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은 상하의가 분리돼야 한다. 원피스는 안 돼"
여직원들에게 아직도 이같은 시대착오적인 복장 규제가 남아 있는 회사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 "섀도우, 립스틱, 볼터치를 꼭 하라고?"
26일 한국일보에 따르면 서울 여의도에 본사를 둔 모 증권사는 지난 19일 사내 게시판에 직원들의 '정장 드레스 코드(복장 규정)'를 공지했다.
규정에는 여성 직원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지침을 내린 내용이 담겼다. 반면 남직원에 대해서는 '노타이 정장 원칙에 콤비(혼합정장) 금지' 정도만 명시한 것으로 보도됐다.
정장은 꼭 위 아래가 분리된 투피스 형태를 입어야 하며 원피스는 지양한다. 부득이 원피스를 입었다면 버튼이 달린 재킷과 함께 착용해야 한다.
블라우스는 치마, 바지와 어울리는 디자인이어야 하고 레이스 등 장식이 많다면 지양한다. 민소매와 라운드티는 금지되며 액세서리는 3개(귀고리, 반지 목걸이) 이내 착용을 권장한다.
매니큐어를 바를 경우 피부와 유사한 색이어야 하며 원색이나 화려한 무늬는 피해야 한다.
구두는 반드시 정장용 구두로 힐높이는 4㎝~7㎝를 권장한다. 앞뒤가 트인 샌들은 금지된다.
◇ 시민 반응 두 갈래…'그럴 수 있다' vs '그럴 수 없다'
시민들은 직업 특성상 지침을 이해해야 한다는 주장과 군대 문화냐고 묻는 반대 의견 등으로 나뉘었다.
신입사원 이 모(24) 씨는 "남자들 정장은 사실 디자인이 거기서 거기 아니냐"며 "여자들 정장은 세미정장이다 뭐다 폭이 넓어서 증권사 같은 곳은 규정을 정확히 하지 않으면 뒤죽박죽일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씨는 이어 "고객이 민망하지 않을 정도면 된다"며 "유니폼이 있는 게 아니면 정확히 적어놓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반면 신입사원 김 모(25) 씨는 "이 규정은 여성 직원을 동료가 아니라 여자로 본다는 것"이라며 "'여직원 복장 규제'란 말 자체가 누군가의 취향에 맞춘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김 씨는 "여성에게만 굴레를 씌워서 기준을 둔다는 게 엄청난 부담과 압박을 가하는 것"이라며 "규정을 만든 이에게 여직원을 직원으로 생각하기는 하는지 진심으로 묻고 싶다"고 일갈했다.
취업준비생 허 모(25) 씨는 "저렇게 입어서 일의 능률이 올라간다면 수긍하겠다"며 "이건 여성 차별의 문제는 당연한 거고 한 개인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라며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허 씨는 "디스크 환자라든가 발볼에 문제가 있어 힐을 신을 수 없는 사람도 있다"며 "개인의 특성을 인정하지 않고 규정에 따르라는 건 군대 문화의 연장인 것인지 의문이 들 정도"라고 일갈했다.
◇ 회사 "강제성 없다"…업계 관계자 "현장 적용되는 규칙 아닐 것"
여의도 금융업계 관계자는 26일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원론적인 거다. 교칙이 있으나 엄격히 지키는 학교와 그렇지 않은 학교가 있는 것과 같다"고 설명했다.
관계자는 "깐깐한 것은 다 첨부해서 만든 것 같다"며 "일하느라 바쁜데 누가 이런 걸 지적하느냐. 정말 이런 게 존재한다면 과연 회사에서 개인이 견딜 수 있을 수 있을까"라고 지적했다.
이어 "실제 현장에서 이걸 적용했을지는 미지수"라며 "요즘 같은 시대에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여의도에서 같이 근무하는 사람 중에 이렇게까지 입고 있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고 덧붙였다.
◇ "'남성 외모는 지적할 필요 없다'? 그 자체가 성차별"
한국여성민우회 관계자는 26일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이 지침을 만든 것 아니겠느냐"라고 지적했다.
그는 "조직에서 여성에 대한 외모평가가 만연하게 이뤄지는 문화의 연장선"이라며 "금융업이라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착각할 수 있으나 그조차 성차별 문화에 기인한 생각"이라고 일침했다.
관계자는 "여성을 평가할 때 노동자로서의 직무 능력, 성실함 등이 아니라 외모나 복장 등으로 연결하는 뿌리깊은 관행에서 발생한 일"이라고 일갈했다.
한국양성평등육진흥원 최인숙 교수는 이날 CBS노컷뉴스에 "지침을 재공지할 정도로 아직도 누군가는 이걸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거다. 그게 문제"라고 말했다.
최 교수는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 이 자체가 고정관념"이라며 "이런 규정이 증권사에 있다는 것은 금융권의 보수적 분위기가 남아있다는 증명"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누군가는 '고객의 시선에서 볼 때 불편하기에'라는 이유를 말하는데 그 자체도 기업의 무책임을 고객에게 떠넘기는 행위"라고 강조했다.
최 교수는 또 "여성에 대해서만 굉장히 세세한 규정하고 있는데 이 기준 자체가 주관적이고 성차별적"이라며 "남성의 노타이는 그들의 불편함을 배려하면서 바뀐 문화다. 여성에게만 왜 유연하지 못한가"라고 일갈했다.
그는 "직원들 입장에서는 인사 평가 등을 우려해 당연히 압박감을 느낄 조항"이라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