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의 두 얼굴…'책략가'와 '천박함'

정권·기업 휘두른 '무서운 존재'…엄청난 권력 이용 '떡고물'에 욕심

박근혜 대통령의 오늘을 존재하게 만든 '비선실세' 최순실은 도대체 누구일까.

기업의 발목을 비틀어 재단 만들 생각을 어떻게 했을까. 박근혜를 움직이면 알리바바 얘기처럼 '지니' 안종범이 나타나 문제를 해결하는 '특급 솔루션'은 어떻게 구축했을까.

'국정농단' 비선실세 최순실(61)씨
또 플레이그라운드나 더블루 K와 같은 '개인 회사'를 만들어 재단 기금을 빼먹는 기막힌 사업 수완은 어디서 배운건가. 무엇보다 박 대통령을 '아바타'처럼 오차없이 움직인 최씨의 기획과 감독 능력은 타고난 것인가, 아니면 아버지 최태민의 교육 덕택인가.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취재현장을 지켜보고 또 지금까지 7차례 관련 재판을 취재하면서 지속적으로 가져온 의문들이었다. 아직도 기자는 정확히 그녀가 누구인지 어떤 정체성을 가진 인간인지를 모른다.

하지만 지난 몇달간 품어온 이런 의문을 미진하더라도 한번쯤 정리를 해보는것이 좋겠다는 판단을 했다.

먼저 잠정결론부터 말한다면 최순실은 두 얼굴의 이중적 인간이라고 정리하고 싶다.

두 얼굴 중 하나는 그녀가 박 대통령의 오늘을 만든 '그림자 측근'으로 '책략가적 기질'을 가졌다는 것이다. 또다른 얼굴은 그녀가 '천박함'의 소유자였다는 것이다.

권력자와 아랫사람을 카리스마와 책략가 기질로 움켜잡고 한류와 체육시장을 장악할 '큰 판'을 꿈꿨지만, 측근으로서 형편없는 공적 의식과 천박한 욕심은 일을 그르치게 한 요인이 되고 말았다.

◇ "특검 출석때 고래고래 소리치는 모습이 최순실 본성"

최씨 아래서 일했던 사람들은 재판에서 공통적으로 "그녀가 무서웠다"고 진술했다.

K스포츠 재단 박헌영 과장이 작년 11월 29일 검찰 조사를 받을때 일이다. 조사도중 잠시 화장실에 갔던 박 과장이 다시 조사실로 헐레벌떡 뛰어 들어왔다. 화장실 가는 복도에서 조사를 받으러 온 최순실을 목격한 것이다.

지난 31일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박 과장은 '왜 다시 조사실로 뛰어 돌아왔냐'는 검찰측 질문에 "갑자기 복도에서 최순실을 목격했고 무서운 생각이 들어 순간적으로 피하게 됐다"고 증언했다.

노승일 부장도 최씨가 미르·K스포츠 재단 임직원들에게 얼마나 무서운 존재였는지를 증언했다.

검찰측은 지난 1월 24일 공판에서 노 부장에게 '고영태가 최순실에 대해 어떻게 소개했냐'고 물었다.

'비선실세' 국정농단의 중심인 최순실씨와 부친 최태민, 박근혜 영애
노 부장은 "고영태가 (최순실에게) 쩔쩔맸다"고 설명했다. 추가로 '고영태가 왜 쩔쩔맸다는 거냐'고 묻자 "고영태는 '최목사 딸이다'라고 했고, 그래서 '박근혜, 최순실 하는 그 최순실 말이냐' 했더니 '그렇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박헌영 과장도 "최씨가 미르와 K재단을 실제로 운영하는 것을 알고 고영태가 쩔쩔매는 모습을 보며 더 무섭게 느꼈다"고 한발 더 나갔다.

증인들은 최씨에 대해 "감정기복이 심하고 업무지시할때 고압적으로 굉장히 다그치는 성격"이라며 "1월 25일 특검 출석할때 고래고래 소리지르는 모습이 최씨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판단하면 맞다"고 말했다.

최씨는 절대로 아랫사람들과 사적인 얘기를 섞지 않았다. 본인이 누구라 밝힌 적도 없다. 고영태는 최씨 존재에 대해 잘았지만 노승일 부장을 제외하면 다른 임직원들에게 대부분 "알려고 하지 마라. 알 필요도 없지 않냐"고 말했다.

그러다보니 이성한 미르재단 사무총장이나 김성현 사무부총장 등은 처음 최씨 면접을 봤지만 정체를 잘 몰랐고, '일이 척척 돼가는걸 보면서 엄청 힘이 쎈 분'이란걸 느끼고 인터넷을 검색해본 뒤에야 대통령과 아주 가까운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초기에는 "도대체 최순실이 우명우 와이프야, 안종범 와이프야"하면서 농담을 나눈 일도 있었다고 진술했다.

◇ "대통령보다 더 많은 일을 하는 것처럼 돌아다니는 것 보면 놀라웠다"

검찰 관계자는 "별다른 능력도 없는 것으로 드러난 박 대통령이 국회의원과 한나라당 대표를 거쳐 대통령까지 되는 과정을 보면 최 씨의 숨은 '책략가 기질'을 빼놓고는 설명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재판을 지켜봐도 박 대통령은 '최의 아바타'에 불과했다는 강한 느낌을 갖게 된다. 이러한 책략가적 배후 조종능력은 최씨가 아버지 최태민에게 배운건지, 타고난 것인지, 아니면 대학시절 새마음대학생총연합회 회장을 지내는 등 권부 주변 단체수장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습득한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실제로 지난 2015년과 2016년 내내 최씨가 자신의 딸인 정유라를 지원하고 미르·K스포츠 재단을 설립하면서 움직인 동선과 행적을 보면 최씨가 '보통 여자'는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한 측근 인사에게 '최순실이 재단을 만들 만큼 사업감각이 있나'라고 물었더니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어떻게 보면 (최순실이 대단하다). 한 두 가지 관여한게 아니고 정말 여러가지 관여했다. 일할 때 보면 '항상 바쁘게 어디 가야 한다'며 '빨리 내놔라' 이런 식으로 쪼고 온종일 돌아다녔다. 지금 생각하면 문체부 가야지. 미르 가야지. 플레이그라운드 가서 챙겨야지. 더블루K 돌봐야지. K스포츠재단 관여해야지. 이것저것 챙겨야지. 정유라 챙겨야지. 이대 가야지. 정말 한 두 가지 챙기는게 아니다. 일만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검찰의 다른 관계자는 "'최 씨가 없었다면 오늘날 박 대통령이 존재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며 "30여년간 막후에서 박 대통령의 멘탈을 유지·관리해주고 대통령까지 만든걸 보면 재단 그 이상이라도 만들 수 있는 '내공'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다른 측근 인사도 "최가 재단에 대한 지식이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러나 상황판단이나 결단을 내리는 건 남자 못지 않았다. 추정이지만 아버지 최태민이 자식 여러명 가운데 최순실을 선택한 것도 그런 기질때문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박헌영 과장은 "최씨가 엄청난 능력을 가진 건 아니지만 주워들은 얘기를 전문가인양 떠들고 일로 만들어가는 집요함은 탁월했다"고 말했다.

"나한테 체육관련 얘기를 할때 분명히 주워들은 얘기를 한다고 생각했다. '국가 체육이라든지 시진핑 주석이 중국에서 국가 체육을 얼마나 지원하는지 아냐' 등 많은 얘기를 했다. 제가 볼때는 분명히 어디서 주워 들은 얘기다. 아마도 문체부 관련 일은 김종 전 차관한테 다 들었을 것이다. IMG스포츠매니지먼트사 얘기도 했다. 타이거우즈 소속사다. 지금은 글로벌 거대 매니지먼트다. 이 또한 김종이 스포츠마케팅을 전공했으니까 최순실한테 얘기를 해줬을 것이다. 그런 얘기를 듣고와 마치 전문가인양 떠들고 대통령보다 더 많은 일을 하는 것처럼 돌아다니는 것을 보면 놀라웠다."

◇ 불같은 성격과 천박함이 최씨 발목잡고 국정농단사건이란 부메랑이 됐다

최순실은 권력자를 키우고 그 뒤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펼쳤지만 결국 그녀의 불같은 성격과 천박함은 부메랑이 됐다.

최씨가 자기를 드러내지 않고 보안에 철저했지만 자기 색깔인 불같은 성격을 어쩔 수 없이 드러내면서 국정농단 사건이 터지는 도화선이 됐다.

최씨는 미르·K재단 기금모금과 설립, 사업화를 초스피드로 밀어붙였다. 재단 실무자들을 주말에도 쉬지 못할 정도로 다그쳤다.

박헌영 과장은 "'빨리 보고서 가져와라, 수정한 기획안 가져오라'며 쉴새 없이 밀어붙였다. 제가 토요일 새벽 1시까지 서류작업을 하면 고영태는 옆에 앉아 있었고 마무리하면 고영태가 어디론가 최순실이 있는 곳으로 가서 보고를 해야 했다. 밤이고 낮이고 없다"고 말했다.

‘국정 농단’의 장본인 최순실(61)씨가 25일 오전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대치동 특별검사 사무실에 소환되는 중에 취재진들에게 소리치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
그 과정에서 고영태도 인간적 모멸감을 수없이 느꼈던 것으로 전해진다. 최순실과 고영태가 서로 싸우는 일이 잦아졌고 심적 상처를 받고 두 사람 관계는 결정적으로 틀어지게 된다. 결국 '완전범죄'를 꿈꾸었던 국정농단은 최씨와 측근들이 갈라지면서 균열이 온 것이다.

최씨는 대통령을 좌지우지하는 비선실세였지만 최씨의 '천박성'도 곳곳에서 드러난다.

측근 인사는 "이대 김경숙 전 학장(구속)을 만날때 두 사람은 온갖 교양있는 척을 다했다"고 술회했다. 그는 최씨와 김 전 학장은 서로 "내가 무척 좋아하는 사람이고 영혼이 참 맑다"고 한참을 떠들었다고 말했다. 국회 청문회에서 두 사람은 '서로 모른다'고 시치미를 뗐지만 실제로는 눈뜨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교양있는 사람들인양 행세한 것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어느 정권이나 측근이 있지만 대의를 갖고 권력자를 대리해야 하는데 최씨는 오로지 사적인 권력을 통해 떨어지는 떡고물을 먹겠다는 인식이 바닥에 깔려 있기 때문에 일이 터진것 같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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