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함정'에 빠진 정부…항체율 100% 무의미, '알고도 쉬쉬'

의미 없는 항체 형성률, 백신접종 판단 기준 삼아 살처분 보상금 연계

(사진=자료사진)
구제역 백신접종은 지난 2010년 350만 마리의 소와 돼지를 살처분하는 사상 최악의 피해를 입은 뒤 2011년부터 시행됐다.

하지만, 지난 2014년 7월 또 다시 구제역이 발생한 이후 2015년과 2016년, 그리고 올해까지 해마다 연례행사처럼 이어지고 있다. 더 이상 구제역 백신정책을 믿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그렇다면 백신을 접종하고 있는데 구제역이 왜 이처럼 해마다 발생하고 있는 것일까?

게다가 항체 형성률이 80%가 넘는 소 농장과 돼지농장에서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와 관련해, 정부가 이미 과거 구제역을 통해 항체 형성률이 아무리 높아도 구제역에 감염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이에 대한 후속대책을 마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항체 형성률, 표본조사의 오류…'믿거나 말거나'

구제역 항체는 크게 SP(Structural protein, 구조단백질)와 NSP(Non-SP, 비구조단백질) 2가지로 분류된다.

SP항체는 백신접종을 통해 나타나거나 자연 상태에서 바이러스에 감염돼 만들어질 수 도 있는데 형성시기가 4~7일 정도로 빠르다.

이에 반해 NSP항체는 백신을 접종하지 않은 자연 상태에서 몸 속에 들어 온 바이러스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생성되는 일종의 2차 항체로 보통 10~14일 정도 지난 뒤에 나타난다.

따라서 소나 돼지에서 NSP항체가 검출됐다면 백신을 접종하지 않았으며 구제역 바이러스에 감염된 지 오랜 시간이 지났다는 얘기가 된다.

이번에 구제역이 발생한 농장의 항체 형성률이 20%, 5%, 90%라고 하는 것은 SP항체를 말하며 NSP항체는 아직까지 검출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이 같은 구제역 항체 형성률이 단지 표본조사 수치일 뿐 신뢰도가 떨어진다는 점이다.

예컨대, 소 100마리를 키우는 농장이 있다면 처음에는 이 농장의 소 1마리를 선정해 항체조사를 하게 된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1마리 소에서 항체가 형성되지 않았다면 다시 16마리를 조사해, 이 가운데 8마리에서 항체가 형성됐다면 이 농장의 최종 항체 형성률은 50%가 되는 것이다.

결국, 표본조사에서 제외된 나머지 84마리는 항체가 형성됐는지 정확하게 파악이 안 된다는 얘기다.

게다가, SP항체가 형성된 소 8마리가 백신접종을 통해 항체가 만들어질 수도 있고, 자연적으로 형성될 수도 있기 때문에 백신 효능과 관련해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렇기 때문에, 항체 형성률이 100%인 농장에서도 얼마든지 구제역이 발생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나타나게 된다. 통계의 한계성이 분명하게 존재한다는 얘기다.

실제로 이번에 항체 형성률이 90%에 달하는데도 A형 바이러스에 감염된 경기 연천 젖소농장이 경우 백신접종을 통해 52%가 만들어졌고, 나머지 38%는 자연 항체인 것으로 조사됐다.

김경규 농식품부 식품산업정책실장은 “표본 오차가 분명하게 있다며 (항체 형성률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항체 표본 수를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 항체 형성률 보다는 방어 면역력이 더 중요

정부는 이처럼 구제역 항체 형성률에 표본 오차가 존재하고, 현장 상황에 따라 변하기 때문에 항체 형성률이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처음부터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실제로 지난 2014년 12월 발생해 이듬해 2015년 4월까지 전국을 강타했던 구제역의 경우 항체 형성률이 80%가 넘는 돼지농장에서도 집단적으로 발생했다.

이 당시 방역당국은 백신을 접종해 항체 형성률이 높게 나와도 구제역에 걸릴 수 있다며, 바이러스가 침투하지 않게 방역이 중요하다고 뒤늦게 인정한 바 있다.

농림축산검역본부는 2015년 3월 22일 브리핑을 통해 "백신 접종으로 항체가 형성된 돼지도 주위에 구제역에 감염된 돼지에서 바이러스가 뿜어져 나오면 구제역에 걸릴 수 있다"고 밝혔다.

또한, "항체가 형성돼도 돼지마다 항체가 바이러스를 이겨내는 방어 면역력은 차이가 난다"며 "방어 면역력이 떨어지는 돼지는 바이러스에 노출되면 구제역에 감염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얘기는 건강한 소와 돼지의 경우 굳이 백신을 맞지 않아도 구제역 바이러스를 이길 수 있지만, 허약한 소와 돼지는 백신을 접종해도 발굽이 돌아가고 수포가 생기는 등 구제역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정부가 백신접종이 항체 형성을 도와 구제역 예방에 일정 부분 영향을 주지만, 결정적인 역할은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번에 또 다시 항체 형성률이 낮다며 농가에 책임을 전가한 이유는 무엇일까?

◇ 항체 형성률, 물백신 논란 빗겨가기 위한 술수…살처분 보상금 연계

정부의 살처분 보상금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정부가 백신정책을 도입한 이후 백신만 제대로 접종하면 문제가 없다고 했기 때문에, 백신을 접종한 농장에서 구제역이 발생할 경우 살처분 보상금을 삭감할 명분이 없다.

따라서, 항체 형성률이 낮은 농가에 대해선 백신접종을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살처분 보상금 삭감을 위한 멍에를 씌우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 구제역이 발생한 경기 연천 젖소농장의 경우 농식품부는 처음에 항체 형성률이 52%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경기도가 실제 항체 형성률은 90%에 달한다며 반박하자, 농식품부는 O형 백신 항체가 52%, A형 백신 항체는 90%라고 말을 바꿨다.

농림축산검역본부 관계자는 "현재 소에는 2가(O형, A형) 백신을 접종하기 때문에 O타입 항체가 52% 형성됐다면 A타입도 비슷하게 나와야 하는데 90%로 높게 나온 것은 A형 바이러스에 감염됐던 소의 38%가 자연 상태에서 항체가 형성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따라서 "연천 젖소농장의 순수 백신 항체 형성률은 O형이든 A형이든 각각 52%로 보는 게 맞다"며 "이 농장은 백신접종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으로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농식품부는 따라서, 백신접종을 통한 SP항체 형성률이 52%로 정부 기준치인 80%에 크게 못미치기 때문에, 살처분 보상금을 삭감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지난 2015년에도 정부가 시키는 대로 백신을 2회 접종해 항체 형성률이 80%가 넘게 나왔지만 구제역이 발생한 농장에 대해서 살처분 보상금을 20% 삭감했다.

당시 검역본부는 "백신을 접종했어도 구제역이 발생한 것은 농가의 방역책임이 있기 때문에 살처분 보상금을 삭감하겠다"고 밝혔다.

게다가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구제역 바이러스의 유전자가 2010년 이후 계속해 변이 과정을 거치고 있지만, 백신은 지난 2011년 이후 7년 동안 영국 메리얼사가 제조한 'O 마니사' 균주만을 고집하면서 약효가 떨어진다는 사실을 숨기고 싶은 심정도 있을 것이다.

물백신으로 확인되면 구제역 예방을 잘못한 정부의 책임도 피할 수 없기 때문에 살처분 보상금 삭감에 따른 농민들의 반발을 우려한 것이다.

이에 대해 한우협회 관계자는 "정부가 항상 농민들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며 "이번에는 정확하게 따져서 백신의 문제점이 드러날 경우 정부도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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