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오전 서울 대치동 특검사무실은 이 부회장이 도착하기 전부터 취재진 100여 명과 삼성 미래전략실 관계자들로 북적였다.
지난달 이 부회장의 첫 소환 때처럼 시민단체도 이 부회장의 출석을 기다렸다. 이들은 "이재용 구속하라", "전경련 해체하라"고 적힌 피켓을 흔들며 "이 부회장 구속 수사"를 강도높게 외치기도 했다.
이날 오전 9시 25분쯤 이재용 부회장이 탄 검은색 차량이 서울 대치동 특검 사무실에 도착했다. 남색 정장 차림에 짙은 회색 넥타이를 맨 그는 천천히 걸어나와 포토라인에 섰다.
지난달 첫 소환 당시엔 특유의 옅은 미소를 보이기도 했던 이 부회장은 이 날만큼은 얼굴에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무겁게 입을 뗀 그는 "오늘도 모든 진실을 특검에서 성심껏 말씀드리겠다"고 두 번째 소환에 대한 심경을 짧게 밝혔다.
그러나 "순환출자 문제 관련해 청탁한 사실이 있냐", "경영권 승계를 위해 최순실 씨 일가 지원한 것이냐", "대통령으로부터 최 씨 지원 지시 받았냐"는 등 쏟아지는 취재진의 질문에 입을 굳게 다문채 조사실로 향했다.
특검은 지난달 19일 이 부회장 구속영장이 기각된 뒤 약 3주 동안 뇌물공여 혐의에 대한 추가 조사를 벌여왔다.
특히 삼성SDI의 삼성물산 주식매각 규모를 결정하는 과정에 청와대가 관여한 정황을 포착한 특검은, 이달 초 공정거래위원회와 금융위원회를 압수수색에 나섰다.
지난 2015년 9월 삼성물산 합병법인이 출범, 이로부터 한달 뒤 공정위는 순환출자 고리 해소를 위해 삼성SDI가 삼성물산 주식 1000만주를 매각해야한다고 결론내리고 위원장 결재까지 마쳤다. 그러나 불과 2개월 뒤 주식수가 절반인 500만주로 축소됐다.
특검은 이 과정에서 청와대가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조직적 지원에 나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특검은 지난 8일에는 김학현 전 공정위 부위원장을, 지난 10일에는 정재찬 공정위원장과 김종중 삼성미래전략실 사장을 소환했다. 전날에는 장충기 삼성미래전략실차장과 최상목 기획재정부 1차관도 불러 조사했다. 최 1차관은 삼성 주식 매각 당시 청와대 비서관으로 있으면서 청와대 의견을 공정위에 전달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특검은 국민연금의 삼성물산 합병 찬성 결정 이후에도 청와대가 삼성 민원 해결에 나선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삼성이 최순실 씨 딸 정유라 씨를 위해 35억 원을 송금하고, 미르·K스포츠재단에 204억 원을 출연한 배경에는 대가관계가 있다는 판단이다.
최근 뇌물수수 혐의에 휩싸인 박근혜 대통령 조사가 불발된 상황에서 뇌물공여 혐의를 받고 있는 이 부회장이 두 번째로 소환되면서 영장 재청구 여부가 주목되고 있다.
특검팀은 이 부회장 조사한 뒤 이르면 15일쯤 구속영장을 재청구하는 방안에 무게를 두고 있다.
특검 수사 성패가 박 대통령과 삼성 간 뇌물 거래 의혹 규명에 달린 만큼 승부수를 던지겠다는 방침이다.
특검팀은 이날 이 부회장과 함께 박상진 삼성전자 사장, 황성수 삼성전자 전무도 동시에 불러 조사한다. 모두 피의자 신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