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년 살처분에 이동제한…답답
- 고지서 쌓이는데 돈이 없어
- 세뱃돈 없어 자식들, 손주도 못 오게 해
- 자식같은 오리 없이 텅빈 농장에 속상
<울산조선소 해고노동자>
- 31일 되면 완전 실직 상태
- 하청노동자만 1만 명 해고
- 늙은 노모 걱정끼칠까 고향 못 가
- 현장으로 돌아가고픈 소망뿐
■ 방송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FM 98.1 (07:3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김OO(AI 농가, 전남 오리농가), 정동석(울산조선소 하청업체 해고노동자)
이제 내일이면 설 연휴가 시작이 되죠. 지금쯤 떨어져 살던 가족들끼리 전화해서 언제쯤 내려오냐 묻기도 하고 음식도 마련하고 분주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도저히 이번 설을 웃으며 맞을 수 없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분들 가운데 두 분을 지금부터 만나보죠. 우선 AI농가입니다. 지난해 11월 AI가 발생하고 지금까지 살처분된 가금류가 무려 3200만 마리를 넘어섰습니다. AI 농가의 설은 어떤 모습인지 전남에서 육오리 농가를 운영하고 계신 분이세요. 익명으로 연결을 해 보겠습니다. 어머님, 나와계세요?
◆ 김OO> 네.
◇ 김현정> 실례지만 지금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 김OO> 지금 육십 둘인데요.
◇ 김현정> 오리 키우신 지는 얼마나 되셨습니까?
◆ 김OO> 오리 키운 지 한 10년 좀 됐거든요. 하우스 농가를 많이 하다가요. 하우스도 그게 좀 어려워서 오리로 이제 전환을 했어요.
◇ 김현정> 전환을 한 지 이제 10년밖에 안 됐는데 이렇게 큰일을 당하신 거예요?
◆ 김OO> 네, 우리가 전환하면서부터, 한 번 딱 키우고부터 AI가 터져가지고 그때부터 (오리를) 묻기 시작했어요.
◇ 김현정> 그러셨군요.
◆ 김OO> 우리 농가는 AI가 안 왔고 깨끗하고 오리도 잘 크고 있는데, 3㎞ 반경이라고 해서 묻었어요.
◇ 김현정> 아이고, 그렇게 10년이 됐군요. 매해 AI 올 때마다?
◆ 김OO> 네네. 그래서 지금 몇 번째 묻고 있고요. 올해는 또 이제 이렇게 키우다가, 못 키우는 거 있잖아요. 제한 걸려가지고.
◇ 김현정> 즉 이동제한에 걸려서, 육오리를 한번 팔고 나서 또 새로운 오리를 데려와야 되는데 데려오지를 못하고 있는 상황이세요?
◆ 김OO> 네. 들여와서 키워야 되는데, 제한이 걸려서 지금 못 들어오고 있죠.
◇ 김현정> 어머님, 이제 곧 설이잖아요.
◆ 김OO> 설인데 지금 갑갑하죠. 설도 되는데 이제 또 월말도 되잖아요. 월말도 되면은 전기세가 지금 밀려서 있죠. 세금도 또 엄청 많이 나오대요. 그런 것도 지금 밀려서 있고요.
◆ 김OO> 셋이요.
◇ 김현정> 다들 외지에 나가 있습니까, 결혼해서?
◆ 김OO> 둘은 결혼해서 나가 있고, 큰아들은 그래도 엄마, 아빠 돕는다고 여기서 농사를 짓고 있는데요. 오리가 이렇게 되다 보니까 아직 결혼도 못 시키고 그런 실정이에요, 지금.
◇ 김현정> 그러면 다른 자녀들 두 가족은 이번에 설에 어떻게 오기는 옵니까, 고향에?
◆ 김OO> 못 오죠. 오지 말라고 그랬죠.
◇ 김현정> 왜요, 왜요?
◆ 김OO> 손자, 손녀들이 오면은, 세배한다고 하면 할아버지, 할머니한테 세배하면은 단돈 만 원이라도 세뱃돈 줘야 되잖아요. 그런데 그런 줄 돈도 없어요, 지금.
◇ 김현정> 아이고, 손자들 얼마나 보고 싶으셨을 텐데. 외지에 있는 손주들 명절에나 한 번씩 오는 걸 텐데 그것도 오란 말 못하셨어요?
◆ 김OO> 이제 오지 말고, 이거 풀려가지고 우리가 오리 키워가지고 돈 모아지면, 돈 좀 되면 오너라 말하죠. 거의 오리 키우는 농가들은 거의 다 내 심정일 거예요. 다 자식들 오지 말라 하고 그런다고.
◇ 김현정> 아니 기분이 나야 자식들이 오면 음식도 해 주고 세배도 받고 할 텐데 지금 초상집 같은 분위기니…
◆ 김OO> 지금 다 그런 거 저런 거 세금 낼 거, 그런 거 생각하면 앞이 캄캄해가지고 눈물이 먼저 앞을 가리려고 그래요, 지금. 제한 걸린 농가들이라도 다만 구정 때 생계비라도 다만 얼마씩이라도 정부에서 내보내준다 하면 그런 거 갖고 그래도 가족들 오라 그래서 웃고 설도 맞이하고 그럴 텐데, 그런 것도 없잖아요. 명절도 차라리 없었으면 좋겠어요.
◇ 김현정> 그 텅빈 오리농장 보고 있으면 이거 참 어떤 기분이 드세요?
◆ 김OO> 안타깝죠. 언제나 거기서 오리가 있어 가지고 이러고 꽥꽥거리고 돌아다니고 그러면 그거 자라는 그런 모습 보면 기분이 좋죠. 내 자식 키운 것마냥. 오리가 지저분한 거, 똥 싸고 그래도 지저분한지도 몰라요. 그랬는데 텅 비어 있고 그러니까 속상하고 좀 그래요.
◇ 김현정> 그래도 다행인 건 사료 사놓은 건 나중에라도 새로운 녀석들 오면 그때 주면 되긴 되겠어요, 그건?
◆ 김OO> 사료 남은 것도 폐기처분해야 돼요. 그거 놔두면 거기에서 혹시 병균이 있을지 모르니까 다 폐기처분하고 그래요.
◇ 김현정> 이게 지금 우리 어머님 댁만 그런 게 아니라 주변이 다 이런 거잖아요, 농가들이?
◆ 김OO> 오리 키우는 농가들은 대부분 다 그렇죠. 다 그렇다고 봐야죠.
◇ 김현정> 서로 만나면 무슨 말씀들 하세요, 요즘?
◆ 김OO> 언제 이거 풀려가지고… 해마다 AI가 오니까 언제쯤 AI 이런 병이 안 와서, 우리 웃음 짓고 이렇게 명절날 자식들하고 웃으면서 넘기냐.
◇ 김현정> 나라 원망도 좀 드시겠어요. 이렇게 되기 전에 좀 일찌감치 막아줬으면 좋을 텐데 어쩌다가 전국적으로 일파만파 퍼지게 했나, 이런 원망도 좀 드시죠?
◆ 김OO> 그렇죠. 우리나라에서는 온 다음에야 소독하라고 하고 뭐 하라고 하고 그렇잖아요. 이걸 어떻게 말을 할 수가 없어요. 말 할 수가 없어. (한숨)
◇ 김현정> 이런 심란한 상황에서 설을 맞았습니다. 딸에게, 손주에게 오라는 말조차 못하는 상황에서, 그래도 어머님, 방송에 나오셨으니까 방송에서라도 한마디 보고 싶다, 복 많이 받아라 해 주시죠?
◆ 김OO> 우리 손자 손녀들! 많이 보고 싶은데, 할머니가 많이 보고 싶은데. 설이 와도 세뱃돈도 없고 하니까 좀 참았다가 다음에, 할머니 돈 좀 오리 키워가지고 벌면 보자. 보고 싶다. (눈물) 우리 딸도 보고 싶고 사위도 보고 싶고 아들도 보고 싶고요. 그래요, 지금. 아이고, 눈물이 나오네요.
◇ 김현정> 아이고, 저도 눈물이 나오네요. 힘내시고요, 어머님.
◆ 김OO> 네.
◇ 김현정> 이런 날 있으면 또 좋을 날도 오겠죠.
◆ 김OO> 네, 그렇죠. 그렇게 보고 살아야죠.
◇ 김현정> 이 설 지내고 다음 설 올 때는 손주들 와서 올해 못 준 세뱃돈까지 두 배로 두둑하게 주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김OO> 네. (웃음)
◇ 김현정> 건강하시고요.
◆ 김OO> 네, 수고하세요.
◆ 정동석> 네.
◇ 김현정> 아니, 하청업체에서 근무하셨으면 어떤 일하신 거예요?
◆ 정동석> 건조부에서 그라인드 작업을 했습니다.
◇ 김현정> 그라인드. 뭐 가는 작업을 하신 거예요?
◆ 정동석> 그렇죠. 철판 가는 작업이요.
◇ 김현정> 일하신 지는 얼마나 되셨습니까?
◆ 정동석> 20년째 하고 있습니다.
◇ 김현정> 그런데 1년 사이에 한 번도 아니고 세 번 해고라니 이게 무슨 말입니까?
◆ 정동석> 경기가 악화되면서 그 하청업체의 업체장들이 더 이상 업체를 할 수 없다는 그런 얘기죠.
◇ 김현정> 그런데 해고는 어떻게 3번을 당하셨어요?
◆ 정동석> 업체장이 폐업을 선언하고 도저히 할 수 없다. 그래서 또 새로운 인수자가 나서서 업체를 인수하고 저희들 또 고용 승계가 되고 또 업무를 하고.
◇ 김현정> 즉 A라는 업체에서 근무하다가 여기 사장이 나 도저히 못 하겠다, B한테 인수하고 B가 또 C로 인수하고 이렇게 되다 보면 세 번 해고가 가능하겠군요?
◆ 정동석> 네, 그렇죠. 그랬는데 이번에 폐업의 최종 공고 만료 시한이 1월 31일까지입니다.
◇ 김현정> 이번에는 또 다른 인수자가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 정동석> 그렇죠.
◇ 김현정> 31일까지 이대로 가면 그다음부터는 완전 실직 상태가 되시는 거예요?
◆ 정동석> 그렇죠. 저희들에게 일할 수 있는 일자리를 달라, 그렇게 요구했지만 무조건 어렵다, 그러니까 앞으로도 더 많은 인원을 구조조정해야 되니까… 책임지지 않겠다는 얘기죠.
◇ 김현정> 지금 정동석 씨 같은 처지에 처한 분이 얼마나 됩니까, 대략?
◆ 정동석> 여기 현대중공업 조선소에서 1만 명 이상 일자리를 잃었죠. 하청노동자들이.
◇ 김현정> 하청노동자들만 1만 명이 정동석 선생님 같은 상황이에요?
◆ 정동석> 특히 저희들 같은 경우 노동조합을 하였다는 이유로 이제 취업이 안 되는 거죠. 문화계에만 블랙리스트가 있는 게 아니고 하청 노동자한테도 블랙리스트가 있는 거죠. 그리고 앞으로도 또 1만 4000명의 인원을 더 구조조정 한다고 하니까 원하청 가리지 않고 지금 뭐 (울산에) 구조조정의 광풍이 불고 있는 거죠.
◇ 김현정> 뒤숭숭하겠네요, 분위기가. 이런 분위기에서 설연휴가 시작됐는데 우리 정 선생님은 고향이 어디십니까?
◆ 정동석> 경주입니다.
◇ 김현정> 경주? 고향에는 어떻게 내려가세요?
◆ 정동석> 못 갑니다. 이래서 가겠습니까?
◇ 김현정> 원래는 가세요, 명절에?
◆ 정동석> 그렇죠. 꼬박꼬박 갔었죠.
◇ 김현정> 아니, 그렇더라도 처지가 이렇더라도 가족들이니까 이해할 텐데. 좀 찾아가시지 그러세요?
◆ 정동석> 면목없는 거죠. 늙은 모친한테도 걱정거리 또 안겨드리는 것도 그렇고. 그래서 이번에는 도저히 못 가겠습니다.
◇ 김현정> 그러면 선생님, 아예 다른 직종으로 이직해 볼 생각은 안 해 보셨어요?
◆ 정동석> 20년 이상 조선업종에서 철판을 다루고, 이 일을 했는데 다른 어떤 일이 되겠습니까?
◇ 김현정> 그건 그렇습니다. 배 만들던 사람을 이제 그 업종에서는 서로서로 쇳밥 먹던 사람 이렇게 표현한다면서요?
◆ 정동석> 그렇죠. 쇠를 만지면서 일을 했었는데 이 일밖에 할 줄 몰랐고. 그러다 보니 어떻게 가서 뭐 다른 조그만한 장사라도 하겠습니까? 그 정도의 벌어놓은 것도 없고. 하루 벌어서 하루 먹고 살았는데.
◇ 김현정> 쇳밥 먹던 사람이 어떻게 다른 밥을 지금 이제 와서 먹을 수 있겠느냐, 또 장사라도 하고 싶어도 밑천이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이 말씀?
◆ 정동석> 그렇죠.
◇ 김현정> 아니 진짜 어린 자녀 둔 분들은 어떻게 사세요? 그냥 입에 풀칠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아이들 가르치려면 그 돈도 만만치 않은데요?
◆ 정동석> (한숨) 방법 없습니다. 닥치는 대로 일을 하는 거죠.
◇ 김현정> 쇳밥 먹던 사람이 다른 일 마땅히 하려고 해도 할 일도 없다면서요. 어떤 것들 하세요, 그럼?
◆ 정동석> 전국을 떠도는 거죠.
◇ 김현정> 전국을? 그냥 일자리만 있다고 하면 막노동이든 뭐든 전국을 떠돌아다니면서 애들 키워야 되니까?
◆ 정동석> 그렇죠.
◇ 김현정> 설 되면 새해 소망을 서로 묻고 이러기 마련인데 제가 정동석 선생님한테는 소망 묻는 것도 죄송스럽습니다마는 그래도 꼭 좀 이루어지기를 바라면서 소망 한마디 하실까요?
◆ 정동석> 저희들은 다른 소망 없습니다. 일할 수 있는 일자리만 보장해 달라, 딱 그 한 가지 소망밖에 없습니다. 꼭 현장으로 돌아가서 일하고 싶습니다. 저희들 소원은 그거 하나밖에 없습니다.
◇ 김현정> 그거 하나밖에 없습니다. 월급이 많고 적고 문제가 아니라 일할 수 있는 일자리가 좀 나왔으면 좋겠다는 말씀?
◆ 정동석> 그렇죠.
◇ 김현정> 그 마음이, 참 절절하게 이 말씀이 들리네요. 힘내시고요. 다음 명절에는 편안한 목소리로 다시 인터뷰할 수 있기를 기대하겠습니다.
◆ 정동석> 네. 고맙습니다.
◇ 김현정> 고맙습니다. 울산에 조선소 하청업체에서 일하다가 해고가 되셨어요. 1년에 3번 해고를 당한 정동석 씨 연결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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