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도 손놓은 우리말 지킨 값이 블랙리스트라니…"

한글문화연대 이건범 대표 "문체부, 블랙리스트에 오른 모든 이에게 사과해야"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에 관여한 혐의로 구속된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25일 오후 서울 강남구 대치동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 국정농단 사건 수사 특별검사팀' 사무실로 소환되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
정부가 작성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외국어 남용·한자혼용 주장에 맞서 온 사단법인 한글문화연대가 포함된 것을 두고, 이 단체의 이건범 상임대표가 문화체육관광부의 사과와 관계자 처벌을 촉구했다.

한글문화연대 이건범 대표는 25일 성명서를 내고 "우리는 2016년 12월 26일 에스비에스 뉴스에서 보도한 문화체육관광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사단법인 한글문화연대가 들어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충격과 분노를 억누를 길이 없다"며 "그 문서에는 한글문화연대가 2008년 광우병촛불집회, 2006년 한미자유무역협정 반대에 관련되었기에 블랙리스트에 올렸다고 추정되는 기록이 있었다"고 전했다.

이 대표에 따르면, 한글문화연대는 2008년 광우병촛불에 기금 30만 원을 보냈고, 2006년 스크린 쿼터 사수와 한미자유무역협정에 반대하는 누리집 막대광고를 실었다.

그는 "이는 영어 몰입 교육 반대와 외국어 남용 반대에 뜻을 함께했던 시민사회 단체들의 요청에 따른 것이었으며, 우리는 그런 활동이 잘못되었다고 보지 않는다"며 "한글문화연대에서 17년 동안 했던 일 가운데 일만 분의 일도 안 되는 행적으로 한글문화연대를 평가하거나 어떤 딱지를 붙이는 건 참으로 고약하고 나쁜 짓이 아닐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 대표는 "분명 한글문화연대는 어떤 특정한 정치 이념을 가지고 좁은 의미의 정치 활동을 하는 단체가 아니"라며 "우리는 외국어 남용에 맞서 줄기차게 싸웠다. 우리를 '좌파단체'라고 욕하는 조갑제 씨 등은 이런 일에 결코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대한민국 정부 공무원들이 영어 남용에 맞서 우리말과 한글을 지키기 위해 싸웠습니까? 정말 몇몇 공무원 말고는 상당수 공무원이 보도자료와 정책용어에 외국어를 섞어 쓰면서 외국어 남용을 부채질해 왔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말과 한글을 지켜야 할 헌법적 책무를 지닌 정부는 손 놓고 있었고, 우리는 열 포졸이 한 도둑을 못 잡는다는 속담과 정반대로 한 포졸이 열 도둑을 잡기 위해 코피를 쏟으며 일했습니다. 매년 3천 건가량의 석달치 중앙부처 보도자료를 분석하여 외국어 남용을 솎아내고, 온갖 곳에 외국어 남용을 멈춰달라는 요청이나 항의를 담은 공문을 보내고, 땡볕에 매서운 칼바람에 일인시위와 서명운동을 벌였습니다."


◇ "국민에게 사과문 내면서 피해 당사자들에게 직접 사과 않는 태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

이 대표는 "한자혼용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공문서의 한글전용을 규정하고 있는 국어기본법을 상대로 위헌심판을 청구한 일에 가장 열심히 대응했던 곳은 어디입니까?"라며 글을 이었다.

"해마다 바뀌는 담당 공무원들에게 대응 방안을 제시하면서 헌법재판소에 홀로 의견서를 내고, 체계적인 대응논리를 개발하여 변호인에게 제공하고, 한자혼용을 주장하는 청구인들의 200여 쪽 넘는 청구서를 조목조목 분석하여 반박 의견서를 낸 곳이 어디입니까? 국어기본법을 제정한 이해당사자인 문화체육관광부보다 더 애가 타서 밤을 새워가며 추가적인 자료를 만들어 헌재에 내고 보충의견서를 낸 곳이 어디입니까? 오직 한글문화연대 한 곳뿐이었습니다. 2016년 11월 24일 헌재에서 이 위헌심판을 모두 기각할 때도 현장을 지켰던 이들은 우리 한글문화연대뿐이었습니다."

이 대표는 "우리를 블랙리스트로 관리하면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배제와 차별의 대상으로, 무언가 불온하고 위험한 집단으로 관리하고 있었던 일은 어떤 변명으로도 용서받을 수 없는 악행"이라며 "이는 당연히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대한민국 헌법을 위반한 행위이므로 관련자들은 마땅히 법적, 도덕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이 대표는 문체부에 △한글문화연대가 블랙리스트에 올라간 경위 해명 △문체부 책임자의 공식적인 사과 △문체부 내 관계자 처벌을 촉구했다.

그는 "우리뿐만 아니라 블랙리스트에 오른 모든 이에게 문화체육관광부는 사과해야 한다"며 "국민에게 사과문을 내면서 피해 당사자들에게 직접 사과하지 않는 태도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질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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