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김영한'이 '산 김기춘'을 잡다

고 김영한 수석 수첩으로 '산 김기춘' 잡아낸 이용복 특검보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과 박근혜 대통령 비위 의혹 사건을 수사하는 박영수 특검팀이 지난 2016년 12월 21일 오전 서울 강남구 대치동 특검사무실 앞에서 현판식을 갖고 있다. 왼쪽부터 양재식 특검보, 박충근 특검보, 박영수 특검, 이용복 특검보. (사진=이한형 기자)
"검찰에서는 절대 불가능한 수사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수사'로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이용복 특검보가 특검의 구세주로 떠올랐다.

이 특검보는 '한국공안통치의 주역'이자 '권력의 화신' 또는 '정치검사의 표본'으로 불리는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을 구속시켰다.

또 현직 장관이자 박근혜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대통령의 여자'로 불렸던 조윤선 전 장관도 '골인'시키며 사실상 장관직에서 해임시켰다.

주변에선 이 특검보를 '어당팔'이라 부른다. 편하고 만만하게 보이지만 당수가 팔단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그를 아는 법조인들은 "허허실실 하는 것 같지만, 내공을 갖고 있는 인물"로 한결같이 평한다.

실제 박영수 특검 출발때 그는 크게 기대를 받거나 명망이 높았던 인물은 아니었다.

하지만 삼성 이재용 부회장과 박근혜 대통령의 뇌물죄 관련 수사로 박영수 특검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봉착했을때 그의 특기는 위력을 발휘했다. 전직 비서실장과 장관을 구속함으로써 돌파구를 뚫은 것이다.


◇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블랙리스트 수사'

특검 출범 전 블랙리스트 수사 파급이 박근혜 대통령 바로 턱밑까지 치고 들어올지는
아무도 예상치 못했다. 시나브로 시작한 수사였다. 그런데 거대한 '해일'이 되어 청와대 앞마당을 뒤덮쳤다. 그리고 대통령의 지시와 관여를 확인하는 마지막 관문만 남기고 있다.

블랙리스트 수사는 문체부 직원들의 증언과 자료제출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고 김영한 민정수석의 수첩에서 모티브를 얻은 이 특검보는 유진룡 전 장관과 문체부 직원들 진술, 그리고 압수수색 자료를 토대로 청와대 정무수석실과 교육문화 수석실을 완전히 훑었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에 관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20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으로 출석하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
조윤선 전 장관이 마지막까지 "보고는 받았지만 관여는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이 특검보팀은 탄탄한 자료조사와 진술 증거를 토대로 그의 주장을 탄핵시켰다.

또 '법률 미꾸라지'로 불리며 끝내 드러나지 않을 것 같았던 김 전 실장의 구체적 지시·관여도 파헤쳤다. 이번 수사로 '죽은 김영한'이 '산 김기춘'을 잡은 것이다.

블랙리스트 수사는 박 대통령과 삼성그룹 간 뇌물죄 의혹 관련 수사까지 순식간에 블랙홀처럼 빨아들였다. 특검의 1월 전반부 수사를 언론은 블랙리스트 기사로 거의 도배했다.

법조계 안팎에 따르면 박영수 특검은 거침없이 나가는 그의 블랙리스트 수사를 한때 우려와 걱정을 갖고 지켜봤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검 주변에서는 이 특검보팀이 영장을 많이 청구하다보니까 박영수 특검이 "잘 될까 걱정을 한다"는 소리가 한때 전해졌다. 혹시나 무리하지 않을까 염려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특검보팀은 박영수 특검내에서 가장 활약이 두드러진 팀이 됐을 뿐만 아니라, 이재용 부회장 영장 기각으로 실의에 빠진 특검팀에게도 '다시 한번 해보자'는 다짐의 계기가 됐다. 구세주가 된 것이다.

◇ "그가 주류검사 출신였다면 불가능 했을 것"

이 특검보를 아는 법조인들은 "그가 비주류 출신이어서 '블랙리스트 수사'가 가능했다"고 한결같이 평가한다.

이 특검보는 경북이 고향이지만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다녔고(양정고) 동국대 법대를 나왔다. 사법연수원 18기 출신으로 2007년 서울남부지검 형사 제1부장직을 끝으로 변호사로 활동해 왔다.

그는 2012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 디도스공격 사건 특별검사팀 특별검사보로 이미 특검을 한차례 경험했다.

법조계 한 인사는 "블랙리스트는 '신의 한수'나 다름없는 수사이고, 헌정을 유린한 '실제 사건'이라며 청와대와 국정원이 동시에 움직였다는 점에서 대통령 재가 없이는 이뤄질 수 없는 범죄 행위"라고 못박았다.

또다른 인사도 "특검은 제한된 수사기간때문에 검찰 수사와 차별화되는 목표가 분명해야 하는데 블랙리스트 수사가 교과서라며 이 특검보가 검찰내 주류출신이었다면 이런저런 눈치때문에 '법꾸라지'를 잡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22일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실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위 제5차 청문회에 출석해 눈을 감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
◇ 박 특검 "판사출신이냐, 검사출신이냐 놓고 고민"

박영수 특검은 처음엔 두 사람 수사를 판사 출신인 이규철 특검보에게 맡기는 방안을 검토했다.

그러나 법을 잘 알아 '법꾸라지'로 불리는 두 사람을 잡으려면 결국 '검사출신'이어야 한다는 점 그리고 본인이 강력히 희망한다는 점에서 이 특검보를 주목했다는 후문이다.

이 특검보의 칼날은 이제 박 대통령과 우병우 전 민정수석을 남겨놓고 있다. 그는 주특기를 살려 '사부작 사부작' 목표에 접근하고 있다.

특검팀 관계자는 "이제는 우 전 수석에게 화력을 집중할 단계가 됐다"고 말했다. 그동안 우 전 수석에 대해 기초수사를 해온 특검은 설날연휴를 전후해서 우병우 전 민정수석과 관련된 의혹에 대해 수사력을 집중할 것으로 알려졌다.

블랙리스트 수사로 큰 물줄기를 휘어잡은 이 특검보가 과연 '제2의 법꾸라지'로 불리는 우 전 수석까지 구속하는 '유종의 미'를 거둘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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