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자궁경부암은 더는 중년 여성의 병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첫 성 경험의 연령이 낮아지고, 성생활 개방 풍토가 확산하면서 젊은 여성의 자궁경부암 발병률이 증가하는 추세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2011년부터 2015년까지 여성암 대비 자궁경부암 환자 수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20대와 30대의 비중이 각각 11.9%, 14.9%로 다른 연령대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자궁은 경부(입구)와 체부(몸통)로 구성되는데, 자궁경부에 발생한 암을 자궁경부암이라고 부른다. 경부는 질과 가까운 쪽을 기준으로 외경부와 내경부로 나뉜다. 위치에 따라 주로 발생하는 암세포의 종류가 달라진다. 국가암등록통계를 보면 2014년 기준 10만명당 자궁경부암 발생률은 10.7명이다. 국내 여성 암 순위에서는 7위를 차지한다.
자궁경부암은 사람유두종바이러스의 지속적인 감염이 발병 원인이다. 조기 성생활의 시작, 여러 명의 성관계 상대자, 흡연, 면역억제상태 등과 같은 여러 요소가 위험요인이 된다. 그렇다고 사람유두종바이러스에 감염된 여성이 모두 자궁경부암에 걸리는 것은 아니다. 감염은 흔히 젊은 여성에게 생기는데 대부분 특별한 증상 없이 일시적인 감염으로 자연 치유된다.
하지만 이 중 일부는 1년 이상의 지속 감염이 생기고, 지속 감염 환자의 일부는 자궁경부암의 전암 병변인 '자궁경부 상피내종양(이형증)'으로 진행한다. 경증이라면 약 50~60% 정도는 대개 2~3년 안에 자연 치유될 수 있지만, 일부 환자는 중증 자궁경부 이형증으로 악화한다. 중증 단계에서 발견되면 자궁경부를 원추형으로 절제하는 수술로 완치가 가능하다. 하지만 자궁경부암으로 발전하면 진행상태에 따라 광범위한 자궁절제술을 고려해야 한다.
자궁경부암의 가장 흔한 증상은 성관계 후 나타나는 질 출혈이다. 질 분비물에서 악취가 나거나 골반 통증이 나타나기도 한다.
진단방법으로는 자궁경부 세포진검사를 가장 많이 사용한다. 이 검사법은 1980년대 이후 영국에서 건강검진의 하나로 본격 사용하면서 자궁경부암의 조기 진단과 전암병변의 발견에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질병이 있는데도 음성으로 나타나는 위음성률이 30% 정도로 높은 편이어서 산부인과 전문의에게 직접 검사를 받는 게 좋다. 검사의 정확도를 높이고 병변의 크기나 중증도 등을 알아보기 위해 사람유두종바이러스 검사, 질확대경 검사, 자궁경부 조직검사 등을 같이 시행하기도 한다.
자궁경부암의 치료는 환자의 나이, 병기, 암세포유형, 기저질환 등을 고려해 결정한다. 일반적으로 암 부위를 도려내는 근치적 치료는 자궁과 질의 윗부분과 자궁곁방조직을 포함하는 광범위 전자궁절제술과 골반 림프절절제술을 시행한다. 환자의 나이가 많거나 발견 당시 병기가 2기말 이상이라면 수술보다는 방사선치료와 항암화학요법을 같이 하는 동시방사선항암화학요법을 주로 한다. 만약 다른 신체 장기까지 전이된 상태라면 전신항암화학요법을 받아야 한다.
최근에는 젊은 여성의 자궁경부암 발생률이 증가하고 결혼 연령이 늦어지면서 자궁경부암 치료에도 자궁을 보존하는 방법을 많이 시도하고 있다.
이런 치료법을 적용하는 세부 기준은 ▲ 생식력 보존을 원하는 만 40세 이하 여성 ▲ 진행되지 않은 병기(1기) ▲ 암 덩이 크기가 2㎝ 이하인 경우 ▲ 편평세포나 선세포암인 경우 ▲ 다른 신체기관으로 전이되지 않은 경우 ▲ 다른 난임의 원인이 없는 경우 등이다. 이 기준에 해당한다면 자궁경부만을 광범위하게 절제한 뒤 자궁 체부와 난소·나팔관을 남겨 암 완치 이후 임신을 시도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병을 조기에 발견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예방이다.
자궁경부암은 이미 가장 유력한 위험인자가 밝혀진 질환 중 하나다. 사람유두종바이러스 감염을 예방하는 백신 접종으로 암 발생을 상당 부분 막을 수 있다. 자궁경부암 백신은 사람유두종바이러스 중 자궁경부암과 가장 큰 연관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16, 18번 유전자형과 유사한 바이러스 외피를 주입해 항체를 형성하도록 돕는다.
현재 자궁경부암 백신은 16, 18번을 예방하는 2가 백신과 이에 더해 생식기 주변 사마귀와 관련된 6, 11번까지 예방할 수 있는 4가 백신이 나와있다. 접종 대상은 9세부터 26세까지 여성이다. 일본, 필리핀, 호주, 싱가포르 등에서는 이미 자궁경부암 백신을 국가예방접종으로 지정해 의무적으로 접종하도록 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지난해부터 만 12~13세 여아에게는 자궁경부암 백신을 국가예방접종에 포함시켰다.
지난해 일본에서는 자궁경부암 백신의 부작용이 보도된 바 있다. 대표적으로 복합통증증후군, 길랭-바레 증후군 등이다. 이후 세계보건기구(WHO)와 일본 후생노동성이 대대적으로 자궁경부암 백신 부작용 사례를 조사했지만 대부분 백신 접종과 관련이 없거나 자궁경부암 백신과 부작용 간의 인과관계가 입증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현재 사용 중인 두 가지 백신 외에도 9가 백신이 개발돼 향후 자궁경부암 백신은 자궁경부암의 예방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반면 이미 고위험 사람유두종바이러스에 노출됐거나 자궁경부에 이상이 생긴 환자는 암으로 진행되기 전에 진단하고 치료하는 것이 중요하다. 20세 이상이면서 성 경험이 있는 여성은 1년에 한 번씩 자궁경부 세포진검사를 받는 것이 좋다.
모든 여성이 적기에 자궁경부암 백신을 접종하고 정기적으로 자궁경부 세포진검사를 받는다면 미래의 부인암 전문의들은 자궁경부암 환자를 더는 볼 수 없을 것으로 기대한다.
◇ 허수영 교수는 1989년 가톨릭의대를 졸업한 뒤 동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국립 로즈웰 암연구소에서 연구교수로 재직했고, 현재 서울성모병원 산부인과 과장이다.
허 교수는 자궁암과 난소암 분야의 명의로 이름이 높다. 대한산부인과학회, 대한부인종양학회,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등에서 우수논문상을 받았다. 현재 대한부인종양학회 상임이사, 대한림프부종학회 부회장, 대한의학회 편집위원 등을 맡아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