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송 : 권영철의 Why뉴스
■ 채널 : 표준 FM 98.1 (07:3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권영철 CBS 선임기자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중도 사퇴했다. 유엔 사무총장 퇴임 기자회견에서 '제 한 몸 불사르겠다'고 선언했지만 귀국 3주만에 '몸에 바른 기름조차 태우지 못하고 대선 열차에서 뛰어내리고 만 것이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원희룡 제주지사에 이어서 대선후보 지지율 2위를 달리던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까지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이른바 대권 잠룡의 수가 크게 줄어들었다.
그래서 오늘 [Why뉴스]에서는 '반기문, 박원순, 원희룡 등 잠룡들 왜 잇따라 불출마 선언하나?'라는 주제로 그 속사정을 알아보고자 한다.
= 정치평론가들은 대부분 반 전 총장이 중도에 그만둘 것이라고 예측을 하고 있었다. 언제 그만두느냐?가 관건이었을 뿐이다. 특히 이재명 성남시장은 "설날이 끝나면 집으로 갈것"이라며 가장 근접하게 예측을 했다.
반 전 총장이 불출마를 결심하게 된 이유를 딱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준비부족'이라는 데 대체로 동의한다.
중도 탈락의 첫 번째 이유는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는데 이를 만회할 가능성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떨어지는 지지율을 만회할 길이 없다보니 결국 포기하게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컨설팅 민의 박성민 대표는 "편안하게 꽃가마를 탈 수 없는 상황을 견디지 못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박 대표는 "반 전 총장은 박 대통령이 탄핵이 안됐거나 탄핵이 됐더라도 분당되지 않았다면 새누리당 후보로 '꽃가마'를 탈려고 했겠지만 여권이 분열된 상황에서 스스로 지지율을 끌어올릴 요소가 없다보니 불출마 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대선주자들 중 1위로 출발했지만 10%초반까지 떨어지고 이를 만회할 방법도 찾기 어렵다보니 그만 둘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한국사회의 문제점에 대한 고민이나 깊이있는 성찰이 없었다는 것이다.
여러 정치평론가들이 이 부분을 지적한다. 반 전 총장이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이 맞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는 얘기도 나왔다.
반 전 총장은 임기를 마치고 귀국하면서부터 온갖 논란에 휩싸였다. '가짜뉴스' 탓을 했지만 대부분의 논란은 스스로 자초했다. 일일이 나열하지 않더라도 "촛불시위가 변질됐다"거나 "젊어서 고생은 사서라도 하는 만큼 해외로 진출하고, 정 일이 없으면 자원봉사라도 했으면 한다"고 말해 호된 질타를 받았다.
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은 "반 전 총장이 한국사회나 한국정치에 대한 인식도 부족하고 감각도 떨어지고 성찰도 없었다"면서 "'정치교체'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그에 맞는 메시지가 없을 정도로 준비가 부족했다"고 평가했다.
유시민 작가가 지난해 말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반기문 UN 사무총장은 풍찬노숙하면서 뭘 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대체로 전망이 뚜렷하고, 거기로 가는 길이 탄탄해 보일 때 나서는 분"이라는 것이었다.
반 전 총장은 불출마 선언문에서 "저의 순수한 포부를 인격살해에 가까운 음해, 각종 정치교체의 명분은 실종되면서 저 개인과 가족 그리고 제가 10년을 봉직했던 유엔의 명예에 큰 상처만 남기게 됨으로써 결국은 국민들에게 큰 누를 끼치게 됐다"고 밝혔다. 정치가 고상한 외교무대인 걸로 착각했다는 얘기다.
시사평론가인 유창선 박사는 "반 전 총장이 접촉한 사람들 대부분이 자기를 외면하면서 호응하지 않는 상황을 못견딘 것"이라면서 "대선을 너무 쉽게 생각한 정치적 준비도, 단련도 안 된 인물의 말로"라고 평가했다.
특히 반 전 총장은 정치인들이라면 말했을 '부덕의 소치'라는 말조차 하지 않았다. 내 탓이 아니라 남 탓만 한 것이다. 그러면서 "한 사람이라도 상의를 했다면 뜯어 말렸을 것이 분명하다. 한 발 더 디디면 헤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해 참모들을 믿지 못했다는 걸 스스로 인정했다.
= 그 말이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반 전 총장은 불출마 기자회견을 한 뒤 참모들과의 대화에서 이런 언급을 했다. "표를 얻으려면 '나는 보수쪽이다'고 확실하게 말하라는 요청을 너무나 많이 들었다. 말하자면 보수의 소모품이 되라는 것과 같은 이야기다"면서 "정치인이면 진영을 분명히 하라고 요구하더라. 그러나 보수만을 위해서 위해서 일하는 사람은 대통령의 자격이 없다. 나는 보수이지만 그런 이야기는 내 양심상 받아들일 수가 없다"는 것이다.
반기문 본인은 보수와 진보로 편을 가르지 않고 모두를 아우르는 그런 정치를 하고 싶었는데 핵심참모나 보수층에서 '확실한 보수'의 이미지를 보여달라고 계속 요구했다는 걸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아마 반 전 총장은 형용 모순이라고 비판받은 '진보적 보수주의자'를 정말로 실현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외교에서는 완승도 완패도 없다고 한다. '51:49'가 가장 잘 된 합의라고 한다니까 평생을 직업외교관으로 살아온 반 전 총장으로서는 어느 한쪽만 선택하라는 요구를 받아들이기 어려웠다고 말하는 것이다.
유창선 박사는 "반 전 총장이 보수와 진보(보수정당과 야권의 비문세력)를 다 평정하는 큰그림을 그렸는데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정치권에 대한 원망"으로 보인다면서 "역량에 비해 꿈이 너무 컸던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것도 저것도 좋다는 말하면 우리나라에서는 '정치적'이라고 하지만 영국에서는 이런 사람을 두고 '외교적'이라고 표현한다고 한다.
= 역시 지지율이 발목을 잡았다. 박 시장은 1월 26일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국민의 마음을 얻지 못했다'고 실토했다. 2%대의 낮은 지지율에 대선후보 여론조사 대상에서조차 제외되자 과감하게 불출마를 선언한 것이다.
박 시장은 "시장 두 번을 그리 어렵지 않게 됐던 것 때문에 아마 정치라는 것에 대해 잘 몰랐던 것 같다"며 "저 개인의 준비도 많이 부족했었다"고 시인했다. 스스로 '내탓이오'를 한 것이다.
박 시장 측에서는 "정책에서는 많은 준비를 했지만 언론이나 국민들이 관심을 갖지 않았다"면서 "국민들은 정책보다는 정권교체에 더 높은 관심을 나타냈는데 그에 대한 대비가 부족했다"고 털어놨다.
박 시장측의 한 핵심관계자는 박 시장의 지지층과 문재인 전 대표의 지지층이 상당부분 겹친다. 그 지지층들은 누가 되는가보다는 정권교체를 해야한다는 데 더 큰 관심을 갖고 있다. 그런데 박 시장 진영에서 문재인 전 대표를 비판하자 '정권교체를 방해'하는 걸로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신속히 불출마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 다의적으로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박 시장은 어제(1일) 페이스북에 "지리산을 다녀왔습니다. 천왕봉에서 노고단까지 걸었습니다. 눈이 오고 바람이 불고 구름이 일었습니다"라고 심경의 일단을 내비쳤다 그러면서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저 눈보라와 짙은 구름 속에서도 여전히 태양이 빛나고 있었습니다" 여전히 꿈을 버리지 않았음을 강조했다.
박 시장의 이런 의지는 멀리보면 차차기 대선을 준비하겠다는 의미로 받아 들일 수도 있고, 내년에 있을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 3선에 도전하겠다는 뜻도 된다.
박 시장은 불출마 선언에서 '국민의 염원인 정권교체를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는 것'과 '다시 시민속으로 들어가겠다는 것' 두 가지를 분명하게 밝혔다.
박 시장측 관계자는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정치적 확장성이 커졌다"면서 "차차기 대선 출마를 부인하지 않을 것이고 서울시장 3선 도전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차차기 대선은 지방선거와 같은 2022년에 치러진다. 내년 지방선거에 출마해도 차차기 대선출마에는 차질이 없다는 얘기다. 임기중 중도사퇴라는 부담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 원 지사는 설 연휴가 끝난 첫날인 그제(1월 31일) 여의도 바른정당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회의에서 "저는 이번 대선에 출마하지 않기로 했다"고 선언했다.
원 지사는 "현재 저는 제주도지사로서 제주도정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는 만큼 제주도의 현안업무와 대선 출마를 병행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본다"면서 "제주도를 대한민국의 보물섬으로 만들기 위해 제주도 현안에 충실하게 집중하겠다"고 강조했다.
정치평론가들은 원 지사의 경우 '변수가 아니었다'고 평가한다. 잠룡 중 하나로 거론되긴했지만 바른정당 내에서도 유승민 의원이나 남경필 경기지사에 비해 대중적 인지도도 낮고 당내경선에서도 여러차례 낙마한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원 지사는 제주도민들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저는 초임 임기 중 도지사로 제주도정에 1차적 책임을 지고 있다"고 밝혔는데 내년에 있을 지방선거에 다시 도전하겠다는 뜻을 담은 것으로 보인다.
▶ 대선 레이스가 시작도 안 됐는데 왜 잠룡들이 줄줄이 불출마를 선언하는 거냐?
= 가장 중요한 건 지지율 때문이다. 정치인들은 민심을 먹고 산다. 그런데 지지율이 오르지 않으면 어쩔도리가 없는 것이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도 원외지만 여권성향의 후보 중 2~3위를 꾸준히 유지했지만 4%대의 박스권을 넘지 못했다. 결국 불출마를 선언한 것이다.
물론 새누리당 이인제 비대위원처럼 지속적으로 출마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잠룡들의 경우 정치적 입지를 위해 도전의사를 비치지만 지지율이 반등하지 않으면 중도에 그만 두게 된다.
끝까지 경선을 갈 수도 있지만 그럴 경우 유력주자와 감정을 상하거나 심할 경우 척을 지면서 다음을 기약 할 수 없게 될 수도 있다. 대승적인 양보와 자기희생을 통해 차기를 도모하는 게 유리 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박원순 시장처럼 초기에 깔끔하게 불출마를 선언함으로서 범야권 지지층으로부터 계속 지지를 끌어낼 수도 있는 것이다.
또 경선레이스에 참가하면서 합종연횡을 통해 이른바 '플랜B'를 도모할 수도 있다. 그런데 반 전 총장의 경우 대권이 아니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박성민 대표는 "반 전 총장이 총리를 할 것도 아니고 당 대표를 할 것도 아니지 않느냐?"면서 "불출마 외에 선택할 카드가 없기 때문에 조기에 그만두게 됐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7선인 김무성 의원의 경우 대권을 포기하는 대신 개헌을 통한 내각형 총리를 노린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고, 다른 잠룡들도 대선 출마대신 다른 역할이 주어진다면 중도에 포기하는 사례가 늘어날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