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처럼 들어와 미풍으로 끝난 반기문, 영욕의 20일

정치 교체 외치던 73세 정치 신인, 빅텐트 펴지도 못하고 접어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1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대선 불출마 선언을 하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
지난달 12일 수많은 환영 인파 속에서 금의환향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귀국 20일만인 1일 대선 불출마를 전격 선언했다.

그는 국회에서 새누리당과 바른정당, 정의당 지도부를 예방한 뒤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제가 주도해 정치교체를 이루고 국가통합을 이루려했던 순수한 뜻을 접겠다는 결정을 했다"고 밝혔다.

지난달 12일 인천공항에 마련된 귀국 환영회에서 그는 유엔 사무총장의 옷을 벗고 정치 신인의 새 옷을 갈아입었다. 몸을 불살라 정치 개혁의 뜻을 이루겠다는 명확한 메시지도 던졌다.

그러나 73살의 신인에게 정치 세계는 냉혹했다.

반 전 총장은 민생 속으로 들어가겠다며 자가용 대신 공항 철도를 타고 이동하며 첫 정치 행보를 시작했다.


고향인 충주와 음성을 비롯해 대구, 광주 등 경상도와 호남을 가로지르는 광폭 행보에 나섰지만 제대로 준비되지 않았던 탓에 실수를 연발하며 서툰 모습을 그대로 언론에 노출했다.

귀국 후 공항 철도를 타고 이동하면서 1만원권 지폐 2장을 한꺼번에 넣거나, 외국산 생수를 사는 모습이 카메라에 찍혀 구설에 올랐다. .

또 음성 꽃동네 방문시 턱받이를 착용한 채 누워있는 노인에게 죽을 먹이는 사진이 공개돼 이른바 반기문 턱받이가 논란이 됐고, 선친 묘소에서 성묘 후 퇴주를 생략하고 직접 마시는 영상까지 공개되며 '1일 1실수'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해 묻는 기자들에게 "나쁜놈들"이라고 막말해 비난을 사기도 했다.

보수 진영의 심장인 대구는 물론, 노무현 전 대통령 묘소와 팽목항을 방문하며 중도까지 외연을 넓히려는 행보는 오히려 "정체성이 불분명하다"는 비판으로 되돌아왔다.

귀국 컨벤션 효과를 보지 못하고 지지율이 주춤하자 반 전 총장은 지난달 25일 관훈클럽 토론에서 "임기를 줄이고 권력은 총리와 나누겠다"며 특정 정당에 가입하기보다는 제3지대에서 세력을 키워 보수 진영의 구심점 역할을 해 지지율을 반등시키겠다는 의지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바람과 달리 지지율은 귀국 직후 곤두박질쳤다.

귀국 전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를 추월해 1위를 수성하던 그는 귀국 직후 13일 25.3%(리얼미터)로 반짝 1위를 한 것 이외에는 일주일 뒤인 19일에는 21.8%(리얼미터)를 기록했고, 설 연휴 직전에는 19.8%로(리얼미터) 10%대로 떨어졌다. 불출마를 선언한 1일엔 16.5%(알앤서치)로 뚝 떨어졌다.

반풍이 미풍으로 세력이 약화되자 탈당까지 불사하겠다며 지지를 선언했던 새누리당 충청권 의원들도 잔류를 선언하며 슬그머니 발을 빼며 반 전 총장에 정치적 타격을 안겼다.

그는 지난달 31일 "대선 전 개헌을 위한 개헌 협의체를 구성하자"며 마지막 승부수를 띄웠지만 야당은 물론 범여권까지 싸늘한 반응을 보이면서 동력이 눈에 띄게 떨어진 모습도 관측됐다.

13년만에 사당동 자택으로 돌아왔던 지난달 12일 그는 자신을 마중나온 환영 인파에게 "금년 정유년은 닭띠의 해"라며 "닭은 새벽을 울린다. 아침에 태양이 떠오르듯 새아침을 이뤄나가는 데 같이 노력해나가자"고 말했다.

하지만 냉혹한 정치 현실 속에서 '정치 교체'를 외치던 그는 대선의 꿈을 접으며 빅텐트를 펴 보지도 못한 채 그대로 접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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