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조한 일상에 젖어 있던 언어학자 루이스(에이미 아담스)는 어느날 갑자기 하늘에 나타난 미확인비행물체(UFO, 이 영화에서는 '셸'로 불린다)가 보내는 신호를 해독하기 위해 미국 정부가 꾸린 특별팀에서 일하게 된다. 이 셸은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12곳 상공에 둥지를 튼 채 18시간마다 문을 열고 지구인들의 출입을 허용한다.
루이스는 함께 일하게 된 이론물리학자 이안(제레미 레너)과 셸에 들어가 외계의 존재들과 대면하고는 충격에 휩싸인다. 그런 루이스와 이안에게 주어진 임무는 저들로부터 '무엇 때문에 지구에 왔는지'에 대한 답을 얻어내는 것이다. 두 사람은 그들이 만들어내는, 동그란 원에 바탕을 둔 복잡다단한 문자 해독에 매달리면서 외계인들과의 소통을 시도한다.
루이스와 이안을 비롯한 전 세계 학자들은 그 답을 찾기 위해 매달리고, 각자의 연구 성과를 공유하면서 공조 체제를 다져간다. 그 사이 지구는 혼란에 휩싸인다. 전 세계 주요 도시에서는 폭동이 일어나고, 선동가들은 외계인의 침공에 맞대응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이 와중에 미국, 중국, 러시아 등 열강이 자국의 이해관계를 따지기 시작하면서 공조 체제에 균열이 가기 시작한다. 그 여파는 외계인과의 만남을 지속하면서 소통의 물꼬를 트기 시작한 루이스와 이안에게까지 미치게 된다.
영화 '컨택트'는 이렇듯 외계의 광범위한 개념을 차용한 덕에, 그간 여타 SF영화가 관습적으로 만들어낸 이분법적인 '대립'의 구도를 뛰어넘는다. 우리가 현실 세계에서 비일비재하게 겪게 되는 '나' 아닌 모든 존재와의 '갈등'과 '화해'로 싹을 틔우는 '소통'의 가치를 웅변하는 까닭이다.
이 점을 영화 '컨택트'는 오프닝 시퀀스에서부터 선언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극중 상황으로 인해 '엄마에게 와'로 번역된 '컴 백 투 미'(Come back to me)라는 대사가 주는 여운이 강렬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소통을 위한 첫걸음은 외계의 존재에게 먼저 손을 내밀고 다가가는 데 있기 때문이리라.
숱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를 통해 익숙해진 문법과 달리, 이 영화에서 SF라는 장르는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니다. 머나먼 외계에서 온 존재의 '등장'(흥미롭게도 이 영화의 원제는 도착, 등장을 일컫는 영단어 'arrival'이다)이라는 극한의 상황과 맞닥뜨린 인류의 대응을 통해, 우리가 발붙이고 있는 현실 세계를 반추하도록 돕는 다리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 영화는 SF 장르의 본령에 충실함으로써 스스로를 SF 수작의 반열에 올려 놓는다.
그 언어에는 말과 글은 물론 표정, 몸짓까지도 포함된다. 그래서 우리는 말과 글이 통하지 않는 외국인, 아직 말과 글을 배우지 못한 아기, 말과 글을 쓸 수 없는 반려동물과도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것이다. 극중 루이스가 두터운 방어복을 벗고 미지의 존재에게 성큼성큼 다가감으로써 소통의 물꼬를 트는 장면, 저들의 언어를 해독한 그녀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되는 모습 등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유다.
영화 '컨택트'에 관심을 두게 된 데는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2015), '에너미'(2013), '프리즈너스'(2013), '그을린 사랑'(2010) 등을 연출한 드니 빌뇌브라는 감독 이름의 영향이 컸다. 남미 거대 마약조직 소탕 과정을 그린 전작 '시카리오'에 이어, 사회적 약자인 여성의 시선을 통해 '경쟁' '대립' 등으로 대변되는 남성성이 빚어낸 부조리한 사회의 맨얼굴을 들춰내는 그의 문법은 몹시 인상적이다. 드니 빌뇌브는 이번 영화에서도 남성 중심의 사회가 지닌 인식, 소통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냄으로써 혐오로 얼룩진 지금의 세계에 절실한 고민거리를 건넨다.
2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116분 상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