭했다(뉴미디어 담당 기자에게 화면 캡처는 필수니까ㅠㅠ).

더불어민주당 선거인단 모집 홈페이지 화면 캡처

그런데 신청 자격을 확인하고는 약간 실망했다. 만 19세 이상 투표권이 있는 국민에게 경선 선거권을 부여한다는 자격 조항 때문이었다.

만 18세로 투표권을 낮춰야 한다고 국회에서 피켓 들고 구호 외치던 사람들이 누구였더라?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 의원들이 아니었던가.

비록 법으로 실현되지는 못했지만, 경선에서만이라도 선제적으로 시도해볼 수 있지 않았을까?


기자가 아쉬워하고 있던 찰나에 민주당 페이스북 글에 “청소년도 참여권을 주세요”라는 댓글이 달렸다(같은 의견 내줘서 고마워요, 이**님).

자격 제한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국가공무원과 지방공무원도 선거권이 없단다. 재외국민의 경우에는 인터넷 신청이 불가능하다고 나와 있다(알고보니 나름 이유가 있었다).

더불어민주당 페이스북 화면 캡처

재외국민으로 추정되는 계정 ‘Sung******’는 페북 댓글에 “캐나다 오타와요. 해외에서는 공인인증서 없고 휴대폰 인증 안 되는데 어떻게 참여할 방법 없나요?”라며 불만을 토로했다.

실명인증을 거쳐 개인정보 수집 항목으로 넘어갔다. 평소 같았으면 귀찮아서 으레 하던 대로 ‘모두 동의합니다’를 눌렀겠지만, 기자는 매의 눈을 가졌다(라고 쓰고 민망해하는 중).

이용약관을 꼼꼼하게 살펴본 기자는 딜레마에 빠지고 말았다. “다른 정당의 대선 후보 선출을 위한 경선 선거인단에 신청한 경우 더불어민주당의 대선 후보 선출을 위한 경선 선거인단이 될 수 없으며, 이를 속이고 신청하는 경우 관계 법령에 따라 민형사상 고소고발될 수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선거인단 모집 홈페이지 화면 캡처

모든 정당의 경선을 직접 체험해보겠다는 ‘야심찬’ 포부가 이대로 막을 내리는 것인가(나 고소되는 거? ㄷㄷ).

그렇다고 민주당 경선만 보도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경선 참여 행위는 민주당 후보를 뽑겠다는 당과의 약속이고 이로써 기자는 일종의 커밍아웃을 하게 되는 셈인데, 이는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 언론의 역할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역선택’을 방지하기 위해 설치한 장치에 기자가 갇히게 될 줄이야. 결국 기자는 더 이상의 취재를 포기했다.

다만, 최종 직전 단계까지는 살펴보자는 심정으로 개인정보 수집에 동의하고 공인인증서가 담긴 USB(이동식 저장장치)를 꽂았다. 그리고 펼쳐진 세상은?

더불어민주당 선거인단 모집 홈페이지 화면 캡처

‘해당인증서는 본 사이트에서 허용되지 않습니다’ (지금 장난해?) 뒤늦게 확인한 공지사항을 보니 문제는 공인인증서였다. “2월 15일부터 19일까지는 범용 공인인증서만 가능하고 20일부터 마감일까지는 은행용/범용 공인인증서가 모두 가능합니다” (그럼 20일부터 경선을 했어야지!)

범용 공인인증서(들어는 봤는데 너 너무 낯설다)?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연간 4400원의 발급 수수료가 붙는다는 기사를 발견했다. 기자의 지인 4명에게 물었더니 일부는 범용과 은행용을 혼동하고 있었으며, 이들 모두 사용하지 않고 있었다(괜히 안도의 한숨).

범용은 모든 금융기관에서 사용할 수 있는 반면 은행용은 동일업종의 금융기관에서만 사용이 가능하다. 어쨌든 중요한 건 은행용 공인인증서 사용이 가능해지는 20일부터는 국민 경선 참여 숫자가 급증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 지점에서 기자는 고민했다. 20일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인터넷 신청에 도전할지, 아니면 이날 전화로 신청할지, 혹은 중간 과정을 보여주는 취재 자체를 중단할지를 놓고 고민한 끝에 일단 팀장에게 보고했고 체험담으로 써도 좋다는 승낙을 받아냈다(야호).

더불어민주당 페이스북 화면 캡처

이날 오후 5시, 선거인단 모집 홈페이지에 재차 들어가 봤다. 권리당원·대의원을 제외하고 1만 5800여명이 신청한 상태였다.

반응은 어떨까. “더민주 후보 뽑는데 상대에서 역선택 난리고. 당원 무시하나”, “만 18세 투표 찬성하시면서 왜 경선 참여는 만 19세인가요?”, “대의원도 현장투표와 ARS 선택 가능하게 해주세요”, “계속 통화중”, “언제까지 윈도우 PC만 사용하라고” 등 다양한 댓글이 페북 게시글에 달렸다.

실제로 이날 ‘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박사모)’의 공식 카페에는 민주당 경선에 동참하자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가 회원들의 반발로 삭제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보수 후보 지지자들이 민주당의 유력 후보가 선출되지 못하도록 고의로 민주당 경선에 참여한 뒤 ‘약체’ 후보를 뽑는, 이른바 ‘역선택’은 민주당 지지자들이 줄곧 우려해온 현상이었다.

민주당 관계자는 “일부러 역선택 하려는 선거인단을 사전에 걸러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아울러 만 18세와 공무원에게 경선 투표권을 주지 않은 것은 현행법을 따라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현행 선거법은 만 19세 이상부터 투표권을 부여하고 있으며, 국가공무원법은 공무원의 정당 활동을 금지하고 있다.

이러나저러나 선거인단을 최대 200만 명까지 모집하겠다는 민주당의 당찬(?) 포부, 과연 실현될 수 있을까? (방심하지 마. 은행용 공인인증서 풀리면 체험담 2탄 나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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