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큰일 났어" 박종철 사건 진실의 실마리

<특종 1987 :박종철과 한국 민주화>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인 1987년, 22세의 대학생 박종철이 경찰의 가혹행위로 죽음을 맞았다. 이 사건을 처음으로 세상에 알린 사람은 중앙일보 사회부 기자였던 신성호 현 성균관대 교수다. <특종 1987>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과 6월 항쟁 과정에서 언론과 기자들이 어떤 역할을 했고, 어떤 과정을 거쳐 민주화가 이뤄졌는지를 당시 취재기자의 시각으로 소개한 책이다.

<특종 1987>은 사건을 첫 보도한 신성호 기자의 취재일지를 시작으로 마침내 6ㆍ29선언을 일궈내기까지의 과정을 생생하게 재구성하고 있다.


1~2장에서는 당시 긴박했던 취재 현장과 전화로 기사를 송고하고 윤전기를 멈춰 세우면서까지 일궈낸 첫 보도, 그리고 그 여파로 전 언론사들이 어떻게 움직였는지를 다룬다. 3장에서는 이러한 박종철 사건이 대한민국 민주화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 1980년대를 통틀어 설명하고 있다. 4장에서는 탐사보도로서의 언론사(言論史)적 의미, 인권 탄압에 맞선 기자 정신, 현대 사회에서의 언론이 나아가야 할 방향 등을 해외 사례와 견주어 설명한다.

이후 5장에서는 박종철 사건 보도 후 정권의 강압적 태도와 이에 맞선 언론과 시민들, 그리고 6월 항쟁이 이어지기까지의 과정을 소개한다. 6~7장에서는 경찰의 사건 은폐 조작과 마침내 관계자들이 구속되는 과정, 그리고 이를 위해 목숨을 걸고 진실을 밝혔던 당시 사건 관계자들의 모습을 다루고 있다. 또한 8~9장에서는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등 종교계를 비롯한 가회 각계각층의 움직임, 경적운동과 넥타이 부대 등 범시민운동으로 확산된 민주화 운동에 대해 자세히 다루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10장에서는 마침내 일궈낸 6ㆍ29선언의 진실과 그 이후의 이야기에 대해 다루고 있다.

저자는 이 책의 마지막 에필로그의 제목을 ‘아직도 끝나지 않은 이야기, 박종철’이라고 붙였다. 22세의 청년 박종철의 죽음이 한국 민주화의 불씨가 된 지 30년이 흘렀다. 그 30년 동안 한국은 대통령 직선제 개헌, 최초의 문민정부, OECD 가입, IMF 외환 위기 등 많은 일을 겪었다. 이제 민주화는 갈망의 대상이 아닌 너무나 당연한 일상이 됐다. 그에 따라 ‘박종철’이란 이름은 역사의 뒷 켠으로 물러난 채 서서히 잊혀져가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우리 모두에게 묻는다.
‘지금 우리는 청년 박종철이 꿈꾸던 세상에 살고 있는가?’

한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나라들 가운데 유일하게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일궈냈지만, 내부를 들여다보면 여전히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정치권은 진영과 계파로 나뉘어 국민의 신뢰를 잃은지 오래고, 북한의 잇따른 핵 개발은 기본적인 삶을 위협하고 있다. 소득수준이 월등히 높아졌다고는 해도 오늘날을 사는 젊은이들은 ‘수저 계급론’을 거론하며 지금 우리 사회가 공정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박종철 사건과 6월 항쟁이 30주년이 되는 지금, 우리는 지금 우리의 모습을 30년 전 과거의 거울에 비춰볼 필요가 있다. 저자는 다시 한 번 묻는다.
‘우리 사회는 6월 항쟁 당시 시민들이 원하는 모습인가?’

저자의 말처럼 오늘 우리의 모습이 그들이 꿈꾸던 세상과 거리가 있다면 박종철 사건은 30년 전 끝난 것이 아니라 아직도 진행 중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이 우리가 박종철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이며, 저자가 이 책을 출간한 이유다.

책 속으로

“경찰, 큰일 났어.”
6년째 법조를 출입하고 있던 나는 이홍규 과장의 말에서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음을 직감했다. 그러나 어설프게 덤벼들었다가는 일을 그르칠 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검찰 간부들은 비교적 보안 의식이 철저하기 때문에 그들이 쉽게 말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유도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래서 나는 이미 알고 있는 사건이라는 듯이 맞장구를 쳤다.
“그러게 말입니다. 요즘 경찰들 너무 기세등등했어요.”
“그 친구 대학생이라지. 서울대생이라며?”
그의 말은 청천벽력과도 같았다. 이건 서울대생이 경찰에서 조사를 받다가 사고를 당했다는 말이 아닌가.
- p25, 박종철 사건 보도, 그 숨 가빴던 24시간의 기록

1987년 1월 15일 “경찰, 큰일 났어”라는 말 한마디는 박종철이라는 젊은이의 죽음을 세상에 알리는 단초가 됐다. 이 말은 또 1987년 6월 대한민국을 뒤흔든 ‘6월 항쟁’의 출발점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말을 했던 이가 이홍규 당시 대검찰청 공안4과장이라는 사실은 필자가 2012년 박사학위 논문 〈박종철 탐사보도와 한국의 민주화 정책변화〉를 통해 밝히기 전까지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 (중략) 딥 스로트는 취재원과 취재기자의 신뢰관계가 없으면 성립되지 않는다. 이홍규 전 대검 공안4과장은 나에게 사건의 단서를 제공한 것과 관련해 “워낙 민감한 사건인지라 조심스러웠던 게 사실”이라며 “그러나 신성호 기자를 믿었다”고 말했다.
- pp.154~155, 진실을 밝히기 위해 움직인 사람들

6·29선언은 1987년 1월 박종철 군의 죽음을 시작으로 6월 범국민적 항쟁을 통해 이끌어낸 국민 승리의 결과였다. 민주화 이후엔 6·29선언의 진실을 둘러싸고 당시 전두환 대통령과 노태우 민정당 대표 측이 서로 자신의 업적이라며 다투기도 했다. 6·29선언을 통해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이뤄냈지만 야권의 분열로 정권 교체에 실패했다는 자조 섞인 비판도 있다. 하지만 6·29선언은 국민이 하나가 되어 얻은 소중한 결과물이라는 데는 이론이 없다
- p211, 6·29선언이 우리에게 가져온 것들

신성호 지음 | 중앙북스 | 240쪽 | 14,000원

실시간 랭킹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