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현실은 게임의 형태로 가장 먼저 다가온 느낌이다. 국내 출시 첫날 매진이라는 기염을 토한 소니 플레이스테이션 기반 PS VR은 시뮬레이션 데이트 게임을 포함해 가상현실로 즐길 수 있는 다양한 게임을 선보였고, 세계적으로는 HTC/밸브 연합이 게임 플랫폼, 스팀(steam)을 통해 제공하는 게임들이 최대 100만 다운로드 이상을 기록하기도 했다.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을 반기는 분야는 게임 말고도 무수히 많다. 가장 현실적으로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분야는 단연 교육 분야다. VR을 이용한 체험 교실을 통해 학생들은 바다 밑이나 화성 탐험까지 가능하다. 의료계에서도 VR은 꼭 필요한 기술이다. 원격 진료는 물론 의과대 실습에도 유용하게 쓰이며 가상 체험을 통해 환자의 통증이 완화될 수 있다는 것도 밝혀졌다.
몸이 불편해서 혹은 경제적인 사정으로 여행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가상현실이 새로운 여행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실제 몸이 이동하는 여행 못지않게 현지 체험이 가능하며 비행기나 배로 쉽게 갈 수 없는 오지 혹은 극지방 여행도 가상현실을 통해 경험할 수 있다. 공연이나 스포츠 관람의 경우도 가상현실은 보는 즐거움을 배가시켜줄 것으로 기대된다.
현장에 있는 관람객은 VR 헤드셋을 통해 공연이나 경기를 더욱 생생하게 즐길 수 있고, 현장에 있지 않는 경우라도 그와 동일한 감상이 가능하다. VR로 즐기는 오케스트라 혹은 뮤지컬 공연 관람의 경우, 일등석이 무한정 늘어날 수도 있다. 쇼핑 분야에서도 가상현실은 새로운 쇼핑 경험을 선사한다. 굳이 매장에 가지 않더라도 VR 쇼핑을 통해 여러 옷을 골라 입어볼 수 있으며 내가 원하는 자동차 모델을 선택해 운전해보는 경험도 가능하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백화점이 피곤하다면 가상현실 속에서 나 혼자 오롯이 백화점 매장을 걸어 다니며 마음에 드는 물건들을 쇼핑할 수도 있다.
이는 결코 꿈 같은 얘기가 아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넘어야 할 산이 없는 것은 아니다. 기술적 난제 가운데 하나는 VR 멀미를 줄이는 것이다. VR 멀미는 일반적으로 뇌가 시각 신호를 처리하는 것과 차이가 나는 VR의 특성 때문인데 기기의 사양이 낮을수록 심하게 나타난다. 이를 줄이기 위해서는 일단 VR 기기의 성능이 좋아야 하고 모바일 기반이라면 스마트폰 사양이 VR을 지원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런 기기의 문제가 해결된다 해도 아직 VR 멀미를 완전히 없애는 기술까지는 개발되지 않았다.
일반인의 입장에서는 비용 문제도 걸림돌이다. 쓸 만한 VR 기기는 보통 십만 원이 훌쩍 넘으며 VR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모션 컨트롤러 등의 추가 액세서리도 갖춰야 한다. 이밖에 VR을 지원하는 스마트폰과 PC의 사양은 꽤 높은 편이다. 또한 현재의 통신 속도로는 VR을 구현하는 데 한계가 있다. 통신사들은 4G를 넘어 5G 시대는 되어야 VR이 대중화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는데 업계는 그 시기를 대충 2018년 이후로 잡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막대한 인프라 투자가 필수적이어서 통신사들의 무담도 만만치 않다.
디바이스 영역에서는 획기적으로 저렴한 카드보드 기기를 선보인 구글과 VR 대중화의 물꼬를 튼 오큘러스를 깜짝 인수한 페이스북, 현재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팔린 보급형 기기인 기어VR의 제조사인 삼성이 각축을 벌이고 있다. 여기에 게임 유통플랫폼, 스팀의 운영사인 밸브와 손잡은 대만의 제조업체 HTC가 개발한 바이브가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스마트폰에서 그랬던 것처럼 각 제조사들은 콘텐츠 제작과 유통에서도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이미 탁월한 동영상 플랫폼인 유튜브를 보유하고 있는 구글과 가상 소셜을 표방하며 VR 10년대계를 밝힌 페이스북이 선두를 달리고 있으며 PS VR로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고자 하는 소니가 그 뒤를 바짝 쫓고 있는 형국이다. 삼성은 독자적으로 혹은 이들 업체와의 제휴를 통해 콘텐츠 제작과 유통을 모색하고 있으나 뚜렷한 인기작이 없는 것이 아쉽다.
결국 새롭게 형성되고 있는 이 거대 비즈니스 생태계와 플랫폼을 누가 장악할 것인지는 아직 안개 속이다. 가상현실 플랫폼은 이제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어떤 플랫폼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스마트폰에서 우리가 봐 왔듯이 플랫폼을 점유한 자가 이 게임에서도 승리할 것이다. 그것이 누가 될지, 사상 최대의 플랫폼을 놓고 겨루는 치열한 싸움이 지금 막 시작되었다.
책 속으로
세계적 금융 전문 기업인 골드만삭스에서는 2025년 가상현실과 증강현실의 시장 규모를 대략 800억 달러(약 96조 원)로 예상하고 있다. 이는 현재 전 세계 데스크탑 PC 시장과 맞먹는 규모다. 그만큼 가상현실과 증강현실 분야는 앞으로 콘텐츠뿐 아니라 하드웨어 시장도 급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골드만삭스는 2025년의 시장 전망치인 800억 달러 중 소프트웨어가 350억 달러를 차지할 것으로 내다봤고, 다시 그 중의 161억 달러는 일반 소비자용이 아닌 기업용이나 공공용이 차지할 것으로 봤다. 그리고 남은 189억 달러 상당의 가상현실·증강현실 소프트웨어는 모두 게임과 엔터테인먼트가 차지할 것으로 예측했다. 그 중 비디오 게임의 비중이 116억 달러로 전망된다. - 57쪽
나이트워크를 선보인 구글은 역시 예상대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2016년 11월 16일, 구글 어스Google Earth VR을 발표한 것이다. 이미 구글은 구글 어스를 통해 오래 전부터 세계의 지리와 건물 정보를 PC와 모바일을 통해 제공해왔다. 항공 및 위성을 통해 촬영 수집한 이미지 정보를 분석하고 역시 위성 GPS 정보 등을 결합해 제공한 것이다. 구글은 PC와 모바일에서 제공하던 구글 어스 서비스에 가상현실을 더해, 구글 어스 VR을 내놓았다. 구글 어스 VR을 즐기기 위해서는 가상현실 디바이스가 필요한데, 당장에 사용 가능한 하드웨어는 HTC 바이브뿐이며(향후 다른 디바이스로 확대 가능) 해당 앱을 다운로드 받을 수 있는 곳 역시 HTC 바이브와 협력관계인 밸브 사가 운영하는 가상현실 플랫폼, 스팀Steam이다. 구글어스 VR 앱은 구글이 스팀 플랫폼에 두 번째로 출시한 앱이다(첫 번째는 VR 그림 툴인 구글 틸트브러시Google Tilt Brush). - 82~83쪽
데이트뿐만 아니라 가상의 공간에서 사람들끼리 만남이 가능하도록 도와주는 기술들도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2016년 4월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F8 컨퍼런스에서 페이스북은 가상현실에서 셀카를 찍는 기능을 선보이며 소셜 VR 시대가 다가왔음을 알렸다. 물리적으로 서로 다른 공간에 있는 사람들이 가상 공간에 모여서 함께 셀카를 찍는
데모는 소셜 VR의 특징인 ‘자유로운 공간 이동’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하겠다. - 103쪽
글로벌 업계는 가상현실을 미래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생각하는 구글, 페이스북, 삼성전자 등의 기업이 중심이 되어 가상현실 생태계를 만들어나가고 있다. 반면 국내에서는 콘텐츠 제작 및 유통 분야가 가상 현실을 전략적으로 키우려는 정부 중심으로 조성되고 있으나, 관련 기업은 아직 실질적 대응을 하기에는 이른 시기라고 판단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 스타트업을 중심으로 주로 실사 영상 분야에서 역량을 쌓아가고 있고, 일부 중소 게임사는 가상현실 게임 제작을 시도하고 있다. 결국 가상현실이 산업 전반의 새로운 혁신을 이끄는 ‘빅씽Big thing’으로 이해가 되면서 플랫폼, 네트워크, 단말 등의 전 영역에서 기업들의 활동이 증가될 것으로 예상된다. - 114쪽
편석준 , 김선민, 우장훈, 김광집 지음 | 미래의창 | 240쪽 | 14,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