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없어 시골 못 가요"…불경기에 서민들 설연휴 부담

"제사 상은 제일 저렴하게…세뱃돈은 액수 줄여서"

(사진=강혜인 기자)
계속되는 경제 한파 속,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은 서민들에겐 설 명절이 마냥 반갑지만은 않다.

제사 상차림부터 시작해 조카 새뱃돈까지 돈 나갈 곳이 늘어나면서 가족을 만나는 반가움보다는 걱정이 앞서기 때문이다.


◇ "제일 싼 음식으로 제사상 준비해도 비싸"

사진은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일뿐 기사 내용과 연관된 바 없음. (사진=박종민 기자)
설 연휴를 얼마남기지 않은 지난 23일, 서울 영등포구의 한 대형마트 앞은 몰아친 한파로 얼어붙은 날씨만큼이나 썰렁했다.

진열대 위 물건들은 가득했지만 장을 보러 나온 손님은 뜸했다. 그마저도 물건을 들었다 놨다를 반복할 뿐이었다.

지속되는 체감 물가 상승, 사상 최악의 청년 실업률,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에 AI 파동까지, 악재에 악재가 겹치면서 설 명절을 앞둔 일반 시민들의 표정은 어두웠다.

이들은 늘어나는 지출에 부담감을 토로했다.

박 모(64) 씨는 "제사 상차림 준비하는 데에 작년보다 10만 원 정도 더 들었다"며 "제일 저렴한 재료로 조금씩만 준비했는데, 그래도 돈이 그렇게 많이 든다"고 한탄했다.

박 씨는 "손주와 조카가 있는데 세뱃돈은 작년보다 줄여서 줘야 할 것 같다"며 울적한 표정을 지었다.

홍 모(55) 씨도 "오랜만에 가족들 얼굴 볼 생각에 기쁜 마음도 있지만 마음 한편에는 부담감이 더 크다"며 "명절 보내고 나면 허리띠를 다시 졸라매야 되겠다"고 말했다.

자영업자 이 모(45) 씨는 "하필 이번 연휴에 자영업 부가세 내는 기간이 겹치는 바람에 가뜩이나 부담스러운데 더 부담이 늘어났다"며 걱정했다.

불경기에 직격탄을 맞은 시장 상인들에게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잡곡을 파는 상인 황 모(52) 씨는 "김영란법 시행 이후부터 장사가 안 되기 시작하더니 최순실 게이트 터지고 나서부터는 시장에서 사람을 거의 볼 수가 없을 정도"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 "못 주니 안 가요"…돈 걱정에 친정 방문도 포기

사진은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일뿐 기사 내용과 연관된 바 없음. (사진=박종민 기자)
일부 시민들은 수입은 줄어들고 지출만 늘어나는 탓에 아예 가족 방문을 최소한으로 줄이기로 했다.

인천 부평구에 사는 장 모(58) 씨는 "남편 벌이도 그저 그런데 물가는 계속 오르고 있어 힘들다"며 "시댁은 꼭 가야 하니까 가지만, 친정에는 안 가려고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장 씨는 "한 때는 대학생 조카들에게 세뱃돈으로 10만 원 씩도 줬는데 지금은 돈이 없으니까 넉넉히 주지도 못하고, 조카들은 조카들대로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니까 마음이 아프다"고 덧붙였다.

서울 금천구에 사는 큰집 며느리인 박 모(48) 씨는 "명절에 딱 한 번 일가 친척들이 우리 집으로 오는 건데 아무리 그래도 싸구려 반찬들로만 상을 차릴 순 없지 않냐"며 한숨을 내쉬었다.

사진은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일뿐 기사 내용과 연관된 바 없음. (사진=박종민 기자)
박 씨는 "뉴스에서 나오는 평균 설 장보기 물가를 이해할 수가 없다"며 "뉴스에서 대형마트에 가면 30만 원, 시장에 가면 20만 원이라고 하는데, 기본으로 들어가는 것만 계산해도 그것보다 2배는 더 든다"고 토로했다.

갓 직장에 들어간 청년 직장인들도 마음 한편, 주머니 사정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김 모(27) 씨는 "학자금 대출, 월세 등 그렇잖아도 나가는 돈이 많은데 명절에 부모님 건강식품이라도 사드리려면 이번 달에는 소비를 줄여야겠다"고 털어놨다.

가장들 역시 말 못할 부담으로 가슴앓이를 하고 있다. 조카 세뱃돈에 더해 부모님 용돈 부담까지 짊어진 김 모(56) 씨는 "내 생활을 줄여서라도 부모님 용돈도 드리고 조카들 세뱃돈도 줘야하지 않겠냐"며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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