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전남대 5.18연구소 김희송 연구교수가 발표한 '5.18민주화운동 기간 헬기사격 군기록 종합분석 자료'에 따르면 전투병과교육사령부의 1980년 5월 21일 조치사항(20사단 충정작전 상보)에서 '오전 9시 무장 헬기 긴급 건의 내용'이 기록돼 있다.
또 합참상황보고철에 "5월 21일 오전 10시 506항공대 소속 500MD헬기 2대가 2군 구두지시에 의해 광주소요사태 진압차 출발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특전사령부 작전경과에는 '5월21일 오후 3시 20사단 병력, 헬기로 도청 투입 실패'라는 기록 등이 존재한다.
김 교수는 이 같은 기록을 토대로 "5월 21일 오전부터 군은 헬기를 이용한 20사단의 전남도청 투입 작전을 준비하고 지원 헬기가 도착한 오후 1시 10분 이후 도청투입 작전을 실행했다"고 분석했다.
이어 "오후 3시까지의 도청 투입작전이 실패한 뒤 오후 4시 30분 61여단장과 대대장들이 '헬기 정찰을 통해 공중기동작전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보고한 이후 오후 4시 50분 도청에 주둔해 있던 특전사 병력이 전격적인 철수를 단행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광주소요사태분석 교훈집과 육군1항공여단 작전 지원 내용에 '헬기의 구체적 작전 임무가 무력시위 및 공중화력 지원'으로 명시돼 있는 점을 토대로 '명령에 의한 공중화력 지원'이 '헬기 사격'을 의미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김 교수는 특히 5월 21일 오후 1시부터 3시 사이 헬기 사격 목격 증언이 잇따른 점, 5월21일 오후 1시 특전사의 도청 앞 집단 발포(군 최초 사격)가 있었던 점, 헬기를 이용한 도청 투입작전이 전개되기까지 특전사가 사격하며 도청을 사수할 이유가 충분했던 점, 1항공여단의 무장헬기 광주 투입이 작전일지에 기록된 점 등을 헬기 사격의 근거로 들었다.
이어 특전사령부가 헬기를 이용한 20사단 병력의 도청 투입작전 실패의 내용을 '광주지역 소요사태 진압작전 총괄 보고서'에 기록으로 남겨둔 것은 "담당했던 전남도청을 포기하고 철수했던 불명예의 책임을 희석하기 위한 목적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