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페미니즘: 페미니즘의 열두 가지 질문들>

<그럼에도 페미니즘>은 페미니즘의 시각으로 한국 사회현상을 돌아본다. 이 책은 최근 페미니즘 열기의 연원이 된 메갈리아로부터 군대, 데이트 폭력, 섹스 , 성매매, 노동, 속물론 등 다양한 국면에서 페미니즘의 쓸모를 묻는다. 그 답은 여성학 연구자와 여성운동 활동가 뿐만 아니라 섹스 칼럼니스트, 대중문화연구자 등 해당분야 전문가 12명의 목소리를 묶었다. 필자들은 페미니즘이 여성 뿐 아니라 모두의 삶에 풍요를 가져다줄 수 있는 학문이자 운동이라고 입을 모은다.

1장 〈메갈리아의 ‘거울’이 비추는 몇 가지 질문들〉에서 여성학 연구자 윤보라는 현재 래디컬 페미니즘, ‘이상한 페미니즘’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메갈리아의 탄생 배경을 소개한 뒤 메갈리아가 페미니즘 운동의 맥락에서 갖는 의의를 모색한다. 메갈리아는 ‘미러링’ 전략을 통해 남성 중심적인 온라인 공간에서의 발화를 성별을 뒤바꿈으로써, 일종의 권력인 ‘재미’의 주체가 되어 수많은 네티즌들에게 친근한 언어로 페미니즘을 전파했다.

2장은 ‘군무새(군대와 앵무새의 합성어)’라는 표현이 등장할 정도로 페미니즘과 성평등에 있어 짝패처럼 따라붙는 군 문제를 다룬다. 한국문학 연구자 조서연은 〈‘여자도 군대 가라’?―군 복무와 성평등의 관계에 대하여〉에서 여자가 군대를 가는 것이 진정한 성평등의 실현이 되는지의 문제에 대해 ‘여성의 군 복무’를 설정으로 삼는 웹툰 〈뷰티풀 군바리〉같이 익숙한 대중문화 장르뿐 아니라 실제 여군이 보편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이스라엘이나 일본의 사례를 들어 여성의 군 복무가 군대에서 여성의 성적 대상화로 변질되어 실제 성 평등에는 큰 보탬이 되지 못함을 지적한다. 나아가 TV 예능 프로그램 〈진짜 사나이〉에 전시된 여성 출연자들의 모습을 통해 군대에서의 여성은 동등한 군인이 아니라 가부장제에 온전히 포함된 모습으로 나타남을 설명한다.

3장은 일상 속 페미니즘 중 가장 피부에 와닿는 문제인 데이트 폭력을 다룬다.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활동하는 김보화는 〈치정과 멜로, 그 경계에서 데이트 폭력을 묻다〉를 통해 데이트 폭력 문제를 왜 페미니즘 관점에서 공부해야 하는지 이야기한다. “여성의 ‘싫어’는 동의를 의미한다”와 남자의 박력에 대한 신화가 작금의 방화·살인으로까지 이어지는 데이트 폭력 문제를 어떻게 방기해왔는지, 그리고 데이트 폭력과, 그에 수반되는 데이트 관계에서의 성폭력이 모두 사회적으로 주입된 후천적인 ‘남성성’의 확인으로 나타남을 지적한다.


4장 〈남성 진보 논객과 담론 헤게모니―‘청년 진보 논객’ 데이트 폭력 폭로에 부쳐〉는 2015년 6월을 물들였던 청년 진보 논객과 노동 운동가에 대한 데이트 폭력 폭로 그 이후를 들여다본다. 스스로에 대해 의심하고 지성적으로 생각하여 행동할 법한 ‘진보 논객’조차 왜 데이트 폭력의 가해자가 되며, 오히려 폭로 이후를 대처하는 진보 진영 측에서 실망스러운 반응들이 왜 나타나는 것일까? 한국여성의전화 활동가 김홍미리는 페미니즘에 대해 ‘판단중지’하고 그 문제를 페미니스트에게 미루는 남성들에게 이미 젠더화된 공론장을 낯설게 보고 페미니즘을 함께 고민하자고 손을 내민다.

한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 당선된 박근혜가 최순실 게이트로 결정타를 맞으면서 ‘여성 정치인’ 문제가 그 어느 때보다 주목받고 있다. 5장 〈그럼에도, 페미니스트 정치〉에서 녹색당 공동정책위원장 김은희는 18대 대선 당시 제기되었던 박근혜가 정말 여성을 대표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다. 더불어 최근 트럼프에게 석패한 힐러리가 민주당 경선에서 샌더스와 경합을 벌일 때 빚어졌던 여성 지지자들 사이의 갈등을 다루면서, 단순히 생물학적 여성의 정치가 아닌 진정한 페미니즘 정치가 무엇인지 논한다.

6장은 여성의 관점에서 “그놈들의 섹스는 잘못되었다”라며 책 《이기적 섹스》를 출간해 큰 반향을 일으켰던 섹스 칼럼니스트 은하선이 맡았다. 〈나는 섹스에 대해 이야기하는 ‘여자’〉는 책 출간 이후 얻었던 사람들의 반응을 유형별로 소개하면서 그들의 편견을 논평한 뒤, 여성이 여성의 만족을 위한 관점에서 섹스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이 페미니즘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지 따져본다.

성별 이분법에서의 퀴어의 위치를 묻는 7장 〈여성을 사랑하는 나는 여성이 아닙니까?〉는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에서 적녹보라 패러다임을 비롯한 다양한 영역에 관심을 갖고 활동 중인 나영이 썼다. 루소가 “국왕이든, 귀족이든, 평민이든 누구에게나 천부인권이 있으며, 저 미개한 아프리카 흑인들조차 천부인권을 가지고 있지만 여성만은 예외다”라며 천부인권론에서도 누락시켰던 여성이 백인 여성을 시작으로 유색인종에 이르기까지 인권을 쟁취해온 역사를 들어, 성별 이분법에서의 여성에 합류되지 못한 여성의 존재를 지적한다.

8장 〈성노동 비범죄화, 한국에서는 안 될 일인가?〉에서는 여성학자 박이은실이 성매매 문제를 노동의 관점에서 푸는 성노동 담론을 소개한다. 2004년 성매매 특별법 제정 이후로 성산업이 더욱 음성화되면서 성산업 노동자들을 이전보다 더한 위험으로 내몰고 있다며, 오히려 성매매 문제를 가치중립적인 노동의 관점에서 바라봄으로써 성매매
로 인해 배태되는 문제들을 경감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펼친다. 이에 성노동에 대한 편견 열 가지를 소개한 뒤 이를 반박함으로써 이해를 더했다.

9장 〈성매매 비범죄화, 안 될 일이다〉은 8장의 ‘실전편’ 격으로 이루어졌다. 성매매 문제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보도해온 기자 박은하가 한국 사회의 현실을 사례로 들면서 성매매 비범죄화 담론의 실제적 한계를 지적한다. 박은하는 성매매 현장을 탐사해온 경험을 살려 포주의 존재가 성매매 구조에서 성판매 여성들을 어떻게 착취하는지, 실제 범죄의 영역에서 벗어난 ‘룸살롱 1차’에서 이뤄지는 성적 서비스들이 얼마나 폭력적인지 보여주면서 성매매의 매커니즘을 단순히 성교의 발주와 수주로만 볼 수 없음을 이야기한다.

경제학과 교수 홍태희가 쓴 10장 〈일하겠다, 그러니 돈·욕·매 앞에 평등을 허하라〉는 노동 현장에서의 페미니즘을 이야기한다. 성평등 논의에서 가장 기본적으로 제기되는 임금격차와 유리천장 문제뿐 아니라 직장 안에서의 처우와 경력 단절 등을 들어 ‘기울어진 운동장’에 대해 설명한다. 남성과 여성 모두 노동시장에서 남자라서 또는 여자라서 고통받지만, 여성 노동자들은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인해 생존에서조차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음을 경제학적 관점에서 적시한다.

11장은 여성혐오의 가장 오랜 레파토리인 속물론에 대해 다뤘다. 스노비즘은 비단 여성만의 특성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여성들은 ‘된장녀’, ‘김치녀’와 같은 멸칭을 얻으며 그 속물 근성을 공격당해왔다. 여성학 교수 엄혜진은 〈여성들은 왜 ‘속물’이 되어야 했나〉에서 이 신화에 대해 자본주의에 뒤늦게 참여하게 된 여성들의 성공에 대한 욕망이 온전히 실현되지 못하기에 소비 자본주의의 타깃이 되어 ‘속물’이라는 개인적인 수준으로 폄하되었음을 지적한다.

이렇듯 다양한 영역에서 이뤄진 페미니즘에 대한 논의는 대중문화 연구자 손희정의 ‘진짜 페미니즘’ 이야기로 마무리된다. 1990년대 ‘그 페미니즘’이라는 명명으로부터 2015년 ‘무뇌아적 페미니스트’라는 발언까지, 페미니즘은 ‘맞는 말이지만 우리나라 페미니스트는 좀 이상해’라는 사람들에 의해 번번이 그 적통을 의심받아오고 있다. 12장 〈‘진짜 페미니즘’을 찾아서―타령을 도태시키고 다시 논쟁을 시작할 때〉는 페미니즘이 단순히 여성의 권리 신장만을 목표로 한다는 편견을 깨고 적녹보라 패러다임에 따라 노동, 환경 문제와 연계되는 학문임을 설명한다.

윤보라 , 조서연, 김보화, 김홍미리, 김은희, 은하선, 나영, 박이은실, 박은하, 홍태희, 엄혜진, 손희정 지음 | 은행나무 | 236쪽 | 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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