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8차례 발생한 구제역으로 인해 소와 돼지, 사슴 등 우제류 390만 마리가 살처분됐다. 정부가 살처분 매몰비용과 보상금 등으로 지급한 예산만 무려 3조3천억원에 달한다.
이처럼 구제역은 공기중으로 감염되기 때문에 한번 발생하면 인근 농장의 소와 돼지로 빠르게 전파된다는 점에서 가축전염병 가운데 가장 무서운 병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런 구제역이 백신접종에도 불구하고 지난 2014년 이후 해마다 연례행사처럼 발생하는 것은 우리나라 가축전염병 예방 체계가 근본적으로 잘못됐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 2010년 구제역, 사상 최악 기록…정부, 뒤늦게 백신정책 추진
우리나라에서 구제역은 지난 2000년과 2002년, 2010년, 2014년, 2015년, 2016년에 발생했다. 이 가운데 지난 2010년 발생한 구제역은 1월과 4월, 11월 등 3차례에 걸쳐 발생했다.
이처럼 2000년 이후 발생한 8차례 구제역으로 소 16만8천 마리와 돼지 372만6천 마리, 염소.사슴 1만2천 마리 등 모두 390만6천 마리가 살처분됐다.
정부가 살처분 보상금과 수매자금, 소독비, 경영안정자금 등으로 지원한 예산만 3조3천192억 원에 달했다.
특히, 지난 2010년 구제역은 전국을 휩쓸며 사상 최악의 기록을 남겼다. 전국 3765개 농장에서 구제역이 발생했으며, 인근의 예방적 살처분 농장까지 포함해 6691개 농장의 소와 돼지 369만8천 마리가 살처분됐다.
이 당시 국내에서 기르던 소의 6%, 돼지의 30% 정도가 구제역으로 사라졌다.
2010년 구제역이 이처럼 피해가 컸던 것은, 백신접종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전에 발생했던 2000년과 2002년 구제역이 소규모로 단기간에 진정되면서 정부가 백신 정책을 수립하지 않았다가 된서리를 맞은 것이다.
결국 정부는 2011년부터 백신 정책을 펴기시작해, 모든 소와 돼지에 대해 백신을 접종하도록 했다.
구제역 백신은 소의 경우 생후 2개월 정도 되면 1차 접종한 뒤 1개월 후에 2차 접종을 실시하게 된다. 이후에는 6개월에 한번씩 주기적으로 백신을 접종해야 한다.
돼지의 경우는 생후 1차 접종을 실시하고 중간에 2차 접종을 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 반복되는 구제역, 농가 방역 소홀 vs 물백신
지난 2014년의 경우 7월 23일 경북 의성 돼지농장에서 처음 발생해 8월 6일까지 3개 농장이 피해를 입었다.
이어 지난 2014년 12월 충북 진천에서 발생한 구제역은 이듬해인 2015년 4월까지 전국 33개 시·군에서 185건이 발생해 17만3천 마리를 살처분했다.
그리고, 2016년 1월 11일 또다시 구제역이 발생해 3월 29일까지 6개 시·군에서 25개 농장 3만3천여 마리의 돼지가 살처분됐다.
이처럼 구제역 백신접종이 시행되고 있지만 지난 2014년 이후 계속해서 구제역이 발생하고 있는 것은 농가들이 제대로 백신접종을 하지 않았거나, 백신의 효력이 떨어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농식품부가 지난 2014년 12월 충북 진천에서 구제역이 처음 발생했을 당시 돼지의 백신항체 형성률을 조사한 결과 30%대에 불과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돼지 100마리 가운데 백신항체가 형성된 돼지가 30여 마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의미로, 백신접종의 효과가 전혀 없었다는 얘기가 된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돼지는 워낙 사육마릿수가 많아서 백신접종을 하기가 어려운데다, 백신을 접종하면 목 부위에 고름이 잡히는 등 상품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농가들이 백신접종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고 전했다.
이번에 구제역이 발생한 충북 보은의 젖소농장의 경우도 195마리 가운데 20마리에 대해 항체 검사를 실시한 결과 4마리에서만 항체가 형성된 것으로 드러났다.
여기에 백신의 효능 자체가 떨어지는 것도 구제역 발생을 막지 못하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는 구제역 백신은 영국의 메리얼사가 제조한 'O1 마니사' 형이다. 그런데 이 백신은 냉장관리를 하지 않거나 기간이 오래 지나면 성능자체가 떨어지기 때문에 '물백신' 논란을 빚기도 했다.
한돈협회 관계자는 "농장들이 아무리 백신접종을 잘해도 항체형성률이 떨어져서 구제역에 걸리는 경우가 많다"며 "정부 백신정책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개편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