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와 공작: 협동과 성의 진화를 둘러싼 논쟁>

찰스 로버트 다윈이 <종의 기원>을 발표한 1859년 이래로 150여 년 동안, 이타주의와 성 선택은 진화론의 결정적인 두 난제로 꼽혀 왔다. 같은 여왕개미의 자손들로 이루어진 혈연 집단의 존속을 위해 자손을 낳지 않는 일개미는 이타주의를, 암컷들의 호감을 얻어 짝으로 선택되기 위해 수컷들이 생존에 불리할 정도로 화려하고 거대한 깃털을 발달시킨 공작은 성 선택의 대표적인 사례로 인식됐다.

일개미의 이타성과 수컷 공작의 화려한 깃털은, 그것을 보유한 개체들의 번식과 생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런 특성을 지닌 개체들이 진화해 왔다는 사실은 다윈주의의 모순으로 보였다. 번식에 유리한 특성을 가진 개체들이 자연 선택에 따라 그 특성을 진화시키고 개체 수를 늘려 나간다는 다윈의 진화 이론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사례로 간주됐기 때문이다. 개미와 공작은 진화론이 등장하던 19세기 중반부터 현재까지 다윈주의 역사상 가장 뜨거운 논쟁의 주인공이었다.


이번에 사이언스북스에서 펴낸 <개미와 공작>은 이타주의와 성 선택의 수수께끼를 둘러싼, 진화론의 역사에서 가장 치열한 토론의 과정과 그 성과를 집대성한 역작이다. 저자인 헬레나 크로닌은 자신의 런던 정치 경제 대학(LSE) 박사 학위 논문이었던 이 책의 출간으로 일약 세계적인 진화 생물학자의 반열에 올랐다. 다윈과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부터 존 메이너드 스미스와 리처드 도킨스에 이르는 다윈주의의 역사를 관통해서, 일개미들의 자기희생과 수컷 공작들의 아름다운 깃털이 개체들의 번식과 생존이라는 틀을 넘어서 다윈주의의 영역을 확장해 가는 학문적 진화의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서술해 낸 덕분이다.

또한 <개미와 공작>은 개미의 이타성과 협동, 공작들의 깃털과 짝짓기가 진화하는 과정을 각각 인간의 도덕성과 미적 감각의 발달에 대한 논의로 확장시킴으로써, 진화 생물학과 과학 철학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지식의 향연을 만끽할 수 있다.

책 속으로

다윈의 견해는 아마도 수컷 공작의 꼬리에 무엇인가 터무니없고, 제멋대로이며, 휘황찬란한 것이 존재한다는 그의 직관을 반영한다. 그 자체만으로 순전히 미학적인 선호, 실용적인 조건들과 무관한 선호라는 발상은 이 직관을 확실히 포착한다. 그리고 마침내 피셔가 보여 준 것처럼, 다윈은 옳았다. ― 본문에서

자연 선택은 자기희생, 선행, 친절함과 타인에 대한 배려를 배제하지 않는다. 다윈주의적인 경로들이 이타주의를 이끌 수 있다. 그들은 여러 경로로, 특히 상호 협동과 친족 선택으로 가장 확실하게 그렇게 할 수 있다. ― 본문에서

헬레나 크로닌 지음 | 홍승효 옮김 | 사이언스북스 | 792쪽 | 3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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