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 상차림부터 시작해 조카 새뱃돈까지 돈 나갈 곳이 늘어나면서 가족을 만나는 반가움보다는 걱정이 앞서기 때문이다.
◇ "제일 싼 음식으로 제사상 준비해도 비싸"
진열대 위 물건들은 가득했지만 장을 보러 나온 손님은 뜸했다. 그마저도 물건을 들었다 놨다를 반복할 뿐이었다.
지속되는 체감 물가 상승, 사상 최악의 청년 실업률,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에 AI 파동까지, 악재에 악재가 겹치면서 설 명절을 앞둔 일반 시민들의 표정은 어두웠다.
이들은 늘어나는 지출에 부담감을 토로했다.
박 모(64) 씨는 "제사 상차림 준비하는 데에 작년보다 10만 원 정도 더 들었다"며 "제일 저렴한 재료로 조금씩만 준비했는데, 그래도 돈이 그렇게 많이 든다"고 한탄했다.
박 씨는 "손주와 조카가 있는데 세뱃돈은 작년보다 줄여서 줘야 할 것 같다"며 울적한 표정을 지었다.
홍 모(55) 씨도 "오랜만에 가족들 얼굴 볼 생각에 기쁜 마음도 있지만 마음 한편에는 부담감이 더 크다"며 "명절 보내고 나면 허리띠를 다시 졸라매야 되겠다"고 말했다.
자영업자 이 모(45) 씨는 "하필 이번 연휴에 자영업 부가세 내는 기간이 겹치는 바람에 가뜩이나 부담스러운데 더 부담이 늘어났다"며 걱정했다.
불경기에 직격탄을 맞은 시장 상인들에게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잡곡을 파는 상인 황 모(52) 씨는 "김영란법 시행 이후부터 장사가 안 되기 시작하더니 최순실 게이트 터지고 나서부터는 시장에서 사람을 거의 볼 수가 없을 정도"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 "못 주니 안 가요"…돈 걱정에 친정 방문도 포기
인천 부평구에 사는 장 모(58) 씨는 "남편 벌이도 그저 그런데 물가는 계속 오르고 있어 힘들다"며 "시댁은 꼭 가야 하니까 가지만, 친정에는 안 가려고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장 씨는 "한 때는 대학생 조카들에게 세뱃돈으로 10만 원 씩도 줬는데 지금은 돈이 없으니까 넉넉히 주지도 못하고, 조카들은 조카들대로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니까 마음이 아프다"고 덧붙였다.
서울 금천구에 사는 큰집 며느리인 박 모(48) 씨는 "명절에 딱 한 번 일가 친척들이 우리 집으로 오는 건데 아무리 그래도 싸구려 반찬들로만 상을 차릴 순 없지 않냐"며 한숨을 내쉬었다.
갓 직장에 들어간 청년 직장인들도 마음 한편, 주머니 사정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김 모(27) 씨는 "학자금 대출, 월세 등 그렇잖아도 나가는 돈이 많은데 명절에 부모님 건강식품이라도 사드리려면 이번 달에는 소비를 줄여야겠다"고 털어놨다.
가장들 역시 말 못할 부담으로 가슴앓이를 하고 있다. 조카 세뱃돈에 더해 부모님 용돈 부담까지 짊어진 김 모(56) 씨는 "내 생활을 줄여서라도 부모님 용돈도 드리고 조카들 세뱃돈도 줘야하지 않겠냐"며 한숨을 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