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진영 유력 대권주자였던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의 불출마 선언 이후 이처럼 묘한 기류가 뚜렷해졌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선 후보를 내는 것 자체가 염치가 없다는 말이 내부에서도 나왔던 점을 고려하면 180도 달라진 분위기다.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는 주자는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다. 반 전 총장 불출마 이후 황 대행의 지지율이 치솟으면서 새누리당의 러브콜은 더욱 노골적으로 변했다.
인명진 비상대책위원장은 황 대행에 대해 "우리 당 대선 후보가 됐으면 좋겠다"고 밝히는가 하면, 정우택 원내대표는 "당에 온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도 했다. 다만 황 대행은 아직까지 입을 다문 채 상황을 관망하는 모양새다.
새누리당의 시선은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의원에게까지 향하고 있다. 김 의원이 민주당을 탈당해 제3지대에서 세를 형성하면 개헌을 고리로 중도·보수 반(反)문재인 연대를 완성하겠다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이 같은 '반문연대'의 구심점으로는 김 의원과 함께 개헌론자로 꼽히는 김병준 전 국무총리 내정자의 이름도 거론된다. 새누리당이 최근 대선 전 개헌을 당론으로 채택한 것도 이 같은 반문 연대를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새누리당 핵심당직자는 "개헌을 대선 전에 꼭 하자거나, 그게 안 되더라도 연정 형태로 엮어서 친문 패권주의자들에게 제왕적 권력을 넘겨줘서는 안 되겠다는 인식이 있다"며 "그런 틀 안에서 두 분의 이름이 얘기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당내 여론 형성시 (두 사람 설득을 위한) 당 차원의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단순한 '설'이 아님을 시사했다. 인 비대위원장의 측근도 "제3지대에 선 김 의원을 두고는 다양한 상상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당 내에서는 이미 출사표를 던진 이인제 전 최고위원 외에 원유철 전 원내대표와 김문수 비상대책위원, 김관용 경북지사, 안상수 의원이 출마시점을 확정했거나 저울질하고 있다. 홍준표 경남지사와 김태호 전 최고위원의 이름도 본격 거론되기 시작했다.
정우택 원내대표 역시 출마를 고려하고 있다. 그는 3일 출마 의사를 묻는 질문에 "노코멘트"라고 답했다.
아울러 "우리 당을 불임정당이라고 했지만, 다산체제로 들어간다. 다음 주부터 보라. 거의 10명 가까이 나올 것"이라고 예고했다.
새누리당 '다산체제'의 배경에는 반기문 전 총장을 가운데에 놓고 그린 중도·보수 통합의 큰 그림이 한 순간에 사라진 데 대한 불안감이 깔려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반기문 대체재'를 찾는 움직임이 빨라지면서 일단 이름 있는 인사면 대선주자로 놓고 보자는 식의 기류가 번지고 있다는 것이다.
새누리당 한 의원은 "당과 보수 전체가 상당히 어려운 반면 민주당과 문재인 전 대표의 지지도는 상당히 높으니까 당 의원들이 여러 가지 정치적 상상력을 발휘해보는 과정에서 나오는 (주자) 얘기가 많다"고 설명했다.
민주당 김종인 의원의 핵심 측근도 새누리당 내 '반문 주자설'에 대해 "반 전 총장이 사라지니까 김 의원을 또 거론하는 것 아니냐"며 의심 섞인 시각을 내비쳤다.
때문에 거론되는 주자들의 진정성에 대해서도 물음표가 따라붙는다. 출마 의사를 밝힌 일부 인사에 대해서는 당선 대신 지방선거를 염두에 두고 몸값 불리기에 나선 것이라는 비판까지 흘러나온다. 또 향후 단일화 과정을 거치며 후보나 그의 지지세력들이 정치적 지분을 챙기려는 의도로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야권은 새누리당에서 대선 후보를 배출하는 것 자체를 비판하고 있다. 민주당 추미애 대표는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고 또 다시 정권을 잡겠다고 나서는지 국민은 울화통이 터질 지경"이라고 말했다.
특히 황 대행에 대해서는 "탄핵된 정권의 2인자에 불과하다"며 "새누리당이 말한 깜짝 놀랄 후보가 황 대행이라면 국민은 대단히 분노할 것"이라고 각을 세웠다.
이와 비슷한 말은 새누리당 내에서도 나왔었다. 인명진 비대위원장은 지난달 11일 "(현 시점에서) 당이 국민에게 '우리 당을 또 찍어주세요, 정권 주세요'하는 얘기는 염치없어 못 한다"고 했다. 20여일만에 입장이 표변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