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찾지 마소"…박한철 전 헌재소장의 '동안거'

퇴임 전날, 취임 첫해 약속지키러 아동복지시설 찾아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 심리 도중 임기만료로 지난달 31일 퇴임한 박한철 전 헌법재판소장이 동안거(冬安居)와 같은 생활을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동안거는 스님들이 겨울철 석 달가량 참선 수행에만 전념하는 것으로, 불교 신자인 그가 탄핵심판 선고 전까지 외부와의 접촉을 끊기 위해 한 '숨바꼭질'이다.

3일 헌재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박 전 소장은 "넣어주는 밥만 먹고, 방 밖으로도 나가지 않겠다"며 "정말 시급한 사안이 아니면 날 찾지 말라"는 당부만 남긴 채 정확한 행선지를 밝히지 않았다고 한다.

지난달 31일 "탄핵심판의 조속한 결론은 모든 국민이 공감하고 있을 것"이라는 퇴임사를 남기고선 삼청동 공관에 들러 직접 차량을 몰고 부인과 함께 곧장 떠났다.

8년 전 기부했던 유일한 부동산인 서울 서초동 아파트에 그동안 꾸준히 월세를 내왔지만 퇴임 뒤 자택으로는 단 한 차례도 발길을 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소장은 퇴임 직후 한 사찰에서 정식 동안거에 참여할 예정이었는데, 그 장소가 일부에 알려지면서 계획을 한 차례 변경하기도 했다.


외국으로 떠나 연구 활동에 전념하는 것도 고민했으나 '부인의 건강상 무리'라며 단념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박 전 소장은 지난해 10월 기자간담회 때 박 대통령 탄핵심판, 헌법상 대통령의 불소추특권 등에 관한 의견을 묻는 말에 "지금 개인 의견을 말하는 건 적절치 않다"고 했다.

"지금은 나라를 걱정하고, 조속히 정상화가 돼야지 않느냐는 생각뿐"이라는 게 그의 입에서 나온 거의 유일한 답변이었다.

당시 "변호사 개업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던 그는 "연금으로 생활하면 된다. 인생 공부를 하면서 지내겠다. 그게 바람직한 퇴임 후 헌재 소장의 모습"이라는 생각을 밝혔다.

그가 퇴임사 말미에 남긴 선시(禪詩)는 '서로 싸우고 다투며 뒤엉킨 세상이 난새를 타고 올라서 보면 움막과 다를 게 없다'며 '꿈에서 깨 현실로 돌아오니 새 한 마리가 울고 있다'는 내용이다.

공직생활의 마지막 소회를 선시 한 수로 대신하면서 헌재 관계자 일부에겐 "국가를 걱정하는 마음에서 고른 선시"라면서도 "뜻과 취지를 묻는 이들에게 굳이 해석을 달지 말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퇴임 전날 마지막 일정으로 박 전 소장이 찾은 곳은 서울 용산구에 있는 아동복지시설인 '혜심원'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헌재소장으로 취임했던 2013년 방문 때 "퇴임할 때까지 찾아오겠다"고 약속했던 곳이라고 한다.

취임 첫해 가을 무렵 혜심원의 20여 명을 헌재로 불러 견학시킨 뒤 ‘밥공기’에 담은 점심을 구내식당에서 함께 했다.

'배식판'에 익숙했던 아이들을 위해 그가 각별히 신경 쓴 부분이었다.

재임 중 굵직한 사건을 처리하며 이후 찾지 못했다가 퇴임 전날에야 약속이 마음에 걸려 헌재 직원 몇명만 데리고 혜심원을 찾았다는 박 전 소장은 그곳의 아이들과 설 연휴를 함께 보내고선 5000원~1만 원씩 세뱃돈도 사비로 건넸다.

점심을 함께 하던 중 탄핵심판 관련 질문을 받고선 절차에 관해 설명해줬고, 퇴임 후 계획을 묻자 당분간 쉬면서 공부하거나 학생들을 가르칠 생각이라고 말했다고 동석했던 혜심원 관계자는 전했다. 아이들에게 남긴 당부는 "다투지 말고, 한 가족처럼 지내라"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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