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과 그의 비선실세가 주축이 된 국정농단 사태가 불거진 이후, 부패의 고리를 끊어내야 한다는 전 국민적 공감대가 생긴 가운데, 자연스레 시국과 연결지어 볼 수 있는 '더 킹'은 여러 가지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내며 흥행몰이를 이어가고 있다.
두 명의 기자가 '더 킹'을 보고 나눈 이야기를 7개의 키워드로 정리했다.
◇ 총평
김수정 기자(이하 김) : 솔직히 말하면 딱 잘라 말하기 어려운 영화다. 아주 괜찮았다는 평이나 지루하고 재미없었다는 혹평이 확 갈리는데, 양쪽이 주장하는 바에 다 공감이 갔기 때문이다. 굳이 따지자면 재밌게 본 쪽이다. 영화가 길다는 느낌을 받긴 했지만 지루해서라기보다는 분량(134분) 때문이었다. 다만 '업계' 사람들이 본다면 별로 새로울 것이 없어보여서 재미없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아, '덕질용' 영화라는 생각도 했다. 어떤 관객을 타깃으로 했는지 어느 정도 보인다는 점에서, 감독이 각각의 장면에 숨겨 놓은 상징과 비유를 찾아보는 재미가 있다는 점에서.
유원정 기자(이하 유) : 한재림 감독이 영화를 되게 꼼꼼하게 찍는 감독이다. 한강식이 무너지는 걸 쓰러지는 샴페인 장면에 비유한다든지, 박태수가 밀실에서 여배우 비디오를 보는 장면으로 권력의 맛을 알게 되는 것을 알려준다든지. 주인공을 희화화하는 장면을 보면서 전작 '관상'보다 신경을 많이 써서 만들었다는 생각을 했다.
◇ 연출미가 돋보였던 순간
유 : 사냥개들이 나오는 장면의 의미가 궁금했다. (조폭 들개파가 문제인물을 처리할 때 식욕을 돋우는 액을 그에게 묻히고, 성난 개들을 풀어 씹어 삼키게 하는 장면이 영화속에 종종 등장한다)
김 : 권력에 눈 먼 사람들이 어디까지 잔인해질 수 있나를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김 : 스테이크 먹는 씬이 한 번은 한강식의 고고한 겉모습을 부각시키기 위해 나오고, 다음 번에는 한강식-박태수가 어떻게 하면 서로를 더 엿먹일 수 있는지를 말하면서 우스꽝스럽게 그려진다. 취향에 맞는 사람에게는 장면 하나하나를 뜯어보게 하는 재미를 주는 영화다.
◇ 메시지 전달 방식
김 : 우리가 알 만한 현대사의 어떤 장면들을 영화 안에 거의 그대로 옮겨왔다는 생각을 했다. 비리에 연루된 국회의원이 검찰 출두하면서 엄청난 스포트라이트 받으며 사과하는 모습, 그걸 건물 안에서 바라보며 미소짓는 검사들… '가져다 썼다'는 느낌을 받았다.
유 : 저도 영화가 메시지를 전하는 방식이 노골적이지 않았나 생각한다. 사실 박태수가 재기를 맘먹은 것도 정의를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렇게 살면 망가지니까, 또 복수를 하기 위한 게 아닌가. 권력 최정점 맛에 빠졌던 인물이 다시 시작하는 방식이 너무 도식적이라는 생각도 든다. 하나의 캐릭터로서 존재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일대기가 '시대의 상징'으로 등장한다는 점에서 '국제시장'의 윤덕수(황정민 분)가 떠올랐다. 인물 자체가 곧 역사로 그려지는 연출은 조금 촌스럽다고 생각한다. 또, 메시지를 관객들에게 약간 내리꽂는 느낌도 받았다.
◇ 현대사 주요 장면
유 : 상업영화에 아주 직접적으로 정치적 지향성을 드러내는 게 쉽지는 않다. 감독 스타일이 있어서 이렇게 될 수 있었던 것 같다. 어쨌든 실제로 노무현에 대한 향수가 분명히 존재하고 있긴 하다. 썩은 검찰과 타협하지 않고 수술하겠다고 나선 대통령었기에, 그때라도 개혁을 해서 검찰을 조금이라도 낫게 바꿨다면 아마 지금 같은 일(국정농단 사태)은 없었지 않았을까. 현실적으로 분명히 그런 지점이 있고, 영화가 그걸 파고든 측면이 있다.
◇ 배우들
유 : 어떤 배우 연기가 거슬린다는 건 특별히 없었다. 저희 아버지는 정우성이 카리스마 있는 권력 최정점의 검사라고 하기엔 톤이 거슬린다고 했지만, 저는 한강식(정우성 분)은 '권력에 미친 개'라고 생각했다. 식욕을 돋워주는 액이 묻은 사람에게 달려드는 개처럼, 권력을 향해 전력질주하고 남김없이 먹어버리는 천박한 캐릭터. 그 역할을 충분히 잘 표현했다고 본다. 조인성도 잘했다. 배성우 연기 톤 자체가 굉장히 좋았다고 생각한다. 한없이 친절하고 착하고 웃고 있다가도, 내칠 때는 '내가 언제 네 형이었느냐' 하면서 확 내쳐버리는 연기를 자유자재로 구사했다. 조폭 역인 김의성과 류준열 연기는 플랫(전형적)했다고 생각한다. 욕이 거칠지는 않지만, 의리에 죽고 사는 무게 잡는 전형적인 조폭 역이라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본다.
김 : 사실 연기로 감탄했던 사람은 세 명이었다. 배성우, 김소진, 오대환 배우. 배성우는 그가 잘하는 연기를 전작들과 비슷하게 했다는 반응도 있었지만, 전형적이든 아니든 완성도 자체가 높아서 좋았다. 여고생 성추행범으로 나오는 오대환 배우의 연기도 소름끼쳤다. 정말 한 대 때리고 싶을 정도로. 조인성 연기는 괜찮았고 정우성도 나쁘지 않았다고 보지만 역사 강의하는 장면은 너무 어색했다. 최두일(류준열 분)은 끝까지 친구를 생각하고 의리를 지키는, '멋진 설정'을 독점한 캐릭터로 보였다. 사회적으로 더 성공했다고 평가받는 대단한 검사들이 아니라, 그 검사들이 무시하고 하찮게 여기는 조폭을 더 폼나게 그렸다는 점이 재밌었다. 류준열은 전라도 사투리가 어색해 보여서 대사 없는 장면들이 좀 더 좋았다. '대한민국에서 우리보다 더 센 놈 있으면 나와보라고 해!' 하는 장면은 빨리 지나가길 바랐다.
◇ 안희연 검사
유 : 주인공들은 여성을 성적으로 소비하는 사회에 이미 너무 길들여진 사람들이었다. 여성을 물건 취급하다시피 하는 장면도 나오고. 여성혐오적인 모든 언행들과 성추행 씬 등이 모두 김소진 배우의 등장을 위해 준비돼 있었던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이후에 더 큰 괘감을 느끼게 하기 위해서. 김소진 배우는 엘리트 남성 중심적인 사회에 균열을 내는 캐릭터 연기를 매우 잘하시더라. 사투리도 하나도 안 어색하고 생글거리는 역할로 나와서 좋았다. 나중에 박태수가 마음 변해서 안희연 검사에게 도움을 구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안 검사 스스로 (부패한 권력을) 끌어내려서 파멸시키기를 바랐다.
◇ 엔딩
유 : 이 영화가 마지막에 결국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비상식의 사회에서 상식과 진심을 갖고 사는 사람들이 '마지막'이 좋다 뭐 이런 게 아니었을까 싶다. 정말 검사'다운' 검사들이 잘 되는 엔딩은 다소 낭만적인 터치였다고 본다. 물론 최순실·박근혜 게이트 이전과 이후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정상적인 것에 위배되는 짓을 하는 게 좋지 않다는 걸 많은 사람들이 깨달았다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우리나라는 갈 길이 멀기 때문에.
김 : 박태수가 국회의원 당선이 됐는지 안 됐는지를 알려주지 않고 '그건 당신들 손에 달렸다'고 마무리하는데, 그 내레이션을 하는 목소리가 왠지 즐거워보였다. 관객이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지만, 결국에는 '투표를 잘해야 한다' 혹은 '나중에라도 정신차린 박태수 같은 인물에게 투표해야 한다' 같은 답이 정해져 있는 느낌이었다. 열심히 산 검사들이 잘 되는 건 훈훈해서 좋긴 했으나 현실적이라고 보이진 않았다. 현실에 정의로운 사람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보통 영화속 상황이 더 낫지 않나. 현실의 부조리를 다룬 영화가 분명 순기능이 있다고 보지만, 잠깐 통쾌함을 느낄 뿐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맞닥뜨린 현실은 그렇지 않으니까 허무함이 증폭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했다.
유 : 뉴스만 봐도 '더 킹'보다 더한 얘기가 잔뜩 있다. 그래서 영화 속에서 사이다 같은 장면이 나와도 관객들이 충분한 쾌감을 느끼지는 못하는 상황이라고 본다. 가벼운 마음으로 볼 수 있는 액션이나 코미디 영화들이 잘 되는 이유가 아닐까. 현실보다 더한 영화가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