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대한민국은 현재 '1인 소비' 시대다. 혼자 먹고 여행하고 노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사회·경제를 관통하는 하나의 트렌드(추세·경향)로 자리 잡았다.
가장 큰 요인은 만혼(늦은 결혼)과 고령화 등의 영향으로 혼자 사는 1인 가구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인구 구조적 변화뿐 아니라, 실업과 어려운 경제사정 등 탓에 의도적으로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꺼리는 성향도 1인 소비 '붐'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처럼 '나 홀로' 가구 증가와 '나 홀로' 소비 문화 확산에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빈곤과 정치적 무관심이 1인 가구의 특성으로 굳어질 경우 향후 우리 사회의 심각한 문제가 될 가능성도 있다.
◇ 57%25 혼밥 경험, 간편식 6년만에 3배로, 1인 영화·여행 '쑥'
농림축산식품부가 지난해 말 발표한 '2016년 외식소비 행태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설문조사 대상자 3천여 명 가운데 절반이 훌쩍 넘는 56.6%가 "혼자 외식(혼밥)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더구나 혼밥 경험자들의 월평균 혼밥 빈도는 무려 6.5회에 이르렀고, 특히 남성의 경우 7.3 차례나 됐다. 1주일에 거의 두 번꼴로 혼밥을 한다는 얘기다.
별다른 조리 과정 없이 간단히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가정 간편식(HMR)' 수요가 급증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외식 '혼밥'뿐 아니라 가정 내 '혼밥'도 많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국내 가정 간편식 시장 규모(한국농식품유통교육원)는 지난 2010년 7천700억 원에서 2015년에는 거의 두 배인 1조3천억 원까지 불었다.
지난해에는 다시 1조 원이 더 늘어 2조3천억 원에 이른 것으로 추정된다. 6년 만에 3배 이상으로 커진 셈이다.
식사뿐 아니라 술까지 동네 편의점이나 집에서 혼자 조금씩 사서 즐기는 이른바 '혼술 족'이 늘면서, 지난해 상반기 처음으로 국내 유통채널 가운데 편의점이 주류 상품군 매출 1위 유통채널 자리에 올랐다.
주거 생활 행태도 1인에 최적화되고 있다.
국내 대표 가구업체인 한샘의 온라인쇼핑몰 한샘몰의 경우, 최근 3년간 책상·침대 등 1인용 가구의 매출이 연평균 30%씩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전체 품목의 연평균 매출 증가율(20%)보다 10% 포인트(P)나 높은 수준이다.
현대리바트 온라인몰(리바트몰)에서도 최근 3년간 1인용 가구의 매출 증가율(전년 대비)은 ▲ 2014년 24.7% ▲ 2015년 27.3% ▲ 2016년 28.1% 등으로 줄곧 20%를 웃돌고 있다. 같은 기간 전체 품목의 연평균 매출 성장률(15%)의 거의 두 배에 이를 만큼 1인용 가구를 찾는 소비자가 많다는 얘기다.
혼자 영화관에 가는 사람도 부쩍 늘었다.
CJ CGV에 따르면 1인 좌석만 구매해 영화를 본 '1인 관객' 비중은 2012년 7.7%에 불과했으나, 2015년 10.7%를 거쳐 지난해에는 13.3%까지 뛰었다. 반면 '2인 관객' 비중은 2012~2016년 63.4%에서 58.9%로 떨어졌다.
'나 홀로 여행'도 대세다.
하나투어를 통해 지난해 상반기 항공권 한 장(1인)만 예약한 1인 여행객 수는 11만여 명으로, 1년 전보다 31%나 증가했다.
이는 같은 기간 하나투어에서 예약한 전체 여행객 수 증가율(20%)보다 11%포인트(P) 높은 수준이다.
여행가격 비교 사이트 '스카이스캐너'에서 2014~2016년 항공권 한 장(1인)을 찾는 검색 횟수도 두 장(2인 여행), 세 장이상(가족 여행) 검색의 각각 1.8배, 8.6배에 이를 만큼 월등히 많았다.
◇ 1인가구 증가에 '불황형 소비' 겹쳐…"빈곤·정치무관심 걱정"
이처럼 '1인 소비' 시장이 팽창하는 것은 생활 공동체 단위인 '가구'의 구성원이 한 명뿐인 '1인 가구'가 빠르게 늘어나는 것과 가장 밀접한 관계가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혼자 사는 가구 수는 520만3천 가구로, 전체 1천911만1천 가구의 27.2%를 차지했다. 2010년(23.9%)과 비교해 불과 6년 사이 3.3%포인트(P)나 커졌다.
명백하게 이제 대한민국의 가장 보편적 가구 형태는 2인 가구(26.1%), 3인 가구(21.5%), 4인 가구(18.8%)가 아니라 1인 가구(27.2%)인 것이다.
심지어 한국국토정보공사(LX)의 '대한민국 2050 미래 항해' 보고서에는 약 30여 년 후 2050년 1인 가구 비중이 35%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이런 인구 구조적 변화에 경기 불황과 높은 실업률 등 경제적 요인까지 겹쳤다. 여러 사람과 더불어 먹고, 마시고, 노는 비용까지 부담하기에는 힘에 부친다는 뜻이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아무래도 취업이 어렵고, 취업해도 직장이 불안정하기 때문에 필수적 소비를 제외하고 친구나 동료들과 어울렸을 때 쓰게 되는 비필수적인 소비를 최대한 줄이려고 노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한국건강증진개발원 오유진 부연구위원도 '1인 가구, 신 건강 취약계층으로의 고찰 및 대응' 보고서에서 국내 1인 가구의 빈곤과 건강 문제 등을 걱정했다.
그는 "유럽과 미국,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고소득 1인 가구가 많아 경제를 이끄는 한 축이 됐지만, 한국은 1인 가구의 45.1%(2014년 기준)가 저소득층으로, 2인 이상 가구 저소득층 비율((10.9%)보다 훨씬 높다"며 "지속적 외식과 불규칙한 생활 습관으로 영양 불균형, 만성위염 등의 건강 문제가 생기면 우울증이나 대인 기피증 등 정신건강 문제로까지 이어질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1인 가구의 경우 노인 1인가구든 청년 1인가구든 경제적으로 어렵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말했다.
특히 노인 1인 가구의 빈곤 문제는 심각한 수준이다. 한국노동연구원이 통계청의 자료로 분석한 결과 2015년 기준 60세 이상 1인 가구의 상대적 빈곤율은 67.1%에 이르렀다. 상대적빈곤율은 처분가능소득을 기준으로 중위소득의 50%에 미치지 못하는 가구의 비율을 뜻한다.
개인·파편적 소비 생활이 경제뿐 아니라 사회, 정치에까지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있다.
한 경제연구소 연구원은 "아무래도 1인 소비와 함께 사회 내 교류가 줄고 개인화 경향이 갈수록 뚜렷해지면, 사회 내 연대의식 형성과 의견 수렴 등에 더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신 교수는 "지금까지의 1인가구 선거 참여는 다른 가구보다 상대적으로 적었다"며 "경제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더욱 1인 가구를 정치적으로 대변할 수 있는 채널이 있어야 하는데, 선거 참여가 적어 1인 가구의 정치적 통로가 없어질까 걱정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