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민석의 글은 저자 자신이 미술관 안팎의 세계를 오가며, 문학으로부터의 탈출과 회귀의 과정을 지나며 오랜 세월 집적한 '문학과 미술의 시대사'를 선보인다. 이 과정에서 다소 난해할 수 있는 현대미술의 대중적 접근을 위해 그가 꺼내드는 것은 바로 리플릿(해당 전시의 광고를 위해 글과 사진을 실은 인쇄물)이다.
저자는 리플릿을 전시에 접근하는 '문'이라고 정의한다. 리플릿은 실제 작품이나 도록과 달리 정해진 전시 기간 동안 전시장에서만 구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미술의 현장성과 희소성을 증명하는 역할을 한다. 매 글의 시작마다 저자가 보여주는 작은 리플릿은 지나간 혹은 현재의 전시를 환기시키고 미술의 세계로 쉽게 들어가게 하는 출입문 역할을 한다.
리플릿은 전시 내용을 한 두 페이지의 인쇄물에 표현함으로써, 시적 긴장감을 느끼게도 하고, 전시회와 미술 전반, 우리 사회의 모습을 압축해서 반영하기도 하며, 기록에 관한 사료의 역할도 한다. 그 리플릿을 통해 백민석은 자신만의 세상을 보는 방식과 미술에 대한 생각을 풀어낸다.
리플릿을 통해 가볍게 꺼낸 이야기는 화이트큐브를 벗어나 우리 삶 도처에 자리한 미학을 포착하며 미술과 미술 밖 세계의 소통을 시도한다. 또한 소설가만이 가질 수 있는 독특한 관점으로 풀어낸 글은, 시각 예술의 단절된 이미지로부터 서사를 끌어내고 설치미술과 전시의 영역을 넘어 우리가 사는 세상의 이야기로 확장된다.
서울에서 시작해 뉴욕에서 끝나는 이 책은 거대도시에서 살아가는 저자 자신의 이야기에서 출발해, 여전히 거대도시의 시민으로 짓눌리고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어깨 위의 세상을 내려놓지 않는 동시대 현대인의 모습을 담아내면서 끝맺는다. 저자는 풍경이 되는 도시든, 고통을 주는 그림이든, 그 안에서 주체를 찾으려 한다. 그곳에는 노동에서도 자본에서도 현실정치에서도 삶에서도 주체가 되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저자는 한국을 벗어나 일본, 쿠바, 미국 등에서 다양한 미술 작품을 만나며 그들이 체화하고 있는 역사의식과 예술에 대한 다양한 표현 방식과 직면할 뿐 아니라, 동시대인으로서 공통된 존재 본연의 고립감과 두려움을 발견하기도 한다.
작가는 리플릿을 통해, 그림을 통해, 전시를 통해, 책을 통해 길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길을 찾아 책 속으로 침잠하지 않고, 책의 길을 따라 책 바깥으로 일단 나가봐야 한다. 바깥을 향해 읽어봐야 한다”고. 그는 리플릿 속에서, 그리고 수만 권의 책 속에서 또 다른 예술의 길, 삶의 길들을 보고자 한다.
책 속으로
콘크리트 아틀라스의 잿빛 어깨에선 좀처럼 흥겨운 빛을 찾아보기 어렵다. 〈젊은 모색 2014〉전과 〈환영과 환상〉전의 작품들이 보여주는 풍경이 바로 그 콘크리트 아틀라스의 표정이다. 또한 때때로 짓눌리고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어깨 위의 세상을 내려놓으려 하지 않는 우리 자신의 표정이기도 하다. 이 거대도시를 떠받치는 진정한 아틀라스는 거대도시의 시민, 바로 우리 자신이기 때문이다.
-26쪽
벨기에 작가 기드온 키퍼의 드로잉 작품들은 아예 캔버스가 아닌 책에 그려진다. 양장본의 딱딱한 앞뒤 표지를 찢어 그 위에 자신의 초현실적 테마를 펼쳐놓는다. 책의 표지는 칼로 잘라내지 않고 손으로 잡아 찢었다. 거칠고 들쑥날쑥한 단면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책의 표지라는 것을 감추기 위한 별다른 조치도 취하지 않는다. 리플릿은 책을 활용하는 것에 대해 “본래 책의 목적과 내용을 제거하고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함으로써 그의 독특한 작품 속 새로운 인생을 표현한다”라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왜 하필 책일까, 책의 표지일까. 그저 우연한 선택일까. 아마도, 책이 작가의 삶에서 가장 흔한 요소였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손을 뻗었더니 책에 닿았고, 하드커버가 캔버스를 대체하기에 충분함을 깨달은 것이다.
-79쪽
마르크스의 말처럼 노동은, 자신의 생명을 불어넣어 세계 속에서 인간을 실현하는 행위이다. 적어도 그의 시대에는 그랬던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회사란 그러한 노동을 가능케 하는 장소였다. 이제 그러한 노동의 의미는 황혼처럼 저물어가고 있는 게 아닐까. 더 이상 지켜야 할 노동의 터전도 의미가 없으니, 자부심도 의지도 없게 된 것은 아닐까. 가슴 아픈 이야기지만 세월호의 선장도 알려진 바로는 비정규직이었다. 노동의 황혼 가운데 우리 사회는, 노동의 모든 긍정적인 가치가 점차 자본주의의 지평선 너머로 사그라지는 광경을 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103쪽
작가는 문래동 철공소 골목 같은, 서민들이 주로 사는 지역을 돌며 비누 사진만 찍었다고 한다. 야외에서 자연광으로 연출 없이 촬영된 이 비누 사진들이 내게 특별했던 까닭은, 비누에 묻어 있는 기름때 때문이었다. 그 비누로 손을 닦았을 누군가의 노동의 흔적이 기름얼룩이라는 형태로 고스란히 비누에 남아 있었던 것이다. 손에 기름때를 묻혀본 사람은 그것이 얼마나 닦아내기 어려운지, 또 그런 노동이 얼마나 힘겨운지 잘 안다. 노동의 힘겨움, 가치, 신성함에 대해 단 한마디도 하지 않은 사진전이었지만, 역설적으로 김문선 작가는 그 어느 스펙터클한 규모의 작품들보다도 노동에 대해, 한국 사회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그것은 볼품없고 하찮기만 한 비누가 시대의 표상으로 거듭나는 순간이었고, 가짜들 사이에서 빛나는 진짜 예술로 거듭나는 순간이었다.
-179쪽
백민석 지음 | 한겨레출판사 | 300쪽 | 16,000원